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1998.06.03 17:57
## 올들어 공단 근로자 24% 줄어…입주업체들 부도공포증 확산 ##.
우리나라 최초의 수출공업단지로 지난 64년 조성된 구로공단. 한때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는 대동맥의 심장부로 한국경제의 상징처럼 군
림했던 수출 개미군단의 본거지.
그러나 IMF의 파고는 옛날의 명성을 초라한 과거의 기억으로 돌려
놓았다.
허리띠를 졸라매며 국부를 일구어온 그곳에는 이제 IMF의 한복판을
지나쳐야 하는 산업 일꾼들의 단내나는 숨결만이 숨가쁘게 터져나오고
있었다.
5월 29일 오후 5시, 서울 구로구 구로동 197의 12 구로공단 1단지
에 자리잡은 ㈜바른손프린팅 공장. 백화점이나 제조업체 포장지 등을
인쇄해온 이 공장은 올해 들어 불어닥친 IMF의 파고를 버티지 못하고
끝내 좌초하고 말았다.
5월의 햇살이 아직 한창인데도 전등조차 없는 텅 빈 공장 안은 어
둠만이 무겁게 내려 앉았고, 공장 안을 가득 메웠을 인쇄기계과 기계
소음은 이제 뿔뿔이 흩어져 버린 근로자들의 기억 속에만 남아있을 뿐
이었다. 경비초소에는 인적이 끊긴지 오래된 것을 증명이나 하듯 TV와
의자 위로 먼지가 수북히 내려 앉아 있었다.
기계음이 멈춘 공장 밖 공터에는 이 업체에 화장품 포장용 케이스
제작을 의뢰했던 한 제조업체 직원이 나와 분주하게 작업을 지시하고
있었다. 그는 "단종된 제품의 포장용 케이스가 공장 안에 방치돼 있어
태워버리기 위해 가지러 왔을 뿐"이라고 말했다. 주인없는 회사에 자
사 제품 포장지가 버려져 있으면 무허가 업자들이 가져다가 사용할 우
려가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쓸모없는 케이스들은 전에도 폐기 처분했지만 빈 공장에서
물건을 내오는 기분이 썩 좋지 않다"고 말했다.
구로공단에 입주해 있는 4백여 업체 중 바른손프린팅처럼 부도를
당한 곳은 올해 들어서만 10곳에 이른다. 한보와 기아사태로 올해 못
지 않게 어려웠던 지난해 한 해 동안 부도난 업체 수와 같다.
구로공단 관리를 맡고 있는 한국산업단지공단 북부지역본부 김종운
과장은 "구로공단의 부도율이 2%를 넘고 있다"며 "아직 5월이고 금융
권과 대기업의 구조조정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라는 점을 감안하면
연말까지 부도업체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공단 주변에는
부도율이 10%를 넘을것이라는 전망도 돌고 있다.
김 과장은 "금융 구조조정이 부실 은행의 퇴출로 나타날 경우 구로
공단내 수많은 업체들이 무너지고 말 것"이라며 "지금으로서는 그저
부실 은행의 퇴출 대신 은행간 인수 합병으로 조정이 이루어지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대기업 구조조정도 큰 관심사다. 대기업의 하청을 받고 있는 업체
들은 이들 기업과 운명을 같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기업에서
의류를 하청받아 납품하는 한 의류회사 간부는 "협조융자 기업과 부도
업체들을 기준으로 살생부를 작성한다는 얘기와, 같은 그룹이라도 계
열사별로 따로 처리한다는 방침이 함께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에 원청
업체가 정리될 지 안될 지 몰라 답답하다"며 불안해 했다.
부도의 여파로 공장가동율도 크게 떨어지고 있다. 1단지에서 신문
용 백화점 전단 광고를 주로 취급하는 한 인쇄소. 한참 일할 시간인데
도 널다란 공장 안에는 직원 3명만이 나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잡담
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 "생산설비 외국으로 다 빠져나가".
이 공장의 현장 책임자는 "백화점 업계가 불황이라 전단 광고는 지
난해보다 90% 이상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일이 없는데도 직원들을 나
오라고 하는 이유는 "그저 돈주고 놀리기 아까워서"라며 "조만간 무슨
조치가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사람을 줄이겠다는 뜻이다. 그는 자신
의 운명도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D섬유의 경우 올해 들어 생산량을 10%나 줄인데 이어 또다시 15%를
추가로 줄이는 등 생산량을 전년대비 25%나 줄였다. 생산량 감소는 곧
바로 임금삭감과 해고로 이어져 이 공장에 다니는 직원이 1백명 넘게
회사를 떠났다. 전체 직원의 30%에 해당하는 수치다.
