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7.04.23 22:07
그곳에 사는 사람들 정신세계에 토대 주택이나 건물 색의 개성과 조화 필요
유럽엔 국경이 없다. 특히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 서유럽 국가를 자동차로 여행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다른 나라에 접어든 경우도 생긴다. 설령 국경표시를 보지 못했더라도 주택의 모습을 보면 다른 국가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된다. 창이 좁고 세로로 길쭉한 집들이 나타나면 네덜란드에 진입했다는 의미고, 산등성이에 주황계열의 지붕이 많이 보이기 시작하면 흰색 벽에 목조주택이 많은 오스트리아에서 이탈리아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자동차로 자주 여행하다 보면 느낌으로 깨닫게 된다. 다른 주택 모습이 곧 유럽의 국경이다. 그만큼 나라마다 주택이나 건물에 개성이 있다는 얘기다. 국가별 개성만 있는 게 아니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도시에 따라서 개성이 다르다. 프랑스 파리의 색깔 이미지가 잿빛이라면 인상파 화가 세잔느의 고향인 엑상 프로방스는 노란계열로 채색돼 있고, 마티스를 배출한 니스는 붉은 계열로 물결친다. 엑상 프로방스의 도시 크기라고 해봐야 우리나라 군청 소재지 정도나 될까. 그런데 노란 계열의 도시 이미지는 하나의 양식이 됐다. “프로방스 풍으로 꾸며 주세요”라는 말을 한국에서도 자연스레 쓰여 지고 있을 정도로 프로방스의 도시 이미지는 건축 스타일로 굳어졌다. 게다가 도시 이미지로 돈도 벌어들이고 있다. 도시의 컬러 이미지가 그 색깔을 쓰는 세계적인 화가를 탄생시켰고, 그의 작품을 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의 이미지를 만드는 것은 개성과 조화다. 액상 프로방스와 니스는 전혀 다른 색깔을 쓰면서 개성은 뚜렷하다. 그 개성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건축물 색깔의 조화다. 액상 프로방스의 주택이나 건물은 노란 계열에서 벗어나지 않고, 니스는 붉은 계열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주택이나 건물의 개성과 조화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정신세계에 토대를 두고 있다.
필자가 프랑스 뚜흐(Tours)에 살 때 만난 프랑스 사람 압델(Abdel)의 경우를 봐도 ‘개성과 조화’를 앞세웠다. 압델은 필자의 직업이 리모델링 디자이너라는 것을 알고 나서 자기 집을 고치기 앞서 상담을 해왔다. 상담 내용은 한국 고객과 크게 달랐다. “나의 왼쪽 집 대문 색깔은 이런 색이고, 오른쪽 집 대문 색깔은 저런 색인데 우리 집 대문 색깔은 어떤 색이 좋겠느냐”는 것이 압델의 질문요지였다. 집을 짓거나 고칠 때 이웃과의 조화를 먼저 생각한다는 의미다. 그런 조화가 도시의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고, 정제된 도시 컬러가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준다는 것은 새삼스런 주장도 아니다. 다만 조화를 앞세우는 공동체 인식과 그렇게 하려는 실천 의지가 있어야 개성 있는 도시를 가꿀 수 있다.
도시, 다시 말해 실외는 조화로워야 한다면 실내는 철저히 자기 개성을 표출해야 하는 데 우리는 그 반대다. 압델은 리모델링 상담을 하면서 자기의 선호색인 파란색을 실내의 메인컬러로 하고 싶다고 했다. 그렇다면 거기에 어울리는 욕실 타일과 커튼 색깔은 뭐냐고 필자에게 질문했다. 그의 질문은 자신의 선호 색을 얘기하지 못하거나 잡지를 꺼내 보이며 똑같이 해달라고 부탁하는 상당수 한국 집주인들과 큰 차이를 보였다. 개성과 몰개성의 차이다.
유럽과 달리 우리나라 아파트나 건물의 실외는 개성이 너무 강하다. 정돈되지 않은 개성이어서 조화를 찾기 어렵다. 저마다의 컬러에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외관을 꾸민다. 그런데 실내로 들어가면 개성보다 몰개성에 가깝다. 옥상까지 멋들어지게 치장한 아파트지만 실내로 들어가면 십중팔구 그 집이 그 집이다. 거실에 놓인 TV며, 확장한 발코니까지 판박이가 따로 없다. 서울 강남 어떤 집의 수입 앤틱 가구가 근사해 보이니까 그 집 아파트 라인 전체가 똑같은 수입 가구를 들여놓았다는 에피소드도 몰개성의 단적인 경우다. 아무리 획일화됐고 붕어빵처럼 찍어 낸듯한 아파트라도 실내는 개성 있는 공간으로 바꿀 수 있다. ‘가족의 재발견’이 개성을 표현하는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