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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으로 이어진 '오솔길 50m' 팩맨 하우스

    입력 : 2017.02.24 06:30

    [공간의 변신] 이웃과 공존을 선택한 ‘팩맨 하우스’

    세 아이의 아빠는 어릴 적 뛰어놀던 경기도 양평 고향으로 돌아와 집을 짓고 살 마음을 먹었다. 집터는 아버지가 소를 키우던 축사가 포함된 땅이었다. 축사는 아버지가 직접 나무를 해서 기둥을 세우고 보를 올려 만들었고, 여기서 나온 돈으로 가족을 부양했다. 장성한 아들은 이제 이곳에 자신의 가족을 데리고 살 집을 짓기로 한 것이다.

    새로 지은 집 왼쪽으로 과거부터 있던 오솔길을 그대로 살려 마을 사람들이 오가도록 했다. /사진=노경 작가

    그런데 땅이 묘했다. 반듯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고 비뚤어진 오각형 같았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집터를 가로질러 밭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이 있었다. 이 길은 마을 사람들이 자주 지나다녔다. 이걸 그대로 놔두면 집터가 쪼그라드는 걸 감수해야 했다. 그렇다고 길까지 포함해서 집을 지으면 마을 사람들의 불편이 뻔히 보였다. 결국 세 아이의 아빠는 마을 사람들이 수십년째 걸었을 이 길을 유지하면서 집을 짓기로 했다. 아무리 마을 사람들과 친분이 있던 사이라도 땅덩어리가 돈인데 포기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건축주가 땅의 권리를 행사하고 싶지 않다고 했어요. 저희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죠. 왜냐하면 보통 경계 측량할 때는 모두 예민해지거든요. 이웃집이나 부동산 중개사 모두 와서 보고 싸움이 나는 경우도 굉장히 많습니다.”

    집 밖에 있는 오소길은 마당을 거쳐 현관으로 이어진다. /사진=노경 작가

    ‘B.U.S 아키텍쳐’ 건축가들(박지현·조성학 대표)은 이 오솔길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 여기에 더해 의뢰인이 원하는 ‘세 아이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집’을 결합하기로 했다. 집밖의 길이 집을 감싸고 돌아 집안으로 이어지도록 밑그림을 그렸다. 길의 연속성을 고민하던 차에 ‘팩맨(Pac-Man)’ 게임이 머리를 스쳤다.

    “게임에서 팩맨이 계속 돌아다니잖아요. 팩맨이 이동하는 길은 막힘없이 연결돼 있어야 해요. 그래야 게임이 진행되죠. 이 집도 아이들이 막힌 공간이 없이 돌아다닐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위 사진은 팩맨 하우스의 1층 평면도] 1.오솔길, 2.현관, 3.도서관길, 4.화장실, 5.거실길, 6.아이들 방, 7.드레스룸, 8.다이닝룸, 9.부엌, 10. 다용도실. [아래 사진은 2층 평면도] 1. 가족실, 2.안방, 3.화장실, 4.다락방 /B.U.S 아키텍쳐 제공

    실제로 위 평면도에서 보는 것처럼 집 밖의 오솔길은 마당길을 거쳐 집 안으로 이어진다. 이게 끝이 아니다. 다시 현관에서 시작된 길은 팩맨 게임처럼 집 내부를 휘감아 돈다. 아이들은 이렇게 게임의 팩맨처럼 순환하는 길과 공간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다. 1층을 그렇게 만들었다. 현관을 열면 나오는 공간은 ‘도서관 길’이다. 10여m 벽을 따라 책장이 이어져 있고 창문 아래에는 책상을 만들었다. 책장에 영상막을 내리고 맞은편 대청마루에 빔프로젝트를 설치하면 순식간에 극장으로 변신한다. 대청마루에서는 아이들이 앉거나 누워서 책을 볼 수 있게 했다.

    화장실이 있는 코너를 돌면 나오는 ‘거실길’도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다. 커다란 창문을 열면 마당으로 연결된다. 아이들 방도 이곳에 있다. 방문은 따로 없다. 커다란 구멍이 출입구다. 방 옆으로 만든 계단을 올라가면 2층에도 널찍한 놀이방이 나온다. 건축가들은 아이들이 크면 2층 가족실과 다락방을 아이들 방으로 쓸 수 있도록 계획했다.

    이어지는 ‘옷장길’에는 붙박이장을 넣어 드레스룸으로 활용한다. 여길 지나면 부엌과 다이닝룸이고 다시 현관으로 이어진다. 달팽이 집처럼 1층을 한바퀴 돌고 나면 처음의 현관으로 돌아온다. 1층은 50여m의 길(통로)이 연결돼 있다. 통로는 층고를 높여 답답해 보이지 않도록 했다.

    팩맨하우스의 집터이자, 아버지가 쓰던 낡은 축사 모습(위쪽). 아래 사진은 축사의 대들보를 활용해 오각형 좌탁을 만든 모습. /사진=노경 작가

    건축가들은 원래 있던 축사의 대들보를 새 집의 구조재로 쓰고 싶어했다. 그런데 워낙 낡고 오래된 목재여서 불가능했다. 대신 이 목재로 좌탁을 만들어 집주인에게 선물했다. 안쪽의 나무는 대들보를 쓰고 테두리는 합판으로 만들었다. 안팎을 분리하면 작은 간식 테이블로도 쓸 수 있다. 좌탁은 집의 외관과 똑 같은 오각형으로 만들었고, 이 다섯개의 면은 다섯 식구를 뜻한다. 건축가들은 “새 집의 축소판인 좌탁에 할아버지가 직접 만든 축사의 기억을 담았고, 그 기억 위에서 손주들이 식사를 하는 의미있는 풍경이 펼쳐진다”고 했다.

    지붕을 ‘ㅅ’자 형태의 박공 모양으로 만든 이유는 주변과의 조화를 고려한 것이다. 집 지을 땅을 양보하고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겠다는 집주인의 품성에도 그게 맞았다. 마을 어귀에서 보면 ‘팩맨 하우스’는 새 집인지 아닌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잘 어울린다. 이 집은 대지 377㎡ (114평), 건축면적 82㎡(29평), 연면적 132㎡(40평)으로 경량목구조로 지었다. 시공비는 2억1000만원이 들었다.
    현관에 들어서면 나타나는 벽을 따라 책장(사진 위)을 만들고 맞은편에 대청마루(사진 아래)를 만들었다. /사진=노경 작가

    팩맨하우스 1층에 있는 아이들 방은 1,2층으로 구성돼 있다. 1층은 잠자는 방이고 2층은 놀이터가 된다. 사진 아래는 방 내부. /사진=노경 작가

    팩맨하우스 2층. 안방과 가족실, 다락공간이 있다. 가족실 가운데 과거 축사 대들보로 만든 좌탁이 놓여있다. /사진=노경 작가

    팩맨하우스는 신축했지만 주변의 집과 잘 어울리는 박공 모양 지붕을 하고 있다. /사진=노경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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