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싸게 팔지마!" 대구 아파트에 내걸린 '누수지옥' 빨간 현수막의 반전

뉴스 이지은 기자
입력 2026.10.29 06:00

[땅집고] 올해 2월 대구시 달서구 본리동에 입주한 ‘달서 푸르지오 시그니처’ 일부 주택 거실창에 ‘누수지옥’, ‘사기분양’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


[땅집고] “저 아파트 누수가 실제로 심해서가 아니라요, 주민들이 할인분양 막으려고 시위하는 거라던데…”

올해 2월 입주한 대구시 달서구 본리동 ‘달서 푸르지오 시그니처’. 지역에서 교통량이 제법 많기로 유명한 본리네거리 코너에 들어선 주상복합아파트로, 지상 최고 49층에 6개동, 총 993가구 규모 대단지다. 그런데 입주 6개월차 신축인 이 아파트 일부 가구 창문에 돌연 빨간 현수막이 내걸려 화제다. 집집마다 ‘누수지옥’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거실창 난간에 일제히 걸어두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는 것.

현장 사진을 접한 네티즌들은 “이 아파트 누수 하자가 얼마나 심했길래 그러느냐”, “하자 보수를 제대로 안해주나 보다”, “푸르지오가 아니라 ‘흐르지오’라고 불러야하는 것 아니냐”는 등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달서 푸르지오 시그니처’ 상황을 잘 아는 대구 현지 관계자들은 아파트 입주민들이 현수막을 내건 진짜 이유가 따로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시공사인 대우건설의 시공 하자를 지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업 주체의 아파트 할인 분양을 막기 위한 단체 행위라는 것. 실제로 사진을 자세히 보면 ‘누수지옥’이라는 현수막 외에, ‘사기분양’이라고 적힌 동일 디자인 현수막도 함께 눈에 띈다.

[땅집고] 온라인에서 ‘달서 푸르지오 시그니처’가 1억원 이상 할인한다는 홍보 게시물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달서 푸르지오 시그니처’는 2022년 2월 최초 분양을 시작했다. 하지만 982가구를 모집하는 1순위 청약에서 단 126명만 접수하면서 경쟁률이 0.12대 1로 저조했다. 즉 아파트 전체의 90% 정도가 대거 미분양됐다는 얘기다.

‘달서 푸르지오 시그니처’ 시행사는 에스앤비본리며, 코리아신탁에 사업을 맡겨 개발을 진행했다. 에스앤비본리 지분은 소나무홀딩스가 81.63%로 대주주며 이 밖에 ▲부산은행 8.16% ▲BNK투자증권 6.12% ▲경남은행 4.08% 등으로 구성한다. 시행사는 미분양 물량을 소진하기 위해 홍보 마케팅을 이어갔다. 하지만 2022년 하반기 들어 부동산 경기가 급격히 침체했던 가운데, 그동안 새아파트 공급량이 많았던 대구시 주택 시장이 유독 얼어붙으면서 미분양 해소가 특히 어려웠다.

결국 시행사는 업계에서 마지막 카드로 통하는 할인 분양을 결정했다. 지난 9월 기준 ‘달서 푸르지오 시그니처’는 최초 분양가 대비 최대 15% 할인율을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예를 들어 국민평형인 전용 84㎡(34평)의 경우 2022년 최고 6억3000만원 정도에 분양했는데, 현재 층수에 따라 4억8000만~5억7000만원으로 가격을 낮춘 상태다. 여기에 발코니 확장 비용도 무상으로 지원한다.

[땅집고] 과거 ‘달서 푸르지오 시그니처’ 관계자들이 계약률을 속인 사실과 할인 분양에 반대해 거리 행진 시위에 나선 입주민들. /온라인 커뮤니티



그런데 할인 분양 소식이 알려지자 기존 수분양자들이 반기를 들고 나섰다. 그렇지 않아도 미분양 아파트라는 오명 때문에 집값 상승률이 미미한 상황인데, 시행사까지 나서서 분양가를 깎아주면 주택 가치가 더 낮아질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사기분양 논란까지 불거졌다. 일부 수분양자들이 홍보 담당자로부터 ‘약 70% 정도가 분양됐다’고 안내받아 계약을 결정했는데, 현재 입주율이 30%에 못미칠 정도로 실제 분양률이 훨씬 낮았던 것이다. 이에 수분양자들은 거리에서 ‘사기분양 살인분양’, ‘대우건설 OUT’ 등 피켓을 들고 거리 행진 시위를 진행하기도 했다. 최근 아파트 거실창에 내걸린 현수막도 시위의 일환인 것으로 풀이된다.

할인 분양에도 ‘달서 푸르지오 시그니처’ 미분양 물량이 해소되지 않으면서 시행사와 대우건설 재무 상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시행사는 순손실 66억원을 기록했고, 자본 총계는 마이너스 798억원으로 완전자본잠식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대우건설에 미지급한 공사비 잔액은 1188억원으로 집계됐다.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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