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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생애] 제16부 대외개방전략의 전개(1) - <451>

    입력 : 1999.06.13 18:02

    김종필과 대학생들의 토론 .

    ## 김종필과 대학생들의 토론 ##.

    여덟 달 간의 외유를 끝내고 돌아와 공화당에 복당하고 고향인 부
    여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한 30대 후반의 김종필은 20대 젊은이들과 민
    족주의 문제를 놓고 활발한 토론을 벌였다. 11월5일 그는 서울문리대
    정치학회가 주최한 공개정책토론회에 나가 학생들과 이런 일문일답을
    가졌다.


    사진설명 :
    김종필은 서울대학교 문리대 정치학회가 주최한 공개정책 토론회에 나가 미국을 신랄하게 비판했다.(1963년 11월 5일).


    ·학생: "공화당이 내세운 민족주의 또는 민족적 민주주의는 무엇
    인가. 아시아 - 아프리카의 반제국주의적 민주주의, 교도 민주주의,
    낫셀리즘 등과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

    ·김종필: "박정희식 민족주의는 세 가지 면에서 설명할 수 있
    다. 외국매판자본에 매수된 경제적 식민지와도 같은 지위에서 벗어나
    자, 사대주의·수구주의뿐 아니라 자유방임적 퇴폐사상에서도 벗어나
    자, 덮어놓고 반미가 아니라 생활주변을 감싸고 있는 양키즘에서 벗
    어나자는 것이다. 국회안팎에 새로운 엘리트층을 형성하여 국민의 감
    시로 국회가 경제발전에 힘을 집중하도록 해야 한다. 수카르노나 낫
    세르의 민족주의는 자유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 않으나 우리
    의 민족주의는 반공정신을 기둥으로 하여 민주발전을 기하자는 점에
    서 다르다.".

    ·학생: "이승만 정권이나 장면 정권 때의 민족주의와는 어떻게
    다른가.".

    ·김종필: "외세에 의존하지 말자는 점에서 다르다.".

    ·학생: "통일방안은?".

    ·김종필: "통일방안으로는 제3차 세계대전을 통한 방법, 남북전
    쟁을 통한 방법, 그리고 우리 국력을 충실하게 한 뒤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통일하는 방법이 있다. 우리는 외세의 힘을 빌거나 전쟁을
    통해서는 통일을 할 수 없다. 우리가 국력을 기르면 공산체제가 아닌
    자유세계로의 통일을 이룰것이다.".

    ·학생: "경제적으로 월등한 실력을 갖추자면 미국이 소비재나 잉
    여농산물을 주는 현실정에서는 불가능하지 않은가.".

    ·김종필: "그래서 우리가 미국측에 대해서 경제의 기초를 하나
    하나 닦을 수 있도록 원조방식을 고쳐달라고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우리 보고 반미니 공산주의자니 하고 공격하고 나온 것이 아닌가.".

    ·학생: "지난 선거 때는 툭하면 상대를 공산주의자로 몰려는 매
    카시즘이 등장했는데 공화당 정부의 대책은?".

    ·김종필: "우리는 나라의 문제를 다루는 데 어느 정권보다도 자
    유스러운 토론을 보장할 것이다.".

    ·학생: "대미정책과 미국 원조에 대한 수원태세에 대해서 말해주
    길 바란다.".

    ·김종필: "1910년의 한일합방 이후 미국의 대한정책은 잘못이 많
    았다. 결론적으로 말해 미국은 한국을 반신불수로 만들었다. 미국은
    일본의 한국 합방을 묵인했고 38선을 긋게 했다. 6·25전쟁 때는 오
    늘의 휴전선을 만들어놓았고 경제원조는 소비물자에만 치중했다. 우
    리나라의 과거 정권에도 책임이 크다. 우리는 지금 대미관계의 재조
    정을 시도하고 있다. 아무리 우리가 떠든다고 해도 일부 사람들이 말
    하듯이 '인질이 되어서라도 원조를 더 얻어오겠다'는 식의 사고방식
    이 지배한다면 일을 되지않는다. 미국에 대해 원조방식을 재고해달라
    고하는 것이 반미주의로 몰리고 있는 판이다.".

    ·학생: "공화당은 민족주의를 떠들면서도 이번 국회의원 공천을
    보면 외국의 매판자본들과 더러운 결탁을 했다. 이 문제를 어떻게 생
    각하는가.".

    ·김종필: "미안하기 짝이 없다. 로마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질수
    없다는 말처럼 우리의 현실은 이상만을 허용하지는 않는다.".

    ·학생: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대해 말해달라.".

    ·김종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수정될 부분이 많다. 처음 계
    획했던 것을 시행착오를 통해 수정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지난 1
    년간의 성과는 성공이었다고 한다. 연간 40만 톤 이상이었던 시멘트
    생산량이 내년엔 백만톤으로 늘어난다.".

    ·학생: "한일국교 정상화로 일본으로부터 밀물처럼 흘러올 비생
    산적인 풍조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김종필: "일본과의 국교정상화는 감정을 초월하여 조속히 해결
    되어야한다. 감정으로 말하면 민족주의를 부르짖는 나에게 왜 감정이
    없겠는가. 우리가 올바른 자세와 공격정신으로 막아내야 한다.".

    ·학생: "세대교체와 대학의 자유문제에 대해서?".

    ·김종필: "세대교체는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제
    그 문이 열렸으니 하향식과 상향식을 병행하여 우리가 협력하여 꼭
    성취시키자. 대학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고 학원내의 사찰이 폐지되
    도록 관계기관과 상의하겠다.".

    미국 대사관은 김종필의 이 서울대학교 토론회에 대해서 국무부에
    보고하면서 직설적으로 반감을 나타냈다. 이 보고전문은 '김종필은
    1910년 이후 미국의 대한정책과 영향력 행사를 집요하게 고발했다'면
    서 '8개월 전 우리가 그의 외유를 희망했던 여러 가지 이유들 가운데
    어느하나도 풀린 게 없다'고 개탄했다.

    김종필이 젊은 대학생들과 공개석상에서 당당하게 논쟁을 벌이면
    서 시원하게 미국의 정책을 비판한 것은 그의 대중적 인기를 높이는
    데는 크게 기여했다. 이때의 대중적 기억은 지금까지도 유효한 김종
    필의 정치적 자산이 되었다. '계속'.

    (* 조갑제 출판국부국장 *)
    (* 이동욱 월간조선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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