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5.25 11:44 | 수정 : 2013.05.25 13:43
초고령화사회로 접어드는 한국, 그 수도인 서울의 ‘최고령 마을’은 어디일까. 서울시의 2013년 1분기 인구통계를 보면 중구 을지로동 일대가 서울에서 가장 노인 인구 비율이 높다. 을지로동의 인구는 2070명. 이 중 412명인 19.9%가 65세 이상 노인이다. 통계청 주민등록인구 통계를 보면 50세 이상 65세 이하 인구도 780명에 달해 50세 이상 장년층이 전체 주민의 반을 넘는다. 을지로동 다음으로 노인 인구 비율이 높은 곳은 을지로동에 인접한 종로1·2·3·4가동으로 전체의 19.0%다. 중구 회현동, 종로구 삼청동이 노인 인구 비율이 18%를 넘어 그 뒤를 잇고 있다.
행정구역상 을지로동은 서울 토박이에게도 낯선 지명. 1985년 을지로3가동과 을지로4·5가동이 합해져 생겼다. 을지로동에 포함된 법정동은 을지로3·4·5가 외에도 주교동, 방산동, 입정동, 산림동, 초동, 저동2가와 인현동1가가 포함돼 있다. 도로를 중심으로 설명하면, 서울시청에서 옛 동대문운동장 방향으로 이어진 도로에 을지로동이 있다. 관광객이 몰려오는 서울 명동, 지하철 을지로입구역을 바로 서편에 두고 북쪽에는 청계천, 아래쪽에는 남산이 있어 말 그대로 ‘도심 한복판’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법하다.
"지금 풍경이 20여년 전 그 모습 그대로..."
5월 21일 찾아간 을지로동에서 번화한 서울 도심 풍경을 엿보기란 쉽지 않았다. 지하철 을지로3가역 1번 출구로 나서자마자 보이는 것은 2~3층이 넘지 않는 낡은 건물들뿐이었다. 빼곡히 들어찬 건물들은 ‘타일’이며 ‘건설’ 등의 간판을 내놓고 있었다. 골목으로 들어서자 풍경은 더욱 낯설어졌다. 가게 이름도 없이 ‘약’이란 한 글자만 걸어둔 약국이 눈에 들어왔다. 약사 김정호(73)씨는 “20년째 여기서 약국을 하고 있다”면서 “지금 보는 풍경이 20년 전 모습 그대로”라고 말했다. 김씨는 건물 밖으로 나와 건너편 건물을 가리켰다. “저기 종합상사라고 간판 달려 있잖아요? 저기는 이름도 20년 전 그대로예요. 옆에 음식점 자리는 주인이 계속 바뀌어도 쭉 음식점이었어요. 그 옆에 인쇄소도 이름만 바뀐 거예요.”
을지로동 주민센터(동장 장철환)는 을지로3가역 이면 도로에 있었다. 장철환(58) 동장에게 취재 배경을 설명하니 시간을 내서 안내해 주겠다고 했다. 장 동장은 “이 앞 골목이 다 예전 모습 그대로라더라”는 기자의 말을 듣고 “여기보다 더 ‘심한’ 곳도 많다”며 앞장섰다. 지하철 2호선 을지로3가역에서 을지로4가역 방향. 대로변 이면의 골목길은 기자 혼자서는 다시 찾아가기 어려울 정도로 미로같이 꼬여 있었다. 3호선 을지로3가역 5번 출구를 지나 20~30m 골목 안으로 들어서자 갑자기 성인 남성 혼자 지나가기에도 버거울 만큼 좁은 골목이 나왔다. “골목 끝이 막혀 있는 건 아니냐”고 물었지만 “이 주변은 다 연결돼 있어요”라고 장 동장은 말했다.
