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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대경] IMF시대 임원은 `임시 직원'

    입력 : 1998.09.23 16:28





    ## 삼성그룹 15% 이어 LG-대우등 대기업들 '임원 감축' 나서 ##.

    대우자동차 B이사(49)는 요즘 입안이 바싹바싹 마른다. 회사에
    적은 두고있지만 재택근무라는 이름 아래 '시한부 직장생활'을 시
    작한지 이미 6개월째. 연초 용인에 있는 그룹 연수원에서 '세계경
    영을 위한 최고경영자 과정' 교육을 받은 후 사실상 대기발령 상
    태에 들어갔다.

    아직 봉급은 나오고 있지만 곧 끊어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회사가 다시 부를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자신이 근무하던
    부서에도 작년까지 7명의 임원이 있었지만 지금은 4명으로 줄었다.

    작년말 이사부장으로 진급한 1명은 "연수원에 들어가라"는 말
    을 듣고 이미 사표를 냈고, 또 다른 이사부장 1명은 자신과 마찬
    가지로 재택근무 중이다.

    그는 얼마전부터 사업을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친구들을 찾아
    다니지만 "IMF 시대 창업은 꿈도 꾸지 말라"는 말만 들었을 뿐이
    다. 그는 "아이들이 아직 고등학생이라 돈 쓸 데는 많은데 벌어놓
    은 것은 없다"며 "20년이 넘는 직장생활의 끝이 너무 허무하게 끝
    나고 있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우선적으로 정리해고 대상에 오르는 대기업
    임원들은 요즘 '괴로운 가을'을 맞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노조
    원인 사원들처럼 정리해고에 어려움을 겪지않으면서도 감원에 따
    른 비용 절감 효과가 상당해 임원들이 만만한 해고 대상일 수 밖
    에 없다.

    최근 4대 그룹 중 가장 대규모로 임원들을 정리한 곳은 삼성그
    룹. 8월말부터 본격화된 구조 개편 과정에서 삼성그룹은 전체 임
    원 1천2백50명 중 12%선인 1백50명을 퇴출시킨다는 방침을 세웠다.

    계열사별로는 삼성물산이 전체 1백50명 중 20여명을 내보냈고
    삼성생명도 60명의 임원 중 21명을 잘랐다. 삼성전자는 3백20명의
    전체 임원 가운데 15%인 40명 선을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게 했다.

    삼성전자는 연말까지 지속적으로 임원들을 솎아내 올해 안에 30∼
    40%까지 임원들을 퇴출시킬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그룹의 '임원 자르기'는 일단 1년간의 유예 기간을 두는
    방식. 계약직과 고문 상담역 자문역 등의 자리를 활용해 1년간은
    자리를 보전해 준다.

    올해 도입된 계약직 임원은 회사와 연봉 계약을 체결해 대외적
    으로는 임원 직책을 유지하면서 특정 업무를 도맡아 수행하는 '나
    홀로 이사'다.

    삼성그룹은 1년 후 복직을 원칙으로 기본급 정도의 보수만을
    지급하는 유급 안식년제도 새로 실시하고 있다. 삼성그룹 구조조
    정본부의 한 관계자는 "안식년제를 실시하면 임원 1인당 3분의 2
    정도의 비용 절감 효과를 볼 수있다"고 말했다. 일부 임원들은 분
    사나 하청업체 사장 등으로 발령을 내기도 했다.

    이번 임원 퇴출 작업에서 기준은 인사고과와 전문성이라는 것
    이 삼성그룹측의 설명. 하지만 전자와 물산의 경우는 외환거래에
    서 환차손을 많이 본 국제금융 담당 임원들이 집중적인 칼날을 맞
    았다는 후문이다. 삼성그룹은 최근 인력 구조조정 계획을 세우면
    서 사원∼과장급 인원과 차장∼부장급 인원, 그리고 임원급 인원
    을 2대 3대 5의 비율로 감축한다는 원칙을 정했다고 한다.

    대우그룹은 2000년까지 고용조정을 하지 않기로 했지만 지난해
    와 연초에 실시한 임원 대상 연수교육을 하반기부터 다시 실시할
    방침이다. 일단 연수교육을 받게 되면 18주 동안은 기존 업무에서
    손을 떼고 사실상 대기발령상태가 되기 때문에 임원들은 "용인 연
    수원에 가라"는 말을 '사형선고'로 받아들이는 분위기.

    대우그룹은 이미 올해 임원 승진을 동결해 작년에 비해 이미
    임원수가 많이 준 상태라고 한다. 작년말 1천1백명(이사부장 이상)
    이었던 임원 숫자가 6월말 현재 8백60명으로 줄었다는 것이 그룹
    측의 설명이다.

