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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개의 음향판이 춤추는 '카라얀의 서커스'

  • 이광표 홍콩이공대 연구원

    입력 : 2017.01.22 04:00

    1947년 태동한 한국 근대 건설 산업이 올해 70주년을 맞는다. 하지만 건설 산업에 대해서는 긍정보다는 부정, 발전보다는 쇠락하는 이미지가 더 강한 게 현실이다. 땅집고(realty.chosun.com)는 한국건설산업연구원과 공동으로 지금까지 인류 문명과 과학 발전에 기여한 기념비적 건축·구조물들을 발굴, 그 의미와 가치를 재조명해 건설산업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기획물을 연재한다.

    [세상을 뒤흔든 랜드마크] ⑮베를린 필을 최고로 만든 콘서트홀

    지금처럼 사운드를 재생하는 오디오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았을 과거에는 연주나 음악을 지금처럼 최상의 사운드나 품질로 들을 수 있었을까. 과거에는 좋은 음악을 듣기 위해 연주를 직접 감상하러 다녔을 것을 생각하면, 지금의 유명한 오케스트라 콘서트홀의 명성이 충분히 이해된다.

    오케스트라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선율을 최대한 높은 품질의 사운드로 감상하려면 콘서트홀이 훌륭한 오디오로서 기능을 수행해야 하며, 홀의 음향설계가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독일 베를린의 필하모닉 콘서트홀의 내부 음향 설계는 공연을 위한 세계 최적의 사운드시스템을 자랑한다.

    한스 샤룬이 설계한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 지붕이 서커스단 천막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카라얀의 서커스'라고 불린다.

    ■‘카라얀의 서커스’란 별명 붙어

    이 콘서트홀을 설계한 건축가는 한스 베르하르트 샤룬(Hans Bernhard Scharoun)이다. 그는 1893년 독일 브레멘에서 태어나 1972년 생을 마쳤다. 그의 대표적 건축물로는 브레슬라우의 연립주택, 베를린의 필하모닉 콘서트홀, 베슈투트가르트의 로미오와 줄리엣 등 유명한 건축물을 다수 남겼다.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은 한스 샤룬의 대표작으로 불린다. 이는 ‘카라얀의 서커스’라는 재미있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 여기서 ‘카라얀’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30년간이나 이끌어온 불꽃의 지휘자 폰 카라얀을 가리킨다. ‘서커스’는 비대칭으로 솟아오른 건물의 지붕 모습이 서커스단의 텐트를 연상시켜 붙여진 별명이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왼쪽). 수석지휘자였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오른쪽).

    실제로 폰 카라얀은 콘서트홀 설계안 선정시 공모안들을 평가했고 한스 샤룬의 설계안을 극찬하고 든든한 지원군으로서의 역할을 했다고 한다. 30년간 베를린 필 오케스트라를 이끌면서 세계 최고 반열에 올려놓은 점을 생각해 보면 이보다 적절한 별명은 없을 것이다.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은 독일 티어가르텐(Tiergarten) 지역에 있으며 베를린 문화포럼(Kulturforum) 구역에 속해 있다. 베를린의 교통·상업·주거·문화의 복합지인 포츠다머플라츠(Potsdamer Platz)와도 인접해 있다. 건축주는 베를린 시이며 대형홀은 2440석으로 베를린 필하모니 관현악단의 상주 콘서트홀로 사용된다. 1963년 10월 15일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카라얀이 지휘하면서 베를린 필하모니 홀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오각형 외관…무대를 둘러싼 객석

    베를린 필은 1882년 54명의 베를린 뮤지션들이 그들만의 새롭고 독창적인 오케스트라 설립을 목표로 출범했다. 베를린 필은 지휘자를 비롯해 오케스트라의 모든 멤버들까지 뮤지션에 의해 선택되는 시스템이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카라얀은 1908년 태어난 카라얀은 46세의 나이로 베를린 필 지휘를 맡았다. 이후 카라얀은 풍부한 음악적 신화와 함께 카라얀 마니아를 탄생시킨다. 카라얀의 슈퍼스타같은 인기로 베를린 필도 세계 최고 반열에 오른다.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 내부. 객석이 무대를 감싸고 있는 오각형 형태로 관객들은 어디에서든 무대를 잘 볼 수 있다.

    베를린 필하모니 콘서트홀은 외부의 특이한 모양과 내부의 현대적 로비로 구성된다. 콘서트홀의 외관은 오각형이며, 무대를 둘러싼 객석이 연주 공간을 감싸고 있다. 이러한 콘서트홀의 공학적 디자인은 필하모니 콘서트홀에서 최초로 도입한 것이다. 객석 어느 자리에서든 무대를 잘 감상할 수 있고 소리가 제대로 전달될 수 있게 한다.

    한스 샤룬은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요구를 끊임없이 반영했고 미래 사용자의 소망과 요구사항까지 고려했다. 이를 ‘유기적 건축’이라고 부르는데 필하모니 콘서트홀의 공연공간은 ‘중심에 음악-음악을 가운데 두는 곳’이라는 유기적 관념을 표현하고 있다.

    한스 샤룬은 홀의 끝에 오케스트라를 배치하는 방식인 슈박스 타입의 콘서트홀이나 오페라 극장의 프로세니움 형태는 오케스트라 음악과 관객을 분리시킨다고 생각했다. 음악과 관객의 자유롭고 친밀한 소통을 저해하는 원인이라고 본 것이다. 이 같은 좌석 배치는 음악홀에서 와인 야드(vineyard) 형식으로 자리잡는다. 이후 덴버 콘서트홀(Denver concert hall), 라이프치히의 게반트하우스(Gewandhaus),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 등에 적용된다.

    ■천장에서 춤추는 136개의 음향판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의 공간 설계안은 새로운 음향시설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한스 샤룬은 베를린의 음향전문 컨설턴트인 로더 크러너(Lothar Cremer)와 설계 초기 단계부터 작업을 같이 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고품질 음향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가능한 많은 반사영역을 만들어 내는데 집중했다. 이런 반사영역은 콘서트홀 안에서 발생하는 음악이 최대치로 확산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객석을 블럭으로 분할해 각각의 블럭 앞열에는 무대에서 나오는 직접음이 도달할 수 있게 됐다. 관객들은 무대 천장에 춤추듯 설치된 대형 음향판를 통해 초기 반사음을 전달받는다. 만석 시 천장에 설치한 136개조의 삼각형 레조네이터(공명기)가 저음의 잔향을 제어하는 동시에 사운드 확산판 역할도 한다.

    객석은 오케스트라의 연주소리를 투명하고, 정확하고, 균형있게 들을 수 있고 소리의 풍부한 울림은 관객을 완전히 둘러싸는 듯한 느낌을 준다.

    콘서트홀에서 로비로 이어지는 계단과 회랑들.

    콘서트홀 내부를 빠져나오면 새로운 공간이 나타난다. 외부로 나가는 동선에 계단과 회랑들이 연주홀의 하부인 로비 공간까지 이어진다. ‘카라얀의 서커스’는 콘서트홀 안에서의 감동이 외부로 이어지도록 구성돼 있고, 이는 다시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의 외관 곡선과 조화를 이룬다.

    한스 샤룬은 인간과 건축물, 인간과 공간 사이의 관계에 대해 ‘카라얀의 서커스’라는 건축물을 통해 ‘공동성(Communality)’이라는 가치를 보여준 것이다. 이러한 가치는 극단적 배타주의를 추구했던 독일의 참혹한 기억을 극복하고자 한 것이며, 나아가 일그러진 이념에 대한 인류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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