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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오래된 집, 오래된 골목길… 西村 걸으니 그리움만 쌓이네

    입력 : 2012.01.07 03:26 | 수정 : 2012.01.08 00:28

    서울 경복궁 서쪽마을 西村이 뜬다는데… 무엇이 있기에

    西村엔 역사가 숨쉰다
    북촌, 조선 사대부·부호 살았다면 서촌은 중인·아전까지 더불어 살아
    정선의 그림, 김정희의 글씨를 낳고 이상·윤동주가 예술혼 불태웠다

    풍화된 동네, 시간의 순례
    50년간 솥뚜껑 떡볶이 할머니, 영화의 소재가 된 형제이발관,
    경복고생이 담넘어 먹던 짜장면집… 발길 닿는 곳 어디나 명물

    서촌은 아름답지 않다
    한옥·양옥·전깃줄 뒤엉켜 있고 양팔 너비의 골목은 비좁고 옹색
    여기에 工房·카페·갤러리가 모인다, 이야기보따리 가득한 곳을 찾아

    서울대 국어교육학과 로버트 파우저(51) 교수는 서촌(西村)에 '미친' 사람이다. 미국인인 그가 사랑하는 서촌이란 효자동·누하동·통인동·옥인동·필운동·체부동·신교동 등 경복궁의 서쪽에 있다 하여 이름 붙여진 구역. 서촌에서 1년 살다가 집 앞에 높은 건물이 세워지면서 인왕산을 볼 수 없게 되자 북촌으로 이사한 그는, 서촌의 난개발이 염려돼 강의 없는 날이면 서촌으로 달려와 대책을 궁리하는 오지랖 넓은 인물이다.

    서촌에 미친 사람은 파우저 교수만이 아니다. 누상동에서 태어난 서촌 토박이 설재우(32)씨는 서촌 지키기를 아예 업으로 삼았다. 사비를 털어 '서촌라이프'라는 소식지를 펴내고, '효자동닷컴'이라는 블로그에 지역 주민들의 소소한 일상을 퍼올린다. 문 닫은 오락실 자리에 '서촌연구소'를 연 그는, 생업은 교사인 아내에게 맡긴 채 당분간 더 서촌지킴이로 살아갈 계획이다. "요즘은 서촌의 옛 풍경이 담긴 사진들을 수집하고 있어요. 찍어낸 듯 획일적이고 인위적인 전통마을이 되어버린 북촌(北村)처럼 서촌이 변질되지 않도록 노력을 다할 생각입니다."

    양팔을 벌리면 닿을 듯 좁고 옹색한 서촌의 골목길. 서울대 로버트 파우저 교수는 ‘서촌주거공간연구회’를 발족, 서촌문화 지킴이로 나섰다. / 이덕훈 기자
    서촌은 결코 아름다운 마을이 아니다. 1920년대 이후 지어진 생활형 개량한옥이 대부분이고, 그 외곽을 일제가 남긴 적산가옥과 콘크리트 양옥들이 들쭉날쭉 둘러싼 형국이다. 지붕들 사이엔 전깃줄이 뒤엉켜 있고, 골목은 양팔을 벌리면 닿을 만큼 비좁고 옹색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서촌으로 몰려온다. 예술가들의 공방이 들어오고, 작은 식당과 카페, 갤러리들이 잇달아 문을 열고 있다. 강남의 인테리어업체와 광고회사들, 시민단체 사옥들도 옮겨왔다. 서촌열풍, 이유가 뭘까.

    역사와 예술이 살아숨쉬는…

    "오래된 집, 오래된 나무, 오래된 골목길이 좋아요. 거기에 얽힌 이야기를 사랑합니다."

    지난해 가을 통인동에 문을 연 유러피안 식당 '가스트로 통'의 셰프 롤랜드 히니의 말. 스위스 사람인 그는 북촌에서 살다가 전세금이 치솟고 동네가 번잡해져 서촌으로 이사 왔다. 히니의 한국인 아내 김영심씨는 "동네를 산책하다 보면 누구의 집터, 생가였다는 걸 표시한 지표들이 곳곳에 있어 재미있다"면서 "서촌은 이야기보따리"라고 전했다.

