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1998.04.01 16:12
## 도전적 가사, 자유분방한 형식 특징…"속이 다 시원하다" ##.
'너땜에 나 꼬이는 거야… 어쩌면 널 태울거야.' '머리에 꽃을 달
고 미친척 춤을, 선보기 하루 전에 홀딱 삭발을, 비오는 겨울밤에 벗
고 조깅을','차가운 네 피부 널 만지고 싶어. 싸늘한 눈동자 널 가지
고 싶어….''자줏빛 심장' 2주만에 10만장 팔려.
글귀들이 언뜻 들어봐도 심상치 않다. 언더그라운드 출신으로 주가
를 높이고 있는 록 밴드 '자우림'의 노래 가사들의 일부다.
지난해 11월 나온 음반 '자줏빛 심장'은 2주만에 10만장이 팔리는
기록을세우더니, 현재 15만장 넘게 팔리고 있다. 일부 노래 가사가 방
송국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아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지방 순회공연
을 비롯한 라이브 무대에선 매회 매진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가 치솟고
있다. '흔들리는 젊은이의 초상을 노래한다'는 그들은 어느 틈에 '언
더그라운드'에서 올라와'오버그라운드' 무대를 휘어잡고 있는 것이다.
지난 3월26일, 방송국 녹화 방송이 있던 세종대 대양홀에서 자우림
을 만났다. '자줏빛 비가 내리는 숲(자우림)'이란 뜻을 가진 그룹 이
름처럼 자줏빛은 아니었지만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몇분 안되는 리허
설 동안, 에너지를 뿜어댔던 이들이 무대 뒤 분장실로 들어왔다. 김윤
아(24·보컬)씨의 뒤를 이어 들어선 이선규(27·기타), 김진만(26·베
이스), 구태훈(26·드럼)씨. 거울 앞에 앉은 이들 옆에 나란히 앉아
거울을 통해 얘기를 나눴다.
"제가 쓴 가사가 이상하다며 묻는 사람들을 보면 오히려 이상해
요.가수한테 음악에 관한 얘기를 하면 몰라도…." 1집의 12곡중 10곡
의 노래말과 가사를 지은 김윤아씨는 이해가 안간다는 듯 말했다. "특
별히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애시당초 없어요. 그냥 생각한대로, 느낀
대로 쓴거에요. 어떻게 해석하는 지는 듣는 사람들에게 달렸구요." 그
녀는 노래 가사에 이의를 제기한 방송국측에도 아무 불만이 없다. '그
사람들 생각이 그렇다면 그런것일 뿐'이다.
사실 파격적인 가사 내용이 먼저 화제에 올랐지만, 자우림의 음악성
은 이미 인정받은지 오래다. 쾅쾅거리는 록인가 하면, 부드러운 재즈
선율이 흘러나오고…. 블루스, 재즈, 모던 록, 헤비메탈, 로큰롤 풍이
오묘하게 만난듯한 이들 음악은 고교시절에 음악 활동을 시작, 언더그
라운드 그룹만 5∼10군데씩 거치면서 기량을 한껏 높여왔다.
● "록 밴드는 무조건 청바지 차림이어야 하나요".
자우림은 자신들의 음악이 어떤 것이든 특정 부류에 속하길 거부한
다. "사고를 억압하는 것도 싫어요. 왜 록 밴드면 무조건 청바지 차림,
헤드 뱅(머리 흔들기), 남성적 사운드를 떠올리죠?"(김윤아). 때문인지
자우림의 음악풍은 물론, 슬립 원피스와 머플러가 등장하는 등 의상도
기존 록 밴드와는 확연히 다르다.
그렇다면 PC통신을 달구고, 방송 심의에 걸렸던 그들의 노랫말 역시
이런데서 나온 걸까. 자우림의 노랫말은 일단 상식을 뛰어넘는다. 문제
가 됐던 '일탈'의 '아파트 옥상에서 번지 점프를, 신도림 역 안에서 스
트립쇼를'이란 부분. 일상의 권태 속에서 평상시 하지 못하는 걸 그려
봤다는 게 이들 설명이지만, 파격적인 것은 자신들도 인정한다. '욕'이
란 곡에는 '어쩌면널 태울꺼야'란 가사도 나온다. '어떤 생각으로 썼냐'
는 물음에 김씨는 "누굴 죽이고 싶도록 미워해본 적이 없냐"고 반문했
다. "특정인일 수도, 불특정 다수일 수도 있어요. 누굴 미워하는 마음
들을 모아 강하게 표현해봤지요.".
그 중엔 가슴이 섬뜩해지는 표현들도 있다. 1, 2절을 살아있는 이와
죽은이가 말하는 식으로 돼있는 '이틀 전 죽은 그녀와의 채팅은'이란
곡도그렇다. PC통신 채팅을 하다가 해본 농담이 재미있길래 썼다고는
하지만, 그 발상에 놀라게 된다. '밀납천사'란 곡의 '차가운 네 피부
널 만지고 싶어…'는 사랑하는 사람을 박제해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드
는 상황으로, 사랑에 대한 광적인 집착을 그렸다고 한다.
