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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겪는 빅딜] 200만 실업…`춘투 정국' 임박

입력 : 1999.02.03 15:20





## 전방위 구조조정 내몰린 노동계…정부·기업과 '일전' 채비 ##.

♧ 영하의 날씨가 맹위를 떨치던 1월 30일 오전 11시 서울 조흥은행
광화문 지점 앞에 빨간 머리띠를 두른 20∼30대 40여명이 모여들었다.

지난해 8월 은행 구조조정 과정에서 하루 아침에 실직자로 전락한 조흥
시스템 직원들이다. 직원들은 부당 해고를 외치며 6개월째 본점과 지점
을 돌면서 시위를 계속하고 있었다.

"해고당한 날부터 지금까지 일요일을 빼고는 매일 항의집회를 갖고
있습니다.".

30대로 보이는 한 남자는 "오늘이 150일째 집회"라고 말했다. 그는
"은행이 전액출자해 만든 회사인데 이렇다 할 설명도 없이 60여명의 직
원 전원을 하루 아침에 직장에서 내몰았다"며 "구제책을 마련해주든가
퇴직금 외에 위로금을 줄 때까지 끝까지 집회를 밀고 나가겠다"고 말했
다.

조흥시스템 뿐만이 아니다. 세종로 광화문 빌딩 앞 공터는 지난해부
터 퇴출당한 직장인들의 시위장소가 돼 연일 구호와 음악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IMF 이후 구조조정과 빅딜에 따른 대량 감원으로 올해 노사분규가
심상치않을 조짐이다. 대우전자와 삼성자동차의 사업 맞교환, LG반도체
와 현대전자의 빅딜 등 5대 그룹 빅딜과 제2 금융권, 공공부문의 고용
및 구조조정이 진행중이거나 목전에 다가와 있다. 대기업 빅딜은 협력
업체의 부도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폭발력만으로 볼 때
지난해보다 더 위력적일 것이란 우려가 번지고 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벌써부터 3월 투쟁, 6월투쟁 계획 등을 밝히
고 구조조정에 따른 실업자 양산을 막겠다며 정부·기업과의 한 판 승
부를 준비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미 지난해 12월 31일 노사정위 탈퇴
를 선언했으며, 한국노총도 1월 21일 "노사정위가 합의사항을 지키지
않는 이상 앞으로 진행되는 노사정위에는 참가하지 않겠다"고 밝혀 일
찌감치 대정부 투쟁 수위를 높이고 있다. 올해 들어 노사정위원회가 변
변한 회의 한 번 열지 못하는 것도 구조조정과 고용안정이라는 양립할
수없는 명제를 짜맞추기가 어렵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양대 노총이 노사정위 탈퇴를 거론하고 나서는 이유는 올해 실업 증
가가 대규모 구조조정에 따른 인력 감축에 있다고 보기 때문. 여기에
공공부문의 구조조정까지 겹쳐 있어 99년 노동계는 벌써부터 전운이 감
돌고있다. 한국노총은 민간부문에서만 20만명 이상, 공공부문에서 3만
명 이상이 퇴출당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최대 30만명이 거리로 나앉
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정부도 이같은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최근 노동부가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실업은 지난해 실업율 평균인 6.8%를 훨씬 웃도는 7.5%선
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특히 1분기(1∼3월)에는 실업자 수가 1759만명
으로 실업률이 8.3%에 이르는 등 고용이 극도로 악화될 것으로 전망하
고 있다.

민간연구소들의 전망은 이보다 더 비관적이다. 지난해 현대경제연구
원이 발표한 99년 국내 경영전망에 따르면, 올해 2∼4월 중 실업율은 9%
대, 실업자 수는 200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예측했다. OECD 기준으로 실
업율을 계산하면 10%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분야별로는 은행권이 지난해 합병과 퇴출, 명예퇴직 등으로 약 3만
명이 옷을 벗은데 이어 한빛, 조흥, 일부 지방은행 등이 추가 감원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8월 1차로 4개 보험사가 퇴출당한 제2금융권도 예상보다 빨
리 2차구조조정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금융감독위원회는 2월 28일까지
지급여력비율을 확충하지 못하는 생보사는 매각, 또는 퇴출시킨다는 방
침. 지난해 경영개선 명령을 받은 조선 국민 태평양 한국 한덕 두원 동
아생명 등 7개사가 주대상이다. 민노총 김창희 전국생명보험노조위원장
은 "지난해 1차 구조조정 때 인수사들은 내근 직원의 15%만을 고용승계
했다"며 "국내에서는 인수 여력이 없고 외국사들은 2∼3개씩 묶어 인수
하려 하고 있어 대규모 감원이 불가피한 실정"이라고 우려했다.