부도가 나면 기계설비들은 새 임자를 찾아 흩어지게 된다. 이런 설
비들 중에는 가끔 아깝게 외국으로 흘러들어가는 것들도 있다. 중국과
동남아업체들이 주 고객. 국내 경기가 워낙 얼어붙어 헐값에 생산 설
비들이 나와도 사가는 업체가 나오지 않는다. 지난해 부도가 난 한 섬
유회사는 국내에서 임자가 나타나지 않아 결국 중국으로 설비가 팔려
나갔다.
기업은행 구로동 지점의 조광진 계장은 "당시 성업공사를 통해 매
각을 의뢰하고 경매에 나서는 등 백방으로 인수 업체를 찾았지만 끝내
매수자가 나서지 않았다"며 "채권 회수를 위해 부득이 해외에 매각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장사가 잘돼 공장의 설비를 신형으로 교체하고 나온 것이라
면 고철처리보다는 수출을 하는 것이 낫지만 부도로 설비가 팔려나가
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라고 말했다.
양말 수출회사를 운영하는 L씨는 "최근 구로공단의 스타킹 제조업
체가 자사 기계설비를 단 5억원에 사달라며 통사정해 한 번 가봤더니
한눈에 보기에도 아직 쓸만한 물건이더라"며 "그곳 담당자로부터 '2
월부터 내놓았는데 국내에서는 원매자를 구할 수 없다'는 얘기를 듣
고 가슴이 답답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다가 우리 중소기업 생산
설비가 밖으로 다 빠져나가면 산업 기반이 붕괴되는 것 아니냐"며 걱
정했다.
빚을 끌어 쓰려다 보니 생산 설비의 소유권을 은행에 넘기고 담보
를 받는 이른바 '양도 담보'라는 것도 구로공단 업체들 사이에 성행
하고 있다. 설비는 공장주가 돌리지만 설비 소유권은 은행에 넘어가
기 때문에 형식상으로는 리스 계약이 된다. 지난해 부도를 낸 C전자
는 부도 직전 양도 담보로 제공했던 기계들을 모두 빼돌려 처분한 뒤
사장이 도망가버려 은행에 손해를 입혔다.
● 썰렁한 공단내 구인안내판.
이처럼 불황을 겪다 보니 '구로공단=인력난'이란 전통도 깨지고
말았다. 한 때 7만3천여명에 이르던 구로공단 취업 근로자는 이제 2
만6천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난해보다도 24%가 줄어든 수치다. 그
래도 96년까지는 구직자보다 구인 수요가 더 많았다. 그러나 한보사
태가 터진 지난해부터 이같은 현상은 역전되고 말았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이 운영하는 취업알선센터를 통한 구인·구직 문
의에 따르면 지난해 구인 의뢰는 1천2백58명. 반면 구직 의뢰는 1천
6백36명으로 처음으로 구직자 수가 구인자 수를 앞질렀다.
한국산업단지공단 관계자는 "96년까지는 알선이 곧 취업을 의미했
지만 지난해부터 2년 연속 구직 수요가 더 많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공단 곳곳에 있는 구인 안내 광고판은 텅 빈 채 쓸쓸한 모
습이었다. 구로공단 일대에서 가장 붐비는 번화가인 공단5거리 앞 구
인 안내판에도 단 2개의 모집 광고만이 나붙었을 뿐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전직은 꿈도 꾸지 못한다. 공단5거리 구로봉
제협동조합 내에 있는 한 코트 제조업체의 김모 대리는 "올해 들어
구인 광고를 내본 일이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20대 여자들이 일자
리를 달라고 찾아오고 있지만 돌려보내는 실정이라는 것. 그는 "전에
는 직원도 자주 뽑고 생산한 의류도 모두 내수 시장에서 소화했지만
올해부터는 직원을 전혀 뽑지 않고 제조한 의류도 대부분 수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단 젊은이들의 향학열을 달래주던 산업체 특별 학급의 열기도
구로공단의 기계들 만큼이나 썰렁하게 식었다. 한 때 15개 학급이 만
들어지며 1년에 최고 2천3백명씩 입학하던 산업체 특별 학급은 이제
서울공고, 영등포여고, 대방여중 등 3곳에만 남아 있을 뿐이다. 입학
인원도 크게 줄어 지난해 27명이 입한한 데 이어 올해는 22명만이 특
별 학급의 문을 두드렸을 뿐이다. 대방여중 특별 학급은 올해를 마지
막으로 없어진다.
