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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 지하 2000m 뚫은 세계 最長 터널...인류 기술의 결정체

  • 강상혁 인천대 교수

    입력 : 2016.10.22 03:00

    1947년 태동한 한국 근대 건설 산업이 내년이면 70주년을 맞는다. 하지만 건설 산업에 대해서는 긍정보다는 부정, 발전보다는 쇠락하는 이미지가 더 강한 게 현실이다. 이에 조선닷컴은 한국건설산업연구원과 공동으로 지금까지 인류 문명과 과학 발전에 기여한 기념비적 건축물들을 발굴, 그 의미와 가치를 재조명해 건설산업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기획물을 연재한다.

    [세상을 뒤흔든 랜드마크] ②‘알프스의 기적’ GBT

    알프스 지하 2000m 관통하는 세계 最長 터널
    길이 57㎞…환경 보존과 교통 증가 동시 해결
    20년간 공사비 10조 투입…터널 기술의 결정체
    지반 붕괴막는 TBM 공법, 발파 기술 등 첫 적용
    연말부터 취리히~밀라노 250㎞/h 고속열차 운행

    2010년 10월 15일,‘ 씨씨’라는 별명이 붙은 대형 굴착기가 스위스 알프스 산맥 밑을 관통하는‘고트하르트 베이스 터널’의 마지막 암벽 구간을 뚫고 나오자 근로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스위스 중부와 동남부를 잇는 이 터널은 총길이 57㎞로 일본의 세이칸터널(53.8㎞)을 밀어내고 세계 최장 터널에 등극하게 됐다./로이터 뉴시스
    2010년 10월 전 세계 미디어는 스위스에 있는 길이 57㎞ 터널 관통 소식을 숨가쁘게 타전했다. 이 터널은 스위스 취리히에서 이탈리아 밀라노를 잇는 ‘고트하르트 베이스 터널’(Gotthard Base Tunnel·GBT). 알프스산 정상에서 지하로 약 2000m 깊이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세계에서 가장 긴 터널이다. 기존의 최장 철도 터널이었던 일본 혼슈 섬과 홋카이도 섬을 잇는 세이칸터널(53.9㎞)보다 더 길다.

    ■환경 보존과 교통난을 동시 해결

    옛부터 알프스 산맥을 넘으려면 산 위를 가로지르는 도로인 고트하르트 패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해발 2000m가 넘는 고지대로 이어지는 이 도로는 스위스와 이탈리아를 잇고 독일 등 유럽 북부 국가와 알프스 남쪽까지 연결한다.

    그러나 1980년 이후 교통량이 10배 이상 급증하면서 환경 오염과 교통 체증이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고트하르트 패스를 통행하는 대형 화물차가 매년 120만대에 달하고 8년마다 두 배로 늘었다.

    이런 상황에서 1994년 스위스 정부는 의외의 조치를 내렸다. 도로망 확충이 아닌 알프스 도로 건설 금지, 알프스 횡단 화물차 대수 제한 등 규제를 더 강화한 것. 이는 당장의 교통 수요보다 환경 문제를 더욱 중요시했기때문이다.

    스위스 정부도 교통 문제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알프스를 관통하는 고속철도를 건설하고, 이를 전 유럽 고속철도 교통망에 연결하는 ‘알프 트랜싯 프로젝트(Alp Transit Project)’이다. GBT는 이 프로젝트의 일부로 알프스 산맥을 관통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스위스 엔지니어 칼 그뤼너가 고트하르트를 관통하는 철도를 처음 구상했다. 그가 1947년 고트하르트 아래를 지나는 철도를 처음 스케치한 후 69년이 흘러 세계 최장 터널이 완성됐다.
    세계에서 가장 긴 고트하르트 터널의 위치와 노선도.
    ■300년 터널 기술의 결정체

    GBT는 지난 300여 년에 걸쳐 공학자들이 만들어낸 혁신적인 기술의 집약적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GBT에 사용된 첫번째 획기적 기술은 굴착시 지반의 붕괴를 막는 쉴드(shield) 공법이었다. 19세기 초 영국의 한 토목공학자가 고안한 쉴드 공법은 굴착과 동시에 쉴드로 지반을 지탱하는 기술로 당시로선 혁신 그 자체였다. 이 공법 적용으로 영국 런던의 템즈강 지하를 관통하는 370m짜리 터널을 건설할 수 있었다.

