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0.05.06 03:09
경기침체로 건설사들 올인, 무상지분율 높다고 무조건 좋지는 않아… 분양가 높아 미분양될 수도
강동구 고덕주공 2단지 재건축 시공사 선정 총회가 열린 지난 1일. 한쪽에선 하얀 유니폼을 갖춰 입은 여성들이 조합원을 맞이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그 반대편엔 시공사 선정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감정 대립이 깊어지면서 검은색 양복을 입고 조합장 주위를 경호하던 직원들과 조합 반대 주민들의 충돌도 잦았다. 고성과 비방이 오갔으며 작은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총회는 시공사 선정을 반대하는 주민들로 인해 개회도 해보지 못하고 연기되고 말았다.
건설업체의 재건축 수주 경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주택경기 침체가 지속되자 건설업체들이 재건축 사업에 '올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건설업체들의 지나친 경쟁이 건설업체들은 물론 소비자들에게까지 손해를 입힐 수 있다고 우려한다.

애초 고덕주공 2단지 시공사 선정은 순조로울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인근 고덕주공 6단지 시공사 선정 입찰에 최근 대우건설과 두산건설이 각각 무상지분율(재건축 후 '공짜'로 소유할 수 있는 지분비율)을 164%와 172%로 제시한 것이 문제의 시작이 됐다. 고덕주공 2단지 일부 주민은 삼성물산과 GS건설 등 고덕2단지 시공사들이 제시한 무상지분율이 고덕주공 6단지의 무상지분율보다 너무 낮다며 시공사 선정을 반대하고 나섰다. 결국 고덕주공 2단지의 갈등은 건설업체들의 수주 경쟁이 심화되면서 촉발된 셈이다.

경쟁이 치열해지는 것은 장기간 주택경기 침체로 재개발·재건축 사업 이외의 주택사업은 성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오는 7월부터 공공관리자제도가 도입되면 시공사 선정이 사업인가 이후로 미뤄져 적어도 1~2년간은 재건축 사업 수주 물량이 급감할 수 있다는 우려도 한 몫하고 있다.
이에 따라 건설사들은 사업 수주를 위해 온천여행, 호텔 피로연 접대 등 갖가지 영업방법을 사용하고 모든 정보력을 총동원해 경쟁업체들보다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고덕주공 2단지에서 문제가 된 무상지분율은 건설업체가 조합원들에게 제시하는 최고의 '당근'이다. 무상지분율이 높으면 조합원들에게 돌아가는 이익이 크고 낮으면 이익 또한 적기 때문이다.
◆실현 가능성·사업성·득실 등 신중한 검토 필요
무상지분율이 높다고 해서 무조건 조합원들에게 좋은 것은 아니다. 건설사가 무상지분율을 높이기 위해서 이익을 줄이거나 일반분양가를 높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문제는 조합원들에게도 피해가 갈 수 있다는 점이다. 이익이 적으면 품질에 소홀할 수 있고 일반분양가가 높으면 향후 대규모 미분양이 발생할 수도 있다.
H건설 관계자는 "건설사들의 시공기술이 큰 차이가 없는 상황에서 공사비 절감 정도도 한계가 있다"며 "만약 어느 한 회사가 획기적인 공사비 절감 기술을 갖고 있으면서 그동안 재건축아파트의 무상지분율을 높이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스스로 폭리를 취했다고 자백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건설업체에도 경쟁 과열은 '독이 든 성배'와 같다. 단기적으로는 좋은 조건을 앞세워 수주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수익성을 악화시킬 수 있다.
실제 고덕주공 2단지 문제가 불거지면서 향후 대규모 재건축 사업을 앞둔 둔촌주공아파트, 가락시영아파트, 과천지역 재건축 아파트 단지 등지에서는 앞으로의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고덕주공아파트의 무상지분율 분석 자료를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업 계획을 바꾸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S건설 관계자는 "고덕주공아파트의 시공사 선정 결과는 향후 있을 둔촌주공아파트와 과천 재건축 아파트 단지 등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조합들이 지금까지 건설사들이 제안했던 사업을 전면 재검토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건설사가 제시한 조건이 좋다고 무조건 이에 따르지 말고 조합원들의 신중한 선택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한 전문가는 "건설업체들이 일반적인 수준 이상으로 제시하는 조건에 대해서는 보다 신중하게 검토해봐야 한다"며 "정비업체에 용역을 맡기든지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공공관리자제도가 도입되는 7월 이후로 시공사 선정을 늦춰 공공이 사업을 진행토록 하는 것도 논란의 소지를 없앨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재건축 무상지분율
재건축아파트단지 조합원이 재건축 후 추가적인 비용 부담 없이 넓혀 갈 수 있는 아파트 면적 비율을 말한다. 예컨대 무상지분율이 200%인 경우 재건축 전 대지지분이 33㎡(10평)인 조합원은 재건축 후 66㎡(20평) 아파트를 비용 부담 없이 받을 수 있다. 무상지분율은 분양가 등에 의해 결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