한국산업단지공단 김종운 과장은 "구로공단은 현재 IMF 한파 극복
과 자체구조조정이란 이중 과제를 안고 있어 당분간 어려움이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섬유업체 등의 사양 산업을 정리하고 2003년까지
벤처기업 단지로 육성한다는 것.
김 과장은 "북부지역본부 사무소 옆에 2003년까지 지하 4층 지상
15층의 벤처빌딩을 지어 2백개 벤처기업을 유치하는 등 구로공단을
첨단 테크노파크로 전환, 21세기에 다시 한 번 수출의 구심점이 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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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유공장 21세 처녀 가장
부모 실직…쥐꼬리 월급이 마지막 버팀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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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지어를 만드는 섬유회사에 다니는 K양. 이제 경우 21세에 불과
하지만 그녀는 지난 5월부터 한 집안의 가장이 됐다. 전북에서 여상을
졸업하고 들어온 첫 직장에서 3년 가까이 일해오고 있는 그녀는 요즘
어려운 집안 사정만 생각하면 우울해진다. IMF로 실직당한 부모님과
아직 학교에 다니는 세 동생. 다섯 가족의 생계와 동생들 학비가 쥐꼬
리만한 그녀의 월급에 매달려있다.
3년차인 그녀가 받는 월급은 수당을 포함해도 60만원 정도. 회사
사정이 좋지 않다며 기본급을 20%나 삭감해 지난해보다 월급이 오히려
줄어들었다.
게다가 회사측은 6월에 또 한 차례 월급을 깎겠다고 선언했다. 시
간외 수당을 없애고 기본급만 주겠다는 통보에 그녀는 애가 탄다.
그녀는 "내 기본급이 40만원인데 그거 갖고 어떻게 한 달을 사느냐"
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사표를 낼 생각은 하지도 못한다고 했다. 그녀
는 "회사를 옮기고 싶은 심정이 굴뚝같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말
했다.
"회사가 싫어서가 아니에요. 아무리 절약해도 도저히 수지 균형을
맞출 수 없을 것 같아요.".
집에는 벌써 실업자가 2명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지난 5월 나란
히 직장을 잃었다.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시골의 두 동생은 장학금을
받고 있지만 대학에 다니는 남동생 학비는 그녀 몫이다. 그녀는 "그나
마 부모님이 벌어서 부담이 덜 했는데 이제 정말로 한 집안의 가장이
됐다"고 말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그래도 열심히 노력해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동생이 대견하다"는 그녀는 "어떻게든 동생이 무사히 졸업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대학 다니는 동생도 편의점에 아르바
이트를 하고 있지만 그 돈으로는 용돈도 안된다.
그녀는 "나도 언제 회사에서 잘릴 지 모르니까 직장 다니면서 자격
증이라도 따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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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기 구슬땀 '마이크로 코리아'
"부도 냈지만 꼭 다시 일어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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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9일 오후 구로공단 3단지 마이크로 코리아 공장. 건장한 남자
3명이 활짝 열려 있는 출입구를 막고 서서 경계를 하고 있었다.
"채권자들이 나타나 회사 기물에 딱지를 붙이지 못하도록 막고 서
있는 겁니다." 정문을 지키던 직원은 "회사가 없어지면 우리도 희망이
없어지기 때문에 회사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마이크로 코리아가 부도를 낸 것은 지난해 1월 31일. '탱크팬'이라
는 신제품을 개발하느라 수백억원의 돈을 투자한 것이 화근이었다. 사
업이 좀 잘된다고 무리하게 공장을 확장 이전한 것도 자금난을 악화시
켰다.
부도를 낸 뒤 법정관리를 받는 중에도 조청길·순길 형제 사장은
회사를 떠나지 않고 기술고문으로 남았다. 그러나 부도 이후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지난해 말 법정관리마저 기각되자 형제 사장이
다시 복귀했다.
경리과 김대경 대리는 "법정관리 기간 동안 20억원대에 불과하던
매출이 지난해 12월 법정관리가 기각된 후 45억원으로 두 배 이상 뛰
었다"며 "내수가 워낙 부진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수출은 호조를 보
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수출액도 월 2백50만∼3백만달러로 부도
이전수준을 회복했다"고 말했다.
그는 "비록 중소기업이지만 우리는 마이크로라는 자체 브랜드로 세
계 시장을 개척했다"며 "해외에서 쌓은 이미지를 계속 살리기 위해서
도 반드시 재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훈주간부기자·scoop87@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