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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또 함께… 한 지붕 세 건축가

    입력 : 2013.10.23 03:13

    [건축가의 空間] ②김광수·조재원·구승회 '커튼홀'

    대학교 선후배 사이인 셋, 한 공간에서 각자의 사무실 운영… 영화 '건축학개론' 배경되기도
    입구의 '커튼홀'은 소통의 공간… 회의실·거실이자 휴식의 장소

    '눈치 안 보고 놀면서 일할 수는 없을까. 뜻 맞고 맘 통하는 지기(知己)와 함께라면 더 좋겠지.' 요즘 젊은 세대가 꿈꾸는 이상적인 일터의 모습이다. 현실에서 두 조건을 충족하는 사무실은 드물다. 일과 놀이의 경계 허물기도 쉽지 않은 데다, 친구와 동업했다 등지는 경우는 더 많다.

    두 난제가 공간을 요리하는 건축가 셋을 만나 기발하게 풀렸다. 서울 이태원의 건축가 김광수(46·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스튜디오케이웍스 소장), 조재원(43·공일스튜디오 소장), 구승회(42·크래프트디자인 소장)의 사무실 '커튼홀'이다. 커튼홀은 사무실 공간을 일컫는 이름이지 회사 이름이 아니다. 각자 자신의 독립된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면서 사무실을 함께 나눠 쓸 뿐이다. '공유 사무실(co-working space)' 개념이다. 영화 '건축학개론'의 배경으로도 유명하다.

    서울 이태원에 있는 건축가 김광수·조재원·구승회 소장의 공유 사무실‘커튼홀’.
    서울 이태원에 있는 건축가 김광수·조재원·구승회 소장의 공유 사무실‘커튼홀’. 커다란 홀에 녹색 커튼이 쳐져 있다. 탁구대가 탁자가 됐다가 식탁이 된다.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드는 열린 공간이다. /이진한 기자
    한 지붕 아래 세 건축가의 공생은 이렇게 시작됐다. 연세대 건축학과 선후배로 호형호제하는 사이인 셋은 3년 전 각자 사무실을 알아보고 있었다. 우연히 만나 무심코 튀어나온 말에 셋의 눈이 반짝였다. "일은 따로 하고, 노는 건 같이 하면 재밌지 않을까?" 당시 이들은 소규모 사무실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직원 두셋과 일하자니 외로웠다. 그렇다고 셋이 한 조직을 만들자니 솔직히 두려웠다. 같이 일하면 각자의 또렷한 개성이 마모될 게 뻔했다. 그것이 '독립'과 '공유'라는 두 가치를 주춧돌로 한 커튼홀의 탄생 배경이다.

    이태원의 허름한 상가 건물 3층(215㎡·65평)을 개조해 만든 사무실에 들어서면 키치적인 광경에 '풋' 하는 웃음부터 새나온다. 수술실처럼 널따란 홀에 원형으로 녹색 커튼이 매달려 있다. 그 안에 탁자가 있다. 때로 탁구대가 탁자를 대신한다. 건축주가 오면 여기서 회의도 하고, 파티도 한다.

    사실 이 '커튼'과 '홀'은 공간을 구성하는 물리적 요소인 동시에, 세 건축가가 공통 토대로 삼는 소통 방식을 상징한다. 개폐가 자유로운 흐물흐물한 커튼은 유연한 사고를, 홀은 열린 커뮤니티를 의미한다. 다용도의 공간이며, 누구나 들를 수 있는 장소이다. 그 앞쪽으로는 함께 쓰는 작은 아일랜드형 주방이 있다.

    "요즘 세대는 일과 놀이의 경계를 희미하게 해서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지요. 커튼은 모호한 경계를 보여줍니다. 건축적으로 다원적인 시각도 보여주고요." 2004년 베네치아비엔날레 건축전에서 한국 특유의 '방(房) 문화'를 선보였던 김 교수는 커튼홀을 "도심으로 뛰쳐나온 거실(urban living room)" "건축 살롱"이라 일컬었다. 조 소장은 "잡담(雜談)의 힘"을 얘기했다. "얼굴 맞대고 수다 떨다 보면 의외로 건축에 쓸 아이디어를 얻곤 해요." 구 소장은 "장소의 힘"을 실감한다고 했다. "지나가다 들른 친구건, 프로젝트 때문에 온 건축주건 이 공간에서 얘기하다 보면 공기가 자연스럽게 흐르는 걸 느낍니다. 그 여유가 사고의 여지를 만들어요."

    김광수 교수가 디자인한 커튼홀 간판(왼쪽). 왼쪽으로 건축가들이 서 있는 곳에 각자의 방이 있다. 오른쪽은 각 사무소 직원이 일하는 공간.
    김광수 교수가 디자인한 커튼홀 간판(왼쪽). 왼쪽으로 건축가들이 서 있는 곳에 각자의 방이 있다. 오른쪽은 각 사무소 직원이 일하는 공간.
    공유의 공간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사무 공간이 등장한다. 왼쪽으로 같은 크기의 방 세 개가 일렬로 있다. 세 건축가의 방이다. 그 앞쪽으로 각자의 직원 두세 명이 일하는 사무 공간이 배치됐다. 직원들이 일하는 공간엔 가슴 높이 정도로 콘크리트 벽돌을 쌓아올려 파티션을 만들었다. 파티션 위는 틔어 있어 각 사무소별로 일하지만 마치 직원 10여 명이 함께 일하는 듯한 착시효과를 낸다. "작은 규모 때문에 직원들이 의기소침해지는 걸 원하지 않아서"란다. 한 달에 한 번 단체로 체육대회도 하고 회식도 한다. 경비는 정확히 삼등분. 엑셀 만들어 비용 계산하는 건 막내 구 소장의 몫이다. "벌기는 따로 벌어도 쓰는 건 나눠 쓴다"며 조 소장이 웃는다.

    "온라인에서는 '친구'가 넘쳐나지만 막상 오프라인에서 개인은 외로워요. 우린 다시 '장소'로 회귀한 겁니다. 진짜 대화하고, 진짜 살 부딪치며 서로 소통하는 거죠." 자연스레 커튼홀은 '건축 살롱'을 넘어 우리 사회의 '문화 살롱' 역할까지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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