    대우그룹의 한 임원은 "임원 1명을 줄일 경우 1억원이 넘는 비
    용절감 효과가 있기 때문에 회사측에서 불필요한 임원들의 감축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초 임원 인사를 단행한 엘지그룹은 한계사업에 대한 구조
    조정 외에는 임원들에 대한 인위적인 감축 작업을 하지 않았다.하
    지만 조만간 대대적인 '임원 자르기'가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나
    돌아 임원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현재 계열사별로 진행 중인 전체 임원에 대한 연례 평가 작업
    을 바탕으로연말 정기 인사 이전에 임원 감축 작업에 돌입할 것이
    라는 얘기가 그룹 안팎에서 떠돌고 있다. 하지만 엘지그룹 구조조
    정본부의 한 관계자는 "연말정기 임원 인사 외에는 별도의 임원
    감축 작업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엘지그룹도 8월말 현재 전체 임원 수가 7백80명으로 작년말에
    비해 50명 가까이 줄었다. 엘지증권의 경우는 작년말 22명이었던
    임원중 현재 10명만이 근무하고 있는 상태. 지난 주총 때 '방만한
    경영'을 이유로 과감한 임원퇴출을 실시했고, 지금도 정원은 14명
    이지만 4명의 임원들은 엘지투신으로 옮겨가 사실상 보직해임 상
    태라고 한다.

    현대그룹은 작년부터 꾸준히 임원 수를 줄여왔기 때문에 올해
    들어 별도의 감축 작업을 실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계열사별로 분
    사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인원 변동만 있었다는 것이 그룹
    측의 설명. 하지만 작년에 비하면 임원 수가 1백명 넘게 줄었다.

    작년말 1천3백24명이었던 임원 수는 현재 1천2백명선이다.

    4대 그룹 외에도 각 그룹들은 '생존 전략'의 하나로 임원들을
    내몰고 있다. 예컨대 4개 계열사가 워크아웃 대상으로 선정된 고
    합그룹은 자구노력 차원에서 전체 임원 74명 중 50%를 연말까지
    퇴사시키기로 하고, 이미 1차로 41%에 해당하는 30명을 8월말 내
    보냈다. 고합그룹의 한 관계자는 "어느날 갑자기 보따리를 싸는
    임원들을 보니 요즘 임원들이 '파리 목숨'이라는 것을 실감하겠다"
    고 말했다.

    상장사협의회 조사를 보면 IMF 한파를 겪으며 임원들이 '파리
    목숨'이 됐다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최근 상장사협의회가 7
    백36개 상장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6월말 현재 총 임
    원수는 6천9백68명으로 전년 동기보다 14.6%가 줄었다. 숫자로 따
    지면 1년사이에 무려 1천1백92명이 줄어든 셈이다. 1개사당 평균
    임원수도 9.47명으로 작년 7월 초에 비해 1.31명이 줄었다.

    특히 상근 임원 수는 5천1백17명으로 작년 대비 1천7백30명이
    나 감소했다.

    한 회사당 상근 임원수는 6.96명으로 작년 동기 대비 2.09명이
    줄었다. 지난 1년 동안 퇴임한 임원은 모두 3천1백명으로 상장사
    1개사당 평균 4.31명의 임원들이 퇴임한 것으로 조사됐다.

    다행히 자리를 보전한 임원들도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임원들
    에 대한 대접이 전에 비해 형편없어졌을 뿐 아니라, 경제상황이
    지속적으로 악화되는 한 언제 목에 칼날이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
    이다.

    IMF 이후 각 그룹들은 비용절감 차원에서 임원들에 대한 처우
    를 사정없이줄이고 있다. 삼성그룹은 임원들이 영수증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경비를 작년에 비해 50% 깎았다. 대우그룹은 상무 이상일
    경우 1인1비서를 두던 것을 2인 1비서로 줄였고, 이사부장 이상이
    면 제공되던 차량 지원도 전무 이상으로 제한했다. 지원 차량도
    '허'자 번호판을 단 렌트카로 바꾸고 있다. 엘지그룹도 연말까지
    모든 임원들의 차량을 렌트카로 바꿀 방침이라고 한다.

    이러한 '열악한' 대우에 비해 책임과 업무는 날로 커가고 있다.

    소액주주들의 권한이 커지면서 언제 '부실 경영'의 책임을 추궁받
    을지 모르는 형편이다. 이번 인사에서 하청업체 대표로 밀려난 삼
    성그룹의 한 전직 임원은 "요즘 처럼 임원직 유지하기가 힘든 적
    도 없었을 것"이라며 "'임원'이 '임시직원'의 준말이라는 우스개
    소리도 나돌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 정장열 주간부기자·jrchung@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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