영업을 더 이상 하지 않는 건지, 그저 낡은 것인지 알 수 없는 여관 건물 하나를 지났다. 마치 1970~19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나 영화 속 풍경처럼 손글씨가 적힌 간판이 기자 일행을 맞았다. ‘△△세탁’ ‘○○기계’ ‘□□주물’이 빛바랜 듯 칠해져 있는 흰색 간판에는 전화번호도 없었다. “서울 시내에 이런 곳이 있냐”고 놀라자, 장 동장은 건물 2층을 가리켰다. 2층이라기에는 높이가 낮아 1.5층처럼 보이는 건물이었다. 슬레이트 위에 겹겹이 방수포를 얹어둔 지붕이 눈에 띄었다. 장 동장은 “이 주변 건물은 새로 짓거나 리모델링을 못하기 때문에 물 새는 곳이 많아 이렇게 ‘가빠’ 씌운 곳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심지어 한 건물 2층 유리창은 깨져 있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것이냐 물었더니 장 동장은 “1층 주물집은 아직 영업 중”이라고 말했다.
점심시간 무렵인데도 골목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장년층은 돼 보이는 남성들뿐. 좁은 가게 안에 앉아 있는 사람 중에는 머리칼이 하얗게 센 노인들도 많았다. 두 사람 앉으면 꽉 차는 이름도 없는 구멍가게에서 손바닥만 한 TV를 보고 있던 조분이(80)씨는 이곳에서만 40년 넘게 장사를 해왔다. “한 10년 전에 저기 윗골목에서 여기로 자리를 옮겼지. 윗골목 건물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나간다고 해서 이사왔어. 내 손님? 모두 20~30년은 넘게 본 사람들이야.” 조씨는 손님 중 가장 젊은 사람의 나이대를 묻자 “50살 밑으로는 잘 안 와”라고 대답했다.
을지로동 주민센터에서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장 강대성(67)씨를 만날 수 있었다. 주간조선이 을지로동을 취재한다는 말을 듣고, 동네의 답답한 사정을 설명하기 위해 왔다고 했다. 강씨는 “주변 이웃 중에 젊은 사람은 없다”며 늙어버린 을지로동의 분위기를 전했다.
애초에 주민들이 거주할 만한 주택도 보이지 않는 동네가 현재의 을지로동이다. 강씨 역시 저동2가 상가 건물 2층에 자리 잡고 살고 있다고 했다. “13년 전에 일 때문에 여기로 이사왔어요. 다른 사람들은 훨씬 오래 살았어요. 나는 이례적인 편이죠. 그때만 하더라도 주변에 이웃들이 많은 편이었죠. 10년 전만 해도 을지로동 전체에 21개 통이 있었다고 해요. 지금은 10개 통으로 줄어들었어요. 주민이 없어지니까.” 젊은 사람들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떠나고 남은 이들은 나이 든 사람뿐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부터 이 지역을 재개발한다 만다 말이 많았거든요. 내년에는 하겠지, 그 다음 해에는 하겠지 하고 수십 년을 기다린 사람들이에요.”
서울 시내 가장 번화했던 곳이 이렇게 된 것은...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을지로3가와 을지로4가 일대는 서울 시내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었다. 명보극장과 국도극장이 주변에 있었고, 우후죽순 생겨난 각종 제조업 업장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밤이면 불야성을 이뤘다. 강대성씨는 “이 부근에 ‘판코리아’라고 유명한 술집이 있었다. 거기가 만남의 장소였는데, 주말이면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댔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을지로3가 넘어 충무로 방향에는 먹자골목도 형성돼 있었는데 주변 직장인과 학생들이 뒤섞여 늘 활기찼다는 것. 태어나 서울 중구를 떠나본 적이 없다는 토박이 안숙경(66)씨도 화려했던 당시의 분위기를 전했다. “제과점이 많아 거기서 친구들도 만나고 미팅도 했지요. 당시에는 ‘을지로에 산다’고 하면 지금 ‘강남에 산다’는 말처럼 통했어요.”
