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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체리향기, `죽음'을 찾아다니는 중년사내

    입력 : 1997.12.25 17:36

    '올리브 나무 사이로'의 거장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달라진 걸까.
    올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신작 '체리향기'(1월1일 개봉)엔
    어쩐 일인지 죽음의 이미지가 가득하다. 죽음을 찾아 헤매는 중년사
    내가 있고, 살아있는 짐승을 죽여 박제로 만드는 노인이 있다. 하늘
    엔 까마귀떼가 흩어져 날고, 벌판은 나무 한그루 없이 황량하다. 보
    는 이의 마음까지 빛으로 샤워한 듯 정화시켜주는 그의 밝은 영화들
    에 익숙한 관객에게 '체리향기'의 어두운 그림자는 긴장감을 전해준
    다.

    자살을 결심한 바디는 자신이 죽은 뒤 흙으로 덮어줄 누군가를 찾
    아다닌다. 귀대를 서두르던 군인과 신심 두터운 이슬람 신학생에게
    거절당한 바디는 마침내 박제를 만드는 노인에게서 승낙받는다.

    이 영화에 음울한 분위기가 서려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관
    객의 가슴을 향해 활짝 열려있는 결말을 거쳐 '체리향기'가 부르는
    인생찬가는 키아로스타미의 어떤 전작들보다도 강렬하다. 작품에 깔
    린 죽음의 그늘은 결국 삶의 가치를 부각시키기 위한 대립항에 불과
    하다. '자살 가능성이 없었다면 수십년전 자살했을 것'이라는 어느
    루마니아 철학자의 역설적인 말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다.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설명하는 노인 바게리의 결정적인 대사는
    사실, 메시지를 너무 직접적으로 옮겨낸 듯 하다. 그래서 영화적이라
    기보다는 문학적이란 느낌까지 준다. 그러나 차근차근 쌓아올려진 이
    란인 삶의 다양한 모습들과 거기에 내재한 풍부한 의미가 마침내 후
    반부에서 바디의 텅빈 마음을 공명으로 울려댈 때의 감동은 정말 깊
    고 저릿하다. 생략하지 않고 묵묵히 지켜보는 키아로스타미식 화법은
    작품의 묵직한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더없이 적절했다. 이 고난의 시
    기에 위로를 길어다주는 '마음이 가난한 영화'. <이동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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