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기획-산업 재해 제로(0)의 길] HD현대
선박 탱크서 쓰러진 20대 협력업체 용접공 사망
현장서 고농도 이산화탄소 검출
HD현대삼호만 올해 두 번째
[땅집고] HD현대그룹 계열사에서 또 근로자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HD현대플라스포 울산 공사현장에서 추락사가 난 지 보름 만이다. 이번에는 전남 영암 HD현대삼호 조선소에서 20대 협력업체 노동자가 선박 탱크 안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올해 HD현대그룹 계열사에서 일어난 9번째 사망사고다. 정기선 회장이 '중대재해 제로'를 선언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사고는 오히려 잦아지는 모양새다.
◇탱크 안에서 "어지럽다"…고농도 이산화탄소 검출
경찰과 전국금속노동조합 등에 따르면 지난 3일 오후 6시10분쯤 HD현대삼호 영암조선소 1도크에서 건조 중이던 선박 내부 탱크에서 협력업체 소속 20대 용접공 A씨가 쓰러진 채 발견됐다. 동료들이 심폐소생술을 했고 병원으로 옮겼지만 A씨는 끝내 숨졌다.
A씨는 탱크 안에서 빠뜨린 용접 부위를 손보는 작업을 준비하면서 다른 작업자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직전에는 작업반장에게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다며 증상을 호소했다는 진술도 나왔다. 경찰이 현장을 감식해 보니 A씨가 있던 공간에서 높은 농도의 이산화탄소가 검출됐다. 전남경찰청 중대재해수사팀은 정확한 사망 원인과 가스가 들어온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밀폐공간 작업 때 안전수칙을 지켰는지와 누가 안전관리 책임을 지는지도 함께 들여다보고 있다.
밀폐공간 작업은 대표적인 고위험 작업이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은 작업 전에 산소와 유해가스 농도를 측정하고 환기를 유지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금속노조는 "작업자 2명 가운데 1명이 먼저 빠져나오면서 A씨가 홀로 남겨졌고, 현장에는 가스농도 측정기도 없었다"며 2인 1조 원칙과 가스 측정 의무가 지켜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A씨가 이상 증상을 호소한 뒤 작업 중지와 대피 조치가 제때 이뤄졌는지도 핵심 조사 대상이다.
사고 당일 오전에는 류현철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이 영암 대불국가산업단지의 조선업 사업장을 불시에 점검했다. 밀폐공간·화기 작업 안전수칙 이행 여부를 살피고 개선을 지시한 지 몇 시간 만에 같은 지역 조선소에서 사망사고가 난 것이다. 대불산단에서는 지난해 1월부터 올해 9월까지 11명이 중대재해로 숨졌다.
금속노조는 6일 전남광주 목포고용노동지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선업 호황 속에 HD현대삼호는 막대한 매출과 영업이익을 올리고 있지만 그 성과를 만들어 낸 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은 제대로 지켜지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 전남지역본부는 HD현대삼호를 특별근로감독하라고 촉구했다.
HD현대삼호 측은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관계기관이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인 만큼 조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HD현대 계열 관련 사업장서 올해 9명 사망
HD현대삼호에서 근로자가 숨진 건 올해만 두 번째다. 지난 6월 22일에는 선박을 안벽에 고정하던 40대 노동자가 끊어진 밧줄에 맞아 숨졌다. 그룹 전체로 보면 올해 사망자는 9명으로 늘었다. HD현대중공업 5명, HD현대삼호 2명, HD현대엠앤에스 1명, HD현대플라스포 1명이다. 이 가운데 최소 7명이 협력업체 소속이다.
정기선 HD현대 회장은 지난 8월 그룹 사장단 회의에서 "우리가 꿈꾸는 미래는 안전이 담보될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는 만큼, 안전을 경영의 최우선 가치로 두고 역량을 집중해달라"고 강조했다. 그룹은 이달 7일 사장단 인사에서 조민수 HD현대중공업 조선사업 대표(부사장)를 사장으로 승진시키고 안전총괄 대표이사로 내정했다. 하지만 그 뒤 한 달도 안 돼 사망자 2명이 더 발생했다. /sh0293@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