당시 을지로동 지역은 학군이 좋은 동네로도 유명했다. 경기고, 서울고, 배재고 등 유명 사립고등학교에 초·중학교도 곳곳에 있어 젊은 학부모들이 몰려들기도 했다. 세 자녀를 모두 중구 산림동에 살면서 키워낸 안숙경씨는 “아침에는 아이들 학교 보내놓고 학부모 모임이며 동네 주민들 모임에 다녀오면 하루가 꼬박 지나가곤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1980년대, 학교들이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서울고는 1980년 서초구 방배동으로, 배재고는 1984년 강동구 고덕동으로 옮겨갔고, 영희초등학교는 1989년 강남구 일원동으로 이전했다. 영희초등학교 자리에 덕수중학교가 들어서기는 했지만 현재 덕수중 한 학년 학급 수는 3개. 안숙경씨는 “이제는 주변 이웃 중에 초등학생, 중학생 자녀가 있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줄어든 인구는 대부분 경제활동이 활발한 젊은층이다. 강대성씨는 “을지로동의 쇠락은 여기 터전을 잡은 제조업의 쇠락과 맥을 같이한다”고 설명했다. 을지로동 인근에는 구역별로 도기, 조명, 철강·주물, 전자, 미싱, 인쇄 등 제조업체 수백 곳이 몰려 있다. 도심이라는 지리적 이점에 힘입어 기존에 소규모로 형성돼 있던 상업지역이 커졌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대형 제조업체들은 외국으로 공장을 옮기고, 소규모 업체들은 문을 닫기 시작했다. 젊은 기술자들이 을지로동을 찾지 않기 시작했다. 쉽게 점포를 옮기기 어려운 터줏대감들만 남아 상가를 운영하게 됐다.
노인 인구가 많다 보니 해만 지면 을지로동에는 인적이 드물다. 특히 을지로4가역 남쪽, 을지로4가에 있는 덕수중학교 뒤편은 동네 분위기가 음산할 정도다. 빈집과 폐가가 많기 때문이다. 기자가 이곳을 찾은 5월 21일 밤에도 오가는 사람 하나 없었다. 이 부근에서 30분을 서 있으면서 만난 사람은 빈집을 찾아 몰래 담배를 피우고 있던 중학생 3~4명뿐이었다. 대로변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하철이 지나가는 을지로3가, 을지로4가 대로변도 해가 지자 가로등만 켜진 채 오가는 사람 없는 텅 빈 동네로 변했다. 지하철 을지로3가역 바로 옆 을지로3가 파출소 조형기 소장은 “그나마 중부경찰서 부근 초동에는 유흥가가 조금 조성돼 있어 유동인구가 있는 편이지만, 을지로3가역 주변에는 순찰 다닐 때 주민들을 만나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동네 특성상 주민 대부분이 서민층이고, 노인이기 때문에 밤에는 한적하다는 것.
주민들은 지난 몇 년 동안 이곳이 재개발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안고 살았다. 강대성씨는 “재개발 필요성은 다들 인정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이 없다”고 비판했다. “물론 지금도 부분적으로는 상가 건물을 만든다는 등 개발 계획이 나오고 있는 걸로 알아요. 그러나 주민들이 원하는 것은 장기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계획입니다. 을지로동의 생활환경 문제는 주민들 나이가 들어갈수록 생존의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는 점을 알아줬으면 합니다.”
그렇다면 서울에서 노인 인구 비율이 가장 낮은 지역은 어디일까?
주민등록인구 통계자료로 본 서울에서 가장 젊은 동네는 송파구 잠실2동이다. 지하철 2호선 신천역을 끼고 있는 잠실2동에는 각각 5000가구가 넘는 잠실엘스, 잠실리센츠 등 대단지 아파트가 밀집해 있다. 이들 아파트는 재개발을 통해 2008년 여름부터 입주를 시작한 곳으로, 강남 지역으로의 접근성이 좋고 강남7학군 등 학군이 좋은 지역과도 맞붙어 있어 특히 젊은 중산층에 인기가 높다.
이 지역 인구는 2011년 기준 3만7219명. 이 중 2288명이 65세 이상 노인으로 노인 인구 비율이 6.2%밖에 되지 않는다. 송파구 전체 노인 인구 비율이 8.8%, 서울시 전체 노인 인구 비율이 10.8%인 것에 비하면 매우 낮은 수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