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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도 셀카 찍는 연남동 명물 '빨간벽돌집'

    입력 : 2017.01.17 04:00

    [공간의 변신] 적벽돌로 살려낸 90년대 연남동 풍경

    서울 마포구 연남동 일대는 망치질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옛 경의선 선로를 공원화한 이른바 ‘연트럴파크’가 열리고 홍익대 상권이 확장하면서 이 동네 풍경은 확 달라졌다. 특히 이면도로의 적벽돌 다세대·다가구 주택은 대부분 상가로 바뀌고 있다.

    정이삭 에이코랩 대표는 2015년 봄 연남동 다세대 집을 상가로 리모델링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건축주는 은퇴 이후를 대비해 안정적인 임대수익을 얻고자 했다. 그럴려면 최대한 새 건물처럼 보여야 한다고 요청했다.

    정이삭 에이코랩 대표가 리모델링한 상가 건물 앞 전신주에서 거미줄처럼 뻗어나간 전선은 주택가의 흔한 풍경이었다./사진= 노경 작가

    현장을 둘러본 정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정 대표는 “적벽돌 다세대 주택이 갖고 있는 거리 풍경 자체가 자산적 가치가 있다”고 건축주를 설득했고 “적벽돌을 최대한 유지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연남동 상가 건물은 계단 난간을 고스란히 살려 옛 정취를 더했다./사진=노경 작가

    이 주택은 이른바 ‘집장사’가 1991년에 지었다. 허가받을 때 낸 건축도면과 실제 건물을 조사해보니 큰 차이를 보였다. 베란다는 불법으로 확장돼 있었고 벽의 안정성도 확신할 수 없었다. 반지하는 도면과 완전히 달랐다.

    정 대표는 “집을 즉흥적으로 지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구조기술사를 불러 안전진단을 맡기고 구조적으로 취약한 곳을 보강했다. 아무렇게나 삐져나온 오·배수관도 정리했다. 정 대표는 “마치 거장이 설계한 건물을 보수하듯 그 건물의 최초 설계 의도부터 그것의 변용과 변형 모두를 자세히 이해하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응답하라, 90년대 연남동

    이 상가건물은 연남동 소풍길 입구에서 바라보면 정면으로 보인다. 70m 남짓 이어진 골목 양옆에 들어선 상가도 다세대·다가구 주택을 고친 것이다. 하지만 이 골목에서 옛 연남동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은 이 건물 뿐이다.

    건물의 첫인상은 담백하고 편안하고 단정한 느낌을 준다. 돋보이기 위해 외관에 힘을 주거나 덧대지 않았다. 대신 적벽돌의 붉은색, 벽을 칠한 크림색이 조화를 이뤄 따뜻한 감성을 느끼게 해준다. 밋밋해 보일 수 있었지만 벽에 큼지막한 쇼윈도를 내 경쾌함을 살렸다. 3층은 고깔모자처럼 생겨 직사각형 건물의 단조로움을 벗었다.

    1990년대 감성을 자극하는 적벽돌은 고압세척기를 동원해 묵은 때를 벗겨냈다. 계단 바닥은 옛날 정취를 더 한다. 계단을 따라 세워진 스테인레스 난간을 철제로 바꾸고 곡선을 유지해 조형미를 살렸다.

    계단을 올라갈 때 마주하는 적벽돌은 소박한 느낌을 준다./사진=노경 작가

    리모델링하기 이전의 집을 그린 그래픽. 전형적인 다세대 주택이다./에이코랩
    본래 대지면적 93㎡, 반지하 1층~지상 2층 주택에서 반지하1층~지상 3층 상가로 탈바꿈했다. 남는 건폐율은 꼭대기에 4.5m 높이로 사무공간을 만들었다. 연면적이 156㎡에서 207㎡로 30%쯤 늘었다.

    리모델링 비용으로 설계비를 포함해 2억원 정도 들었다. “시공업체가 힘들어 했다”고 할 만큼 마른수건 쥐어짜듯 맞춘 금액이다. 같은 규모라면 리모델링이 신축보다 2배는 어렵다.

    외국인이나 젊은이들이 이 건물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는 경우가 많을 만큼 명물이 됐다. 작년에는 이탈리아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에 소개되기도 했다. 한국관 주제인 한국 건축의 최전선 ‘용적률 게임’의 상징성을 보여주는 소재로 선택된 것이다.

    이러한 유명세 때문인지 임대료도 주변보다 20% 정도 높다고 한다. 세입자를 골라받을 정도라고 하니 연남동의 원형 계승은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시대의 공감을 얻은 결과는 아닐까.

    골목 입구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상가 건물은 양옆에 늘어선 건물 외벽과 뚜렷하게 구분된다./사진=노경 작가

    ■자극적이지 않고 건강한 건물

    정 대표에게 “건물이 은근한 멋이 있다”고 하자, “보면 볼수록 예뻐요. 볼매죠”라고 했다.

    -볼매요?
    “볼수록 매력이 있다는 뜻이죠. 자극적이지 않아요. 건물이 건강하다고 봐요. 디자인을 한듯, 안 한듯 심플한게 특징이죠. 그 점이 사실 가장 어렵지요.”

    -적벽돌의 매력은.
    “적벽돌 주택의 풍경은 동일한 패턴을 유지하고 있어 아름답죠. 적벽돌 집도 시간이 흐르고 보존이 잘 돼 있으면 사람들을 끌어 모을 거예요. 1920년대 들어선 북촌의 개량 한옥처럼 말이죠.”

    -북촌같다는 의미는?
    “주거지역에 상업공간이 들어설 때, 신축보다 리모델링을 선택하는 경우가 늘고 있거든요. 서울 후암동, 이태원, 경리단길, 상수동. 그런데 건물을 떡주무르듯 변형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봐요. 그런 점만 유의하고 집을 다듬으면 엄청난 유산이 될 거에요.”

    -유적은 아니지 않나요?
    “무조건 보존하자는 것이 아니라 진화하자는 뜻이에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부수거나 뚫거나 이런 건 지양하자는 것이죠.”

    -집을 상가로 바꿀 때 유의할 점은.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건물을 심하게 바꾸거나 고치면 곤란하죠. 적정한 수준으로 다음 쓰임까지 고려해야 돼요. 공간의 변용성이죠. 현재 용도에만 맞춰 공간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건물이 오래 남아 있도록 하려면 장기적 안목을 갖고 고쳐야 해요.”

    정이삭 에이코랩 대표
    정이삭 에이코랩 대표는 강원도 철원 선전마을 예술가 창작소, 서울 마장동 주민센터 재계획 등에 참여한 건축가로 2016년 제 15회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에서 한국관 공동 큐레이터이자 작가로 참여했다. 최근에는 서울 주변부에 대한 예술가들의 기록 ‘The Seoul, 예술이 말하는 도시 미시사’를 엮어 출판했다. 그간 공공성이 강한 프로젝트가 언론에 많이 소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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