    서촌의 명물은 오래된 가게, 착한 사람들이다. 청와대 직원들의 단골집이었던 ‘형제이발관’, 경복고등학교 학생들의 사랑을 받아온 중국 음식점 ‘중국’, 설 명절이면 토박이는 물론 외지인들까지 몰려와 분주해지는 ‘통인시장’이다. / 이덕훈 기자
    실제로 서촌엔 역사의 숨결이 살아 있다. 조선시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자리한 북촌이 사대부 집권 세력과 부호들의 거주지였다면, 서촌은 고관대작부터 중인, 아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신분 층이 함께 살아온 곳이다. 세종대왕 이도(李�i��)가 태어나고 영조가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아호(雅號)가 '필운'이었던 조선 중기의 재상 이항복과 겸재 정선, 추사 김정희가 서촌에서 살았다. '사라진 서울'을 쓴 강명관 교수에 따르면, 서촌은 서인, 그중에서도 소론이 살았고, 특히 누하동에는 대전별감파들이 많이 살았다. 신교동은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씨가 살던 선희궁 자리로, 안동김씨의 발상지로도 유명하다.

    서촌의 가장 큰 매력은 예술적 풍취다. 정선의 명작 '인왕제색도'가 서촌에서 그려졌고, 근대에 들어서는 소설가 이상, 한국화가 이상범과 박노수, 시인 윤동주, 천재화가 이중섭 등 문인과 화가들이 이곳에 적을 두고 예술혼을 불태웠다. 소설가 박완서가 다녔던 매동초등학교가 서촌에 있고, 배화여고는 육영수 여사의 모교다.

    생활형 개량 한옥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는 체부동 풍경이 시간의 간극을 느끼게 한다. 조선시대 고관대작과 중인, 아전들이 어우러져 살던 서촌엔 역사의 숨결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거미줄처럼 이어진 골목길 산책은 여행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 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이 밖에 통의동 백송터는 1690년경부터 자라온 천연기념물 백송이 있던 자리다. 1990년 태풍으로 고사된 뒤 지금은 나무 밑동만 남아 있는 이곳은 서촌 여행의 출발점으로 애용된다. 누상동에 있는 백호정(白虎亭)도 숨은 명소다. 오사정(五射亭), 즉 5대 국궁터 중 한 곳으로 인왕산 기슭에 있었던 무인의 궁술연습장. 지금은 백호정이란 글씨를 새긴 바위가 하나 남아 있을 뿐인데, 조선 명필 중 한 사람으로 꼽히던 엄한붕의 글씨라고 한다. 설재우씨는 옥인동 언덕배기에 자리한 '서울교회'에도 꼭 가보라고 권했다. "이승만 박사가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만든 교회인데, 그 교회 종은 1년에 딱 두 번 울립니다. 서울교회에서 내려다보는 서촌 정경이 일품이지요."

    오래된 가게, 착한 사람들

    흥미로운 건 서촌의 진짜 명물은 현재 살아있는 사람들, 그들의 가게라는 점이다. 금천시장 한 귀퉁이에서 50여년 동안 무쇠 솥뚜껑에 떡볶이를 만들어 파는 김정연 할머니. "길거리에서 평생 떡 파는 사람이 연세는 무슨…" 하면서 손사래를 치는 이 할머니의 나이는 90세가 훨씬 넘었다. 할머니의 떡볶이는 고추장 양념이 아니라 간장 양념이다. "개성 살 때 불고기 해먹고 남은 양념으로 떡을 볶아 먹었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할머니가 시장통에 나와 떡을 볶는 사연이 있다. 김 할머니는 6·25전쟁통에 남편은 물론 11살, 9살, 7살짜리 세 아이와 생이별했다. 죽기 전 자식들을 한 번이라도 만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꿈을 이루지 못한 할머니는 떡볶이를 판 돈으로 어려운 형편의 아이들을 돕는다. "날 위해 쓸 일이 있어야지. 그렇게라도 보람을 느껴서 좋아요. 일 안 하고 집에 오도카니 앉아 있으면 뭐해. 자식들 생각에 미쳐나갈 것 같은데." 그래서 어버이날이면 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공부하게 된 청년들이 보내온 카네이션이 좌판에 가득 쌓인다고 했다.