이밖에 170여개 금고와 200여 신협에 대해서도 오는 3월까지 실태
점검을 끝내고 경영상태에 따라 정리 절차를 밟을 예정이어서 이 부문
의 고용조정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 고용조정에 따른 잉여 인력의 처리도 문제. 5대 그룹 총수들
은 올 신년사에서 일제히 구조조정을 실시하겠다고 밝힌데 이어, 50대
기업의 절반 이상이 올해 안에 고용조정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업구조조정위원회는 "현재 83개 기업체가 워크아웃 대상으로 선정돼
있다"며 "이들 기업의 인력조정이 대부분 올해 안에 끝날 것"이라고 밝
혔다. 민노총 고민택 고용대책국장은 "대기업들이 빅딜 후 고용 보장을
어느 정도 약속하고 있지만 이는 믿을 수 없는 약속"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해 현대와 기아자동차 합병 때도 고용보장 약속이 있었지만,
최근 관리직 30%를 감축하고, 소하리 공장 폐쇄 등을 통해 구조조정을
강행하려 하고 있다"며 "고용보장 약속은 믿을 수 없는 공수표에 불과
하다"고 말했다.

분사를 통한 고용조정도 가속화할 전망이다. 현대가 99년 말까지 167
개사를 분사하기로 했으며, 대우는 109건을 분사 대상으로 분류하고 있
다. LG도99년 말까지 9개 계열사에서 47개 사업을 분사할 계획이며, SK
는 지난해 47곳을 분사한데 이어 추가로 32개 사업을 분사하기로 했
다. 삼성은 지난해 이미 174개사 1000여명를 분사로 정리했다.

민노총 김영대 부위원장은 "대기업 분사는 비핵심 분야에서 이뤄지
기 때문에 자생력이 약하고, 해고의 위험에 쉽게 노출된다"고 말했다.

공기업의 경우 올해 3000명 이상을 내보내겠다고 밝힌 서울지하철공
사 노조가 벌써 파업불사를 선언, 긴장이 조성되고 있다. 한국통신도
앞으로 2∼3년간 1만8400여명을 감축한다는 계획이다. 한국공항공단,
산업단지공단, 한국냉장, 한국중공업, 한국종합화학 등도 고용조정을
계획하고 있다.

이처럼 고용조정이 본격화함에 따라 민노총은 지난해 12월 19일 '정
리해고 중단과 일방적 구조조정 저지를 위한 민주노총 중앙대책본부'를
결성했다. 김영대 부위원장은 "3∼4월을 투쟁기간으로 정해 고용조정을
최대한 막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민간연구소들마저 구조조정 방법과 폭을 비판하는 목소리
를 내고 있다. 한 민간연구소 연구원은 "올해 성장률은 높아지겠지만
고용창출은 없는 기형 성장이 될 것"이라며 "200만명의 실업자를 양산
하는 구조조정을 사회안정망이 취약한 우리 현실에서 버텨낼 수 있을
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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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하는 노사정위원회
올들어 회의 한 번 못 열고 '개점휴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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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와의 합의 없는 구조조정은 무의미하다"며 출범한 노사정위
원회. 2월 6일은 그 노사정위가 열린 지 1주년 되는 날이다. 그러나 노
사정위 1주년의 현실은 어둡기만 하다. 올 들어 노사정위는 본회의는
물론 상무회의조차 한 번도 열리지 못한 채 '개점휴업' 상태를 이어오
고 있다.

노사정위 사무국의 한 전문위원은 "90개 노사정위 합의사항중 입법
화한 것은 20여개에 불과해 노동계가 반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
계에서는 이 때문에 "정부가 방향을 정해놓고 노동계는 들러리만 서는
꼴"이라며 "합의사항을 지키지 않고 맘대로 구조조정한 뒤에 우리를 끼
워넣는 것이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민노총과 한국노총의 잇따른 노사
정위 불참 선언도 정부생각대로 휘둘리지 않겠다는 의도로 해석되고 있
다.

각각 2월로 예정된 양대 노총의 위원장 선거도 노사정위 앞날을 어
둡게 하고 있다. 노동단체의 성격상 선명성 경쟁을 피할 수 없어 대정
부 강경 투쟁이 득세할 가능성이 높다. 노사정위의 표류는 현재 실업자
200만을 목전에 둔 불안한 상태라는 점에서 자칫 구조조정 폭탄의 안전
핀이 뽑히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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