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7.14 14:13 | 수정 : 2016.07.18 14:49
빌딩숲과 아스팔트로 둘러싸인 서울 도심 한복판에 논이 있고, 벼가 자라는 곳이 있다. 서울 중구 쌍림동 CJ제일제당 본사 빌딩 안이다.
빌딩 1층과 연결된 별도 공간에 만들어진 ‘CJ더팜(CJ The Farm)’은 투명한 유리창으로 둘러싸인 실내 농장이다. 2011년 새 사옥을 지으면서 반들반들한 대리석이 깔렸어야 할 사옥 1층에 황토를 퍼붓고 논과 밭을 만들었다. 논물을 대기 위해 황토 아래에 물탱크를 묻었다.
전체 면적 330㎡ 규모의 CJ더팜은 둥근 모양의 논 2개와 밭 1개가 있고, 황토가 깔린 미니 산책길과 벤치 등이 있다. 두 곳의 논에서 1년에 최대 150㎏ 정도의 쌀이 생산되고, 밭에서는 콩·토마토·상추 등 여러 밭작물이 소량 생산된다. 이곳에서 생산된 쌀과 콩 등은 CJ제일제당의 핵심 상품인 즉석밥 ‘햇반’과 두부 제품 ‘행복한 콩’의 원료 개량과 연구 등에 사용된다.
CJ더팜에 들어서니 에어컨 냉기로 서늘한 사옥 로비와 달리 더운 기운이 훅 올라왔다. CJ더팜은 농작물의 성장을 위해 연중 내부 온도를 섭씨 25~30도로 유지한다. 논밭 사이로 황토로 덮인 산책길이 있고, 직원과 외부 방문객이 쉬어갈 수 있는 벤치도 있다. 실내에는 새 울음소리가 섞인 잔잔한 배경음악이 흘러나왔다.
논에는 경기도 김포에서 조달된 김포 추청벼가 종아리 높이만큼 자라고 있었다. CJ제일제당 식품연구소 품종개발센터의 기술 조언을 받아 한 달간 모판에서 길러 5월에 모내기를 했다. 제초제를 뿌리지 않고 왕우렁이를 이용한 친환경농법으로 재배한다. 줄지어 심긴 모 사이로 아기 주먹만 한 검은 우렁이가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16㎡ 남짓한 면적의 밭에는 하늘자색고추, 가지, 토란, 상추, 토마토, 콩 등 다양한 종류의 작물 모종이 심어져 있었다.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CJ더팜의 ‘시골 풍경’은 종종 주변을 지나던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어린 아이들에게 ‘자연 학습’을 시키기 위해 가족 단위로 방문하는 경우도 많다. 동대문 등 인근 호텔에 투숙한 외국인 관광객 사이에도 ‘이색 관광지’로 소문이 났다. 대만 타이베이에서 온 허첸휘(56)씨도 10대인 딸과 CJ더팜을 찾아 기념사진을 찍었다. 허씨는 “도시 안에 농경지가 조성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왔다”며 “인공조명으로 식물을 키우는 게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CJ더팜 천장에는 할로겐등과 나트륨 등이 ‘인공 태양’ 역할을 한다. 시시각각 일조량과 습도, 온도를 체크해 자연 상태와 유사한 최적의 생육환경을 조성한다. CJ제일제당 식품연구소 품종개발센터 연구원들은 이곳에서 실내 친환경 농사가 가능한 최적의 조건을 찾고 있다. 강상원 CJ더팜 관리자는 “조명의 높낮이와 밝기에 변화를 줘 일조량과 온도를 조절하고, 에어컨과 대형 선풍기로 바람도 쐬어준다”고 말했다.
백승훈 CJ제일제당 상무는 “CJ더팜은 CJ제일제당은 물론 CJ그룹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보여주는 공간”이라며 “2011년 사옥을 새로 지으면서 CJ그룹의 초심을 되새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 했고, 그 고민의 결과물이 바로 실내 농장이었다”고 설명했다. 백 상무는 “글로벌 시장에서 식음료·물류·유통·서비스·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펼치는 CJ그룹의 모태(母胎)는 설탕과 밀가루를 만들던 식품기업(제일제당)이었다는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CJ더팜은 CJ제일제당이 자부하는 깐깐한 원료 관리를 상징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올해로 출시 20년이 된 즉석밥 ‘햇반’과 두부 제품 등 가공식품의 원료인 농작물을 깨끗하게 만들고, 관리하고 있음을 친환경 실내 농장을 통해 보여준다는 취지이다.
CJ제일제당은 앞으로 식품소재 관련 연구개발 역량 강화에 대한 투자를 계속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작년 3월에는 한국 쌀·콩·녹두·고추·배추·참깨 등 농산물 종자 연구·개발을 강화하기 위해 종자법인 CJ브리딩도 설립했다. 문병석 CJ제일제당 식품연구소 소장은 “우수한 종자를 개발·보급하는 게 결국 농가를 돕고, 소비자에게 좋은 음식을 선보이는 지름길이 된다”며 “CJ더팜은 회사의 큰 의미와 목표가 담긴 공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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