    두번째 기술은 19세기 중반의 발파 공법과 기계식 굴착이다. 발파 공법은 인력에만 의존하던 굴착 속도를 비약적으로 증가시켰고 기계식 굴착으로 수 km에 달하는 터널을 안전하게 뚫을 수 있었다.
    1999년 11월 고트하르트 터널 공사 중 발파 작업이 진행되는 모습.
    이후 터널이 점점 길어지면서 새로운 도전 과제가 생겼다. 바로 통풍(通風) 문제였다. 19세기 말 터널 건설시 적지 않은 작업자들이 공사 중에 숨졌는데 통풍 불량이 주요 원인이었다. 하지만 강력한 송풍기와 교차 통풍관을 이용한 ‘이중 터널 통풍’ 기술이 개발되면서 긴 터널 공사시에도 근로자 안전을 보장할 수 있게 됐다.

    다음은 정확한 측량 기술이다. 터널은 지하 작업이어서 지상의 측량 방법을 적용할 수 없다. 그래서 개발된 방법이 바로 레이저 측량법이다.
    완공된 고트하르트 베이스 터널의 북쪽 출구쪽 모습./스위스트래블시스템AG
    ■국민투표 4번 거쳐 착공

    GBT는 공사 착수까지 많은 난관을 거쳐야 했다. 당장 공사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공사비는 미화 약 103억 달러, 공사 기간은 20년에 달했다.

    스위스 정부는 1992년 GBT 건설을 위해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기획 단계부터 착공까지 네 번의 투표를 부쳤다. 노선 선정(1차), 자금조달(2차), 화물차 통행료 부과(3차), EU(유럽연합)과의 계약 체결(4차) 등이었다.

    마침내 국민투표에서 64% 찬성을 얻어 1996년 공사가 시작됐다. 두 개의 터널을 굴착하기 위해 4개 지점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공사를 시작했다. 두 터널을 중간 중간 잇기 위해 325m마다 연결 통로가 설치됐다.

    터널 시공에는 발파와 TBM공법(천공 기계로 굴착하는 방법)이 적용됐다. 4개의 대형 TBM을 이용해 하루 20~25m씩 굴착했다. 매일 3000~5000t의 암석이 반출됐다. TBM은 무게가 3000t, 길이는 440m, 지름은 무려 10m에 달했다. 공사 과정에서 총 굴착된 암석은 무게 2820만t, 부피 1330만㎥에 이른다. 이집트 기자의 피라미드 5개 분량과 맞먹는 것이다.
    고트하르트 베이스터널 공사에서 땅 속 깊이 구멍을 파는 데 사용된 410m 길이의 TBM. /고트하르트 베이스터널 공식 홈페이지

    ■올 연말 고속철도 개통 예정

    터널이 뚫리면서 통행 시간이 획기적으로 단축됐다. 취리히에서 밀라노까지 열차 소요 시간은 1시간, 루가노까지는 1시간 40분 각각 줄었다. 매일 260편의 화물열차와 65편의 승객용 열차도 운행한다.

    GBT는 단선(單線) 병렬로 오른쪽 방향은 스위스 취리히를, 왼쪽 방향은 이탈리아 밀라노를 각각 향한다. 2015년부터 시험 운행을 개시했고 2016년 12월 정식 개통되면 시속 250km의 고속열차가 운행될 예정이다.
    고트하르트 베이스 터널의 공식 개통을 앞두고 시험 운행 중인 고속열차./스위스트래블시스템 AG
    터널은 태생적으로 땅 속에서 태어나 일생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다른 건축물이나 교량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멋진 자태를 뽐낼 수가 없다. 그저 어두운 지하에서 사람들의 편리한 이동을 위해 묵묵히 지반의 무게를 견디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터널의 보이지 않는 기저에는 수많은 건설공학자들의 발명과 기술 도약이 있었다. 57km라는 기념비적인 고트하르트 베이스 터널은 인류가 이룩한 터널 기술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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