    청운동 '중국'도 서촌의 명소다. 경복고등학교 학생들이 공부하다 말고 담 넘어와 한 젓가락에 쓸어넣었다는 짜장면으로 유명한 식당. 지금은 일반에게도 널리 알려져 오전 11시부터 줄을 서야 음식을 먹을 수 있고, 배달은 절대 사절이며, 하루분 재료가 떨어지면 가차없이 문을 닫는다. 식당 주인 문경철씨는 하루 영업이 끝나면 동네 순찰을 돌면서 아이들을 돌보는 자원봉사자로도 이름이 높다.

    청와대 옆동네라는 이유로 서촌에서는 오래된 이발소와 미용실도 명소가 된다. 영화 '효자동 이발사'의 소재가 된 '형제이발관'은 20년 넘게 청와대 직원들의 머리를 깎아온 집. 동네 아저씨들 사랑방으로, 머리도 안 깎으면서 커피 한잔씩 들고 수다 떠는 사람이 이발소에 그득하다. 유정미용실은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부인인 변중석 여사를 비롯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장하진여성가족부 장관 등 정재계 여성들의 단골집이다. 불에 달궈 머리카락을 마는 구식 고데기를 아직도 사용해 일부러 구경오는 사람들도 있다.

    몇달 전 문을 닫았지만 60년 역사의 '대오서점'도 서촌 도보코스에서 빠지지 않는 명소. 주인 권오남(81) 할머니와 서점 이야기를 다큐로 찍기 위해 오는 대학생들이 있을 만큼 '스타'다. 경복궁 영추문 맞은편 길가에 있는 통의동 보안여관도 재미있다. 1930년대에 문 열어 2004년 영업을 종료할 때까지 여관으로서 기능 해온 곳. 재건축이 결정되자 여관의 역사성을 안타깝게 여긴 사람들이 2010년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었다.

    변하지 않아서, 그리워서 온다

    건축가 임형남은 서촌을 '풍화된 동네, 그래서 보이지 않는 시간의 순례가 가능한 곳'이라고 묘사한다. 최첨단 건축물이 즐비한 도심 한가운데 60~70년대 영화를 찍기 위해 마련된 세트장처럼 서촌은 낯설고 특별하다. 설재우씨는 "마을에 서린 역사, 현재의 모습을 갖추기까지의 이야기를 알아야 서촌의 진정한 멋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파우저 교수는 "나는 서촌의 골목길 그 자체, 누덕누덕 기워지고 이어붙여진 남루한 집들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촌을 찾는 도보여행자들의 절반 이상이 40~50대 중년들이다. 김영심씨는 "자기 어릴 때 살던 모습이랑 똑같아서, 고향에 온 듯 푸근해서 온다는 분들이 많다"고 했다. 설재우씨는 "서촌엔 치유의 힘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정비되지 않은 채 시간의 흐름을 간직한 날것 그대로의 모습에 사람들이 위안을 받고 돌아갑니다."

    그러나 서촌이 떠안고 있는 숙제도 적지 않다. 서울시의 '서촌 일대 한옥 663가구 보존 계획'이 일종의 관광코스 개발로 변질돼 서촌 고유의 문화와 지역성을 훼손할 우려 때문이다. "외지인들을 위해 인공적으로 단장된 한옥마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밥값이 8000~9000원 하는 북촌의 식당들은 결코 원주민을 위한 공간이 아니지요. 서촌의 보존과 개발은 철저히 주민의 일상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진행돼야 하고, 한옥의 내부는 주민들이 살기 편하게 현대식으로 수리하되,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는 붉은 벽돌담 같은 것을 전통한옥의 요소가 아니라는 이유로 철거하는 무자비한 방식이어서도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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