입력 : 2017.04.09 04:30
1947년 태동한 한국 근대 건설 산업이 올해 70주년을 맞는다. 하지만 건설 산업에 대해서는 긍정보다는 부정, 발전보다는 쇠락하는 이미지가 더 강한 게 현실이다. 땅집고(realty.chosun.com)는 한국건설산업연구원과 공동으로 지금까지 인류 문명과 과학 발전에 기여한 기념비적 건축·구조물들을 발굴, 그 의미와 가치를 재조명해 건설산업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기획물을 연재한다.
[세상을 뒤흔든 랜드마크]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한국인의 뚝심
2010년 12월 13일 거가대로(巨加大路) 개통식이 열렸다. 육지와 해저, 해상을 가로지르는 만 6년의 대사업이 성공적으로 끝난 것이다. 거가대로는 거가대교(3.5㎞), 가덕해저터널(3.7㎞), 육상 교량(1㎞) 등으로 구성됐다. 부산 가덕도와 중죽도 사이를 연결하는 가덕해저터널은 국내 최초이면서 세계에서 가장 긴 침매터널이다. 건설 과정에서 5개의 세계 기록을 남겨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고 우리나라 토목 기술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린 토목 기술사의 쾌거로 평가된다. 거가대로의 침매(沈埋·가라앉혀 묻음) 터널, 즉 가덕해저터널의 건설 현장으로 되돌아가보자.
[세상을 뒤흔든 랜드마크]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한국인의 뚝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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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침매 터널이어야 했나
거대대로는 1994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선거 공약으로 사업 계획이 수립됐다. 당시 사업명은 ‘거제~부산 간 연결도로’였다. 이후 거가대로는 부산시 강서구 천가동에서 가덕도를 거쳐 거제시 장목면을 잇는 사업으로 구체화됐다. 거가대로를 바다와 육지, 해저를 넘나들며 건설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거가대로 중 해저 터널이 건설되는 가덕도와 저도 사이의 구간은 진해 해군기지의 주요 작전 영역이라는 점이 고려됐다. 유사시 폭격으로 교량이 파괴되면 해군의 작전 수행이 어려워 해저 터널로 건설된 것으로 알려진다.
침매 터널 공법은 육상 제작장에서 제작한 함체(구조물)를 해상으로 운반하고 이를 바다 밑에 가라앉혀 차례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가덕해저터널 건설 구간은 조류 등 물살이 세기로 유명하다. 더구나 침매함 터널은 국내에서 시도된 적이 없던 낯선 공법이다.
왜 이런 지리적 악조건에서도 처녀 공법인 침매함 터널을 선택했던 또 다른 이유는 뭘까. 바로 터널 구간의 해저 지반 탓이었다. 해저 터널이 건설되는 대부분 구간이 지지력이 매우 약한 해성점토층(海成粘土層·일종의 뻘)이었던 것이다. 침매함에는 해수의 부력(浮力)이 작용해 지반 지지력이 크게 필요없고 구조물 중량으로 인한 지반 침하를 최소화하는 장점이 있다.
■대한민국 건설 기술자의 뚝심으로 해결
“이곳에선 침매터널 공법 적용이 불가능하다.”
국내 건설사가 해외 침매 터널 전문 기술자로부터 얻은 답변이었다. 기존의 침매 터널 공법이 적용된 경우는 수심이 깊지 않고 물살도 잔잔한 곳에서 100m 안팎의 침매 함체를 이용한 게 대부분이었다. 가덕해저터널 작업 환경은 열악했다. 수심이 최대 48m에 이를 만큼 깊고 육지에 둘러싸이지 않은 외해(外海)여서 센 물살과 싸워야 했다. 해저 터널 선진국인 네덜란드나 일본 기술자들도 이런 악조건에서 침매 터널 건설은 너무 큰 리스크가 따른다고 판단했다. 특히 바다 깊은 곳에 침매함을 건설할 경우 심한 부력으로 함체 연결이 매우 어렵다는 우려도 나왔다.
작업 환경만 최악인 것이 아니었다. 침매 터널과 관련된 국내 경험과 기술도 제로 베이스였다. 이처럼 외국 기술자들도 사실상 거부한 난공사에 도전하겠다고 나선 대한민국 건설인의 뚝심은 참으로 대단했다. 외국 기술자들에게 그들의 도전은 무모하다고 여겨지기까지 했다. 사실 국내에선 해저 침매 터널 건설 실적이 전무했다. 따라서 참고할 수 있는 설계 기준이 없었고 현장에 당장 투입할 수 있는 시공 유경험자도 없었다. 깊은 바다 밑에서 작업할 수 있는 해저용 장비마저 제대로 구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설계와 시공에 필요한 모든 것을 거의 새롭게 만들다시피 해야 했다.
■세계 신기록의 산실로 바꾼 도전
이런 어려운 여건에서 이뤄진 도전은 결과적으로 수많은 기록을 양산하는 기회의 장을 제공했다. 우선 침매 터널로는 세계에서 가장 깊은 48m 수심에서 건설했다. 그것도 최대 함체를 이용한 작업이었다. 왕복 4차로로 된 단위 함체 1개는 길이 180m, 너비 26.5m, 높이 9.97m에 이른다. 함체 하나를 제작하는 데 투입한 물량도 막대하다. 철근 3000t과 콘크리트 4만 2000t이 소요됐다. 이런 철근의 양은 약 30평형 아파트 950가구, 콘크리트는 동일 규모 아파트 460가구 분량이다. 함체를 세우면 64층 아파트 높이와 같다. 이 하나의 단위 함체는 22.5m의 8개 세그먼트를 이어서 만들었다. 하나의 세그먼트를 완성하기 위해 최소 24시간 연속으로 콘크리트를 타설해야 할 정도였으니 그 엄청난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터널 안전성 확보를 위한 설계와 시공에도 만전을 기했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대비한 설계도 이뤄졌다. 침매 터널 구간이 부산신항을 출입하는 컨테이너 선박들의 주요 항로이자 해군의 작전 경로였기 때문에 선박이 침몰하거나 충돌할 경우를 가정한 특수 하중 조건도 고려했다. 홍수로 인한 침수, 선박 앵커의 충돌, 터널 내 폭발 같은 하중 조합도 반영했다. 바닷물에 의한 부식과 침수에도 대비해 100년 이상 내구 연한을 가진 특수 콘크리트가 사용됐다. 침매함은 리히터 7에도 거뜬하게 견딜 수 있도록 설계·제작됐다.
신기술과 신공법을 자체 개발해 기술적으로도 신기록을 수립했다. 단위 함체의 각 세그먼트 접합을 세계 최초로 2중 조인트로 시공해 가장 안전한 침매 함체 건설을 시도했다. 함체 연결시 공기 주입을 통한 함체 접합 방법도 개발했다. 함체 접합을 위해 배수시 내외부의 급격한 압력차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고무 지수재의 변형을 막기 위해서였다. 침매 함체 구간의 초정밀 자갈 포설 장비도 개발했다. 50m 수심에서 ±40㎜의 오차로 자갈을 깔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정밀 시공 기술을 확보한 것이다. 침매 함체의 위치를 정밀 조정할 수 있는 장치도 만들었다. 이런 3가지 신기술·신공법은 국제 특허도 출원했다. 거가대로는 우리나라 토목 부문 최고상인 ‘2010년 토목구조물’ 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도 누리게 됐다. 아무나 할 수 없었던 용기있는 도전 후에 얻은 값진 훈장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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