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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지하 동굴에 여의도만한 `비즈니스 타운'

      입력 : 1998.05.20 16:48






      ## 미주리주 '서브트로폴리스'…석회석 동굴에 지하도로 6.4㎞ ##.

      서울 여의도보다 더 큰 거대한 지하 동굴에 각종 기계가 쉴새 없이
      움직이고 컨테이너를 실은 대형 트럭들이 분주하게 들락거린다. 1천3
      백여명의 인력들은 자기 일에만 몰두해 있다. 바깥 세상에는 관심이
      없다. 거대한 석회석 기둥이 줄지어 있는 이곳은 마치 우주 전쟁에 대
      비한 지하 특수 기지를 연상시킨다. 아니면 핵전쟁을 준비하는 펜타곤
      의 비밀 기지라 해도 속아넘어가기 십상이다.

      미국 중부의 대도시인 캔자스시티. 캔자스주와 미주리주에 절반씩
      걸쳐 있는 캔자스시티 북동쪽 외곽의 미주리 강변에는 세계 최대 규모
      의 지하 비즈니스 타운이 자리잡고 있다. '서브트로폴리스(SubTropolis)'.

      이름 그대로 땅밑의 거대 도시이다. 밖에서 보면 서울의 남산보다도
      보잘것 없는 놀이동산처럼 보이지만 일단 시커먼 굴 안에 들어서면 거
      대한 비밀 기지가 펼쳐진다.

      서브트로폴리스의 주인은 헌트 미드웨스트 엔터프라이즈사. 프로
      미식축구단인 캔자스시티 칩스(Kansas City Chiefs)의 소유주이기도
      하다. 칩스는 지난해 슈퍼볼에서 우승한 덴버 브롱코스에 지역 결승에
      서 아깝게 지는 바람에 슈퍼볼 진출을 놓쳤지만 오랜 전통의 명문 구
      단. 서브트로폴리스는 7만9천명을 수용하는 칩스의 홈구장 애로 헤드
      스타디움보다 무려 35배나 크다고 한다.

      ● 지하 50m아래 106만여평…50여개사 입주.

      과연 얼마나 큰 것일까? 지하 동굴 면적은 자그마치 1백6만여평.크
      기는 여의도 면적(97만평)의 약 1.1배에 해당된다. 지금도 채석 작업
      이 진행 중이어서 매년 3만6백평씩 늘어나고 앞으로 5∼10년 후면 총
      1백40만평 정도의 초거대 지하 도시로 바뀌게 된다. 이중 총면적의 85.2%
      가 기둥으로 받쳐지고 있는데 지름 12.1m짜리 기둥만 무려 1만개를 훨
      씬 넘는다. 석회석의 강도는 콘크리트의 3∼6배. 이러한 기둥이 상부
      50여m의 산더미를 받치고 있다.

      지하 기지의 개발 방식은 소위 룸 앤드 필라(Room & Pillar) 방식.

      가로·세로 19.8m씩 정방형의 공간을 굴착해 석회석을 파내고 채석이
      끝나면 지름 7.7m씩의 기둥(Pillar)만 남기고 다음 공간(Room)의 굴착
      에 들어간다. 채석 장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빙산 모양의 거
      대한 기둥은 상부의 3m 두께 암반을 지탱한다.

      채석이 끝나고 난 후 석회석 기둥과 천장, 바닥에 10㎝ 두께의 콘
      크리트를 입히고 도색을 하면 산뜻한 모양의 첨단형 건물 내부로 탈바
      꿈한다. 거대한 세계 최대의 지하 공간은 이렇게 탄생했다.

      이곳은 2억7천만년 전에 미주리 강가를 따라 석회석 지층이 형성돼
      거대한 석회석 광산을 만들어 놓은 것. 2차대전 끝 무렵인 1945년 석
      회석 채석이 시작된 이후 채석하고 남은 공간을 전쟁이 끝난 뒤 각종
      기업체 공장들과 물류창고 등이 메꾸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지하
      비즈니스 복합 단지로 자리잡았다.

      전세계 카드 시장을 휩쓸고 있는 홀 마크사가 지하 50m인 이곳에
      물류기지를 두고 있고 미국 정부기관인 우편국(USPS)도 이곳에서 캔자
      스지역 우편물을 집배송하고 있다. 프라이스 캔디사, 다국적 기업인
      팜랜드사 등 50여개 쟁쟁한 회사들의 물류 기지 내지 생산 기지가 이
      곳에 입주해 있다.

      ● 기후 영향 없어 생산성 높아.

      땅도 넓은 광활한 미국에서 하필이면 왜 지하 동굴인가? 답은 의외
      로 쉽게 나왔다. "사시사철 기온 변화가 거의 없어요. 관리비가 거의
      안듭니다. 지상과 비교해 임대료와 관리비는 70% 이상 싼 편이에요.".

      헌트미드웨스트엔터프라이즈사의 마케팅담당 매니저 리처드 링거(39)
      씨의 설명이다.

      캔자스 시티의 여름철 기온은 37∼40도를 웃돈다. 겨울철엔 영하
      8도선이보통, 심하면 영하 20도까지도 내려간다. 물류업체나 첨단 제
      품을 만드는 업체들로서는 냉난방비나 관리비를 줄이는 것이 기업경영
      의 관건인데 괴팍한 중부 지역의 날씨가 여간 비용을 잡아먹는 게 아
      니다. 헌데 이곳은 연중 기온이 영상 18∼23도를 유지해 관리비가 쌀
      수밖에 없다. 최적 온도로 저장해야 하는 음식물들은 이곳이 안성맞춤
      이다.