이런 파격적인 자우림의 노래 가사에 대해 '톡톡 튄다', '속이 다 시
원해진다'는 쪽이 있는가 하면 '파괴적이다', '이해가 안간다'는 사람
들도 있다. 확실한 것은 이들 모두 '도대체 어떤 그룹인가' 하면서 자
우림노래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는 것이다.
"특별히 지향하는 게 없다"는 자우림 멤버의 말과 달리, 막상 그들
과 얘기를 나누다보면 자신들만의 주장이 조금씩 드러난다. '솔직한 음
악을 하겠다' '규정지워지고 싶지 않다' '돈 냄새 나는 음악은 싫다'…
그들의 노래는 어쩌면 이런 숨겨진 주의·주장들과 자신들만의 감각적
인 성향들이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른다.
드러내놓은 '개인주의'도 자우림의 매력 중 하나라고 한다. 기타리스
트 이선규씨는 "곡을 만들고 노래하는 일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라며
"그 가사를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상상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어설픈 조화'보다는 '제대로 된 각각'을 강조한다는 이들은 출신도
생김새도 제 각각이다. 경원전문대 공업경영학과를 졸업한 기타의 이선
규씨는 고입 영어학원 강사 출신. "우울해져도 남들과 달리 이상한 데
서 우울해지는 특이한 성격"이라는 그는 턱수염과 빨간 안경이 특징이
다.
이씨는 서울대 인류학과를 졸업한 베이스의 김진만씨와 95년 신촌의
'CCR(초코 크림 롤즈)'이란 밴드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었다. 이 둘이
라이브 무대에 선 김윤아를 보고 "함께 일해보자"고 제의했고, 이 때
8년간 언더그라운드 밴드만 30여군데를 돌며 드럼을 치던 구태훈씨까지
합치게 된 것이다. 당시 김윤아는 성신여대 심리학과 재학 중이었고,
구씨는 계원예술전문대학 공간디자인과를 졸업한 뒤 무대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었다. 97년 3월 이들은 자우림의 전신인 '미운 오리'란 팀을
만들었다.
그러다가 클럽 '블루 데블'에 들른 한 음반 기획자가 이들의 연주를
보고영화 '꽃을 든 남자'의 음악을 불러달라고 한 것. 그들을 '땅위(오
버그라운드)'로 나오게 한 '헤이 헤이 헤이'란 곡을 이렇게 부르게 됐
다.
출신과 성격은 제 각각이지만 꾸미지 않은 음악, 그래서 그 위에 마
음껏 덧칠할 수 있는 음악을 하겠다는 데엔 한 마음이다. "가사나 곡을
만들 때 예쁘고 멋있게 해보겠다는 생각들이 없어요. 네명이 가진 각각
의 색깔들이 합쳐져 더욱 다양한 빛을 낼 수만 있으면 돼요." (구태훈).
이들은 인기에도 별 관심이 없다. 보컬 김윤아씨는 자우림에 대한
인기 요인에 대해서도 "내가 그들이 아니라 모르겠다"고 말한다. "의도
와 달리 연예인이 됐지 사실 내가 모르는 남들이 날 아는 게 싫다"고
잘라말한다. 자우림은 자신의 음악을 사랑해주는 팬들에겐 더없이 감사
하지만 '잘 생겼다', '예쁘다'며 음악 이외의 것으로 자신들을 따르는
팬들은 사양한다고 했다.
최근 자우림은 상당히 바빠졌다. 라이브 무대 공연 스케줄이 빡빡한
데다 과거에 비해 방송 출연도 잦아졌다. 화려한 조명이 쏟아지고 이쪽
저쪽에서카메라가 비쳐도 이젠 두렵지 않다. "사실 방송에선 소리가 편
집과정을 통해 걸러지기 때문에 진짜 원하는 소리를 못내요. 게다가 표
정관리 등 신경 써야 할 구석들도 많구요."(김윤아).
스타덤에 올랐지만 자우림은 아직 '언더그라운드' 기질을 버리지 못
한 듯했다. 어쩌면 그 기질이 그들을 무대 위에 세워 음악을 내뿜게 하
고,팬들을 흡입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황성혜 주간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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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우림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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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우림의 의상과 분장은 코디네이터 회사 '코디 업'의 임정현(29)
실장과 최윤주(26), 최은주(26)씨가 맡고 있다. M·NET, DCN 등의 케이
블 방송에서도 일하는 임정현씨는 쿨, 어스, 이현우의 코디를 맡기도
했다. 이들은 록 밴드라고 무조건 청바지의 터프 가이 차림을 고집하기
보다는 보컬 김윤아에게 슬립 원피스를, 드럼 구태훈에게 벨벳 남방을
입히는 등 그룹의 개성을 살리는 데 주력한다.
매니저는 기획사 '난장' 소속의 우현정(34)씨와 강환일(28)씨이다.
우씨는 U&Me 블루, 신윤철, 이주한 밴드 등 록 밴드 매니저만 5년간
맡았다. 클럽 '블루 데블'에서 자우림을 처음 본 음반 기획자가 섭외를
하던 자리에 함께 있다가 매니저를 맡게 됐다. 강씨는 스케줄 관리는
물론,팀이 이동할때 운전기사 역할까지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