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2.26 02:00
[남자의 집짓기] ⑬ 되돌아본 우리 옛집(하)
어릴 적 시골집에서는 몇 년마다 겨울이 오기 전에 방바닥을 모두 들어내고 온돌 구들장을 새로 놓는 대공사가 벌어졌다. 구들장 밑에 붙어 있는 그을음을 정기적으로 긁어내고 새로 놓아야 불기운이 잘 전달되기 때문이었다. 대목장 버금가는 목수였던 부친께서는 남의 손을 빌리지 않았다.
구들장을 놓을 때는 고래(불기운이 지나가는 길)를 잘 놓아야 하는데, 식구들 잠자리를 훤히 꿰고 있는 부친보다 그 일을 더 잘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구들장을 새로 놓은 첫날밤은 청국장 뜨는 것과 같은 황토 내음이 코를 찔러서 자꾸 코를 문질렀던 기억이 새롭다. 그렇게 등을 따습게 데워 주었던 온돌이 초고층 아파트에도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어릴 적 시골집에서는 몇 년마다 겨울이 오기 전에 방바닥을 모두 들어내고 온돌 구들장을 새로 놓는 대공사가 벌어졌다. 구들장 밑에 붙어 있는 그을음을 정기적으로 긁어내고 새로 놓아야 불기운이 잘 전달되기 때문이었다. 대목장 버금가는 목수였던 부친께서는 남의 손을 빌리지 않았다.
구들장을 놓을 때는 고래(불기운이 지나가는 길)를 잘 놓아야 하는데, 식구들 잠자리를 훤히 꿰고 있는 부친보다 그 일을 더 잘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구들장을 새로 놓은 첫날밤은 청국장 뜨는 것과 같은 황토 내음이 코를 찔러서 자꾸 코를 문질렀던 기억이 새롭다. 그렇게 등을 따습게 데워 주었던 온돌이 초고층 아파트에도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누구였을까? 온수파이프를 방바닥에 까는 간단한 방법으로 구들장의 온기를 지금까지 누릴 수 있도록 해준 그 사람은. 미안하지만, 그 주인공은 2000년이 넘는 온돌의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 사람이 아니다.
■데이고쿠호텔과 자선당, 그리고 온돌
20세기초 미국 건축계를 주름잡던 세계적인 건축가가 있었다.
“전성기를 구가하던 무렵, 마흔을 넘기면서 불륜에 빠진 그는 고향인 위스콘신에 ‘탈리에신’(영국 웨일즈어로 ‘빛나는 이마’를 뜻함)이라는 작업실을 짓고 애인과 함께 정착했다. 그가 유럽에 출장 중이던 어느 날, 고용인이 탈리에신에 불을 지르고 가족을 몰살하는 비극이 일어났다. 실의에 빠진 그를 구원해준 것은 일본의 도쿄 호텔 설계였다”(소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중에서)
당시 일본 굴지의 거부였던 오쿠라 기하치로(大倉喜八郞)가 세계적인 건축가였던 그에게 일본 최고의 호텔 설계를 의뢰한 것이다. 지금도 도쿄의 최고급호텔로 남아 있는-본관 로비는 나고야로 이전 복원돼 있음-데이고쿠(帝國·Imperial)호텔이다.
오쿠라는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과 함께 개항된 부산에 들어와 잡화점을 시작으로 금융(다이이치은행 조선지점), 건설, 압록강 벌목으로 떼돈을 벌어 조선의 문화재를 닥치는 대로 긁어갔던 인물이다. 덕수궁 석조전도 그의 작품이고, 선린상고도 그가 설립했다. 총독부와 결탁하여 번 돈으로 긁어모은 문화재가 웬만한 박물관 한 개는 채우고도 남는다고 하는 ‘오쿠라컬렉션’(일본의 국립문화재로 지정된 ‘오구라컬렉션’과는 다름)이다. 신라호텔을 지을 때 이병철회장이 모델로 삼았던 도쿄의 오쿠라호텔 앞에 그렇게 긁어모은 문화재를 전시한 오쿠라슈코칸(大倉集古館)이 있다.
오쿠라는 1914년 총독부가 식민통치의 치적을 홍보하는 조선물산공진회를 경복궁에서 개최하면서 궁궐 전각을 헐어낼 때, 테라우치총독을 구워삶아 세자의 동궁(東宮)으로 사용되던 자선당(資善堂)을 뜯어 도쿄의 저택 뜰에 이축했다.