      근로자의 생산 의욕도 기온에 좌우되지 않는다. 때문에 연평균 생
      산성이 평상 업체들보다 월등히 높다. 중부지방 특유의 악천후로 인해
      외부의 다른 업체들은 높은 결근율로 애로를 겪는데 반해 이곳은 연중
      걱정이 없다. "아무리 춥거나 더워도 집에서 차를 타고 지하 동굴의
      사무실 문 앞까지 곧바로 올 수 있어 너무 좋아요." 링거씨의 자랑이
      다.

      대부분의 근무 인원들은 한겨울에도 반팔에 티셔츠 차림. 털코트는
      생각하지도 않는다. 눈이 와도 차에 쌓일 걱정이 없고 우박이 떨어져
      도 아무런 염려가 없다. 일하다 말고 가끔씩 지나가는 트럭 운전기사
      에게 "바깥 날씨가 어떠냐"고 물어볼 뿐 날씨에도 별로 관심이 없다.

      입주업체인 케이터 이매지니어링사 공장장인 로저 거벨즈(51)씨는
      색다른 장점을 피력한다. "우리 회사는 PVC나 비닐 벽체 등 주택관련
      화학제품을 만들어요. 기계들이 다소 크고 복잡합니다. 때문에 진동을
      받을 경우 제품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는데 워낙 석회석 암반이 단단
      해 기계 작동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경비절감에다 첨단 화학 제품
      을 만드는데 적절한 환경 때문에 작업장을 이곳으로 옮겨 오게 됐다는
      설명이다. 이곳에서 1년반 정도 일을 하고 있는데 바깥 생활과 별로
      차이를 못 느낀다고 한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인기를 끄는 이유 중 또 하나가 '죽음의
      사자'로 불리는 토네이도 때문이다. "이곳은 토네이도 프리(Tornado Free)
      지역이예요. 해마다 봄철만 되면 곳곳에 회오리 바람이 몰아치는데 이
      곳에서는 아무런 걱정이 없어요." 미드웨스트 헌터사 리셉셔니스트 스
      테이시양의 얘기다.

      지하 50m의 두더지 생활은 재미난 일도 자주 만든다. "길 잃은 라쿤
      (너구리 일종)이 들어와 잡느라고 진땀을 뺐어요. 직원들과 함께 어렵
      사리 잡아서 보내주기는 했지만 얼마나 놀랐는지…. 게다가 불이 나가
      면 완전히 깜깜해져 당황하기도 합니다." 로저 거벨즈씨의 경험담이다.

      물론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미국 중부 지역의 기상 여건은 자주 바뀌
      어 갑작스런 정전 등은 항상 각오를 해야 한다.

      단점이라면 석회석 특유의 냄새와 먼지. 지하 동굴에 처음 들어가자
      마자 사실 석회석 특유의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저는 오래 있어
      서 그런지 아무렇지도 않아요." 미드 웨스트헌터사 마케팅담당 티모시
      배슬러씨의 얘기.

      그러나 지하에서 여전히 굴착이 진행되고 있어 석회석 분말이 알게
      모르게 날리는지 무척이나 갑갑함을 느꼈다. 매주 한번씩 자체 공기정
      화 장치를 체크하고, 지하에 쌓여 있는 일산화탄소량을 계속 측정한다
      고 하니 건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얘기한다.

      지하 생활의 특징이라면 시간이 빨리 간다는 것. CD롬 등을 만드는
      마이크로필름 앤 이미징사의 트루디 풀(여·46· 오퍼레이션매니저)씨
      는 "지난 2월에 이사왔는데 생각보다 생활이 마음에 든다. 여기서는 한
      눈 팔 일이 없다. 일에 집중하다보면 금방 하루가 간다"고 말한다.

      지하 동굴 안에 철도 노선이 3.2㎞, 도로는 6.4㎞가 거미줄처럼 깔
      려 있다. 철도는 미 전역으로 연결되고, 도로는 미국 대륙을 동서로 관
      통하는 I-70 고속도로를 비롯해 4∼5개의 고속도로가 불과 10분 거리에
      위치해 비즈니스 단지로서 교통 여건 역시 손색이 없다. 11개의 출입구
      가 동서남북으로나 있어 자연 통풍구 역할도 한다.

      워낙 거대하기 때문에 처음 들어간 사람은 미로에 걸려 찾기 어렵다.

      때문에 관리회사측은 기둥마다 번호를 붙이고 또 기둥도 오렌지나 푸른
      색, 보라색, 녹색 등 4가지 색으로 구분하고 있지만 역시 어렵기는 마
      찬가지였다.

      다만 이곳에는 세계 최대의 지하 비즈니스 콤플렉스의 면모에 어울
      리지 않게 고급식당이나 놀이시설 등이 없다. 한동안 식당이 있었으나
      도난사고가 잇따르고 입주 업체들도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출입하는 것
      을 꺼려 자연스럽게 식당이 철수하게 됐다고 한다.

      라디오도 회사에서 안테나를 끌어다 쓰지 않으면 안잡힌다. 때문에
      일단 출근을 하고 나면 일 이외에는 다른 일을 할 생각을 말아야 한다.

      사실상 바깥과 단절한 셈이다. 캔자스 시티에는 이러한 석회석 광산을
      이용한 비즈니스형 콤플렉스가 16개나 있다.
      <* 캔자스시티=이광회 경제과학부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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