데이고쿠호텔 설계를 의뢰하기 위해 그를 초청한 것은 바로 그 해 겨울이었다. 설계협의가 원만하게 마무리되고 오쿠라가 대접하는 만찬을 들기 위해 다다미방에 들어섰던 그는 너무 추운 날씨에 난방도 되지 않는 방에서 음식은 입에 대보지도 못하고 덜덜 떨기만하다 일어섰다. 그 모습이 미안했던지 오쿠라는 ‘코리안 룸(Korean Room)' 이라는 방으로 그를 안내하여 커피를 대접했다. 바로 그 자리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그런데 기온이 갑자기 바뀐 것 같았다. 결코 커피 때문이 아니었다. 마치 봄이 온 듯 했다. 우리는 곧 몸이 따뜻해지고 다시 즐거워졌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는데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훈훈함이 감돌았다. 눈에 보이는 난방시설도 없었고, 이것으로 난방이 되는구나 하고 바로 알 수 있을 만한 그 어떤 것도 없었다. 그건 정말이지 난방여부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기후적 사건이었다”(Gravity Heat. 1943)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중력난방’
그가 커피를 대접받았던 ‘코리안 룸(Korean Room)’은 오쿠라가 조선에서 뜯어갔던 자선당이었다. 통역관으로부터 온돌 난방의 원리를 들은 그는 그날 밤을 새면서 이 신비로운 기술을 설계에 적용할 아이디어를 짜냈다. 당시 이미 실용화돼 있었던 전기 라디에이터의 파이프를 펴서 바닥에 깔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데이고쿠호텔 욕실에 세계 최초로 적용했다.
공사가 시작된 1918년부터 4년간 도쿄에 거주하면서 설계·감리를 하던 그는 계속되는 설계 변경과 여섯 배로 올라간 공사비로 건축주와 알력이 심해져 만성위염까지 앓아 미국으로 돌아갔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호텔의 낙성기념 피로연이 막 열리려던 1923년9월1일 오전11시58분, 15만여명이 사망하고 도시의 절반이 폐허가 된 도쿄대지진이 일어났다. 며칠 뒤 겨우 통신이 복구된 도쿄에서 그에게 한 통의 전보가 도착했다. 호텔은 피해 없이 서 있습니다. 당신의 천재성을 나타내는 기념비로”(소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에서)
그가 바로 미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다. 바로 이 사건으로 라이트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1937년 펜실베니아주 베어런 숲속, 계곡에 걸쳐 있는 땅에 지은 ‘낙수장(Falling Water)’으로 전설적인 거장이 되었다.
라이트는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는 호텔로 유명해졌지만 정작 그 자신은 이 호텔에 처음으로 적용한 바닥 난방 기술에 무척 애착을 가졌다. 자신이 ‘중력난방(Gravity Heat)’이라고 명명한 이 난방 기술은 바닥을 데워 덥혀진 온기가 대류의 원리에 따라 위로 올라가 방안 전체를 덥힌다는 점에서 획기적이었다. 그 후 라이트는 자신이 설계한 약 30동(棟)의 단독주택에 이 난방 기술을 적용했다.
미국 오레곤주 포틀랜드 남부에 가면 오레곤 가든(Oregon Garden)이라는 식물원이 있는데 이곳에도 고든 하우스(Gordon House)라고 하는 그의 작품이 남아 있다. 이 작은 집을 보기 위해 포틀랜드에서 한 나절이나 걸려서 직접 찾아 갔던 적이 있다. 쭉 뻗은 처마와 길죽하게 낸 창의 모양이 자선당의 곡선을 직선으로 바꿔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도쿄와 미국을 거쳐 조선으로 돌아온 난방 공법의 발전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자선당은 도쿄대지진에 무너져 기단만 남은 것을 목원대 김정동 교수가 발견, 뜻있는 인사들의 노력으로 반환받아 1995년 삼성문화재단이 무상기증 형식으로 유구를 경복궁 건청궁 뒤뜰(명성황후 조난지)로 이전했다. 원래 자선당 자리에는 2001년 새 건물이 복원됐다. 경복궁을 보러 가면 자선당과 건청궁 뒤뜰에 꼭 들러보길 바란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따뜻한 난방 공법이 가능하기까지 자선당이 겪은 수난과 한 현인의 아이디어에 부디 경의를 표하기를. 집을 짓는 기술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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