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밀려난 장손이 '할아버지 신문' 구원투수"…삼성 대신 나선 CJ

뉴스 박기홍 기자
입력 2026.10.28 06:00

중앙일보 인수 우선협상대상 선정
CJ 이재현·신세계 정유경, 다우키움과 컨소시엄
삼성, JTBC 태블릿PC 보도 후 광고 축소
'이병철 손주들' 중앙일보 구원투수 등판

[땅잡고] 이병철 삼성 창립자가 1965년 9월 22일 중앙일보 창간호를 보고 있다./이병철 자서전 호암자전


[땅집고]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1965년 창간한 중앙일보가 결국 창업주의 손주들 손에 넘어갈 전망이다.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정유경 신세계 회장이 다우키움그룹과 컨소시엄을 꾸려 중앙일보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창업주의 친손자와 외손녀가 위기에 빠진 ‘할아버지의 신문’을 구하기 위해 전면에 나선 것이다. 중앙일보는 창간한 뒤 삼성 계열사로 있다가 1999년 4월 공정거래위원회 결정에 따라 계열분리됐다. 이후 이건희 선대회장의 처남인 홍석현 회장이 경영을 이끌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범(汎)삼성가의 두 기업이 창업주의 언론 유산을 이어받으려 나선 사이 삼성그룹은 인수전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공교롭게도 이재용 회장이 외면한 빈자리를 채운 곳은 고(故) 이건희 회장 시절 가장 깊은 악연을 맺었던 CJ다. 과거 삼성의 후계 구도에서 밀려나 독자 그룹으로 성장한 CJ가 이제 창업주가 만든 신문을 되살리는 데 힘을 보태는 역설적인 상황이 연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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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유산 구하러 나선 CJ·신세계

다우키움·CJ그룹·신세계 컨소시엄은 중앙일보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공식 선정됐다. CJ는 계열사 CJ올리브네트웍스를 통해 이미 중앙일보 지분 9.24%를 보유한 3대 주주다. CJ그룹 측은 “선대 이병철 회장의 창간 정신과 정통성을 이어가는 한편, CJ가 보유한 글로벌 미디어·콘텐츠, 물류, 광고 사업과의 강력한 시너지를 도모하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며 “편집권 독립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중앙일보의 경영 정상화와 재도약에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세계 측 역시 입장문을 통해 “CJ 컨소시엄에 신세계가 참여하는 형태”라며 “중앙일보의 고유한 정체성과 전문성을 존중하면서, 당사의 프리미엄 문화 플랫폼·라이프스타일 콘텐츠 등과 연계해 양사가 시너지를 창출토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수 이후 지분의 47.5%는 다우기술이 갖고, CJ그룹이 34.7%, 신세계가 12.8%를 갖는 구조로 될 것으로 알려졌다. 지분의 50%를 갖는 대주주가 없는 것은 신문법상 대기업집단의 일반일간신문 지분 한도 때문이다.

이재현 회장은 이병철 창업주의 장남인 고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의 장남으로, 명실상부한 창업주의 장손이다. 정유경 회장은 창업주의 딸 이명희 신세계 총괄회장의 장녀다.

[땅집고] 서울 마포구 상암동 중앙일보 사옥. /중앙일보


◇삼성에 밀려난 장손 CJ, 구원투수로

CJ와 삼성의 갈등은 삼가(三家)의 뿌리 깊은 후계 구도에서 시작됐다. 장남 이맹희 명예회장은 한때 삼성의 후계자로 거론됐으나, 이병철 창업주는 셋째 아들 이건희 회장을 선택했다. 이맹희 명예회장 측은 제일제당(현 CJ제일제당)을 중심으로 1990년대 계열 분리했다.

분리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과거 삼성 측이 이재현 회장 자택 인근에 CCTV를 설치해 감시했다는 보도가 나와 파문이 일었고, 2012년에는 이맹희 명예회장이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1조원대 주식 인도 소송을 제기하며 갈등이 정점에 달했다. 당시 이건희 회장은 자신의 형에 대해 “나를 포함해 누구도 그를 장손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집에서 퇴출당한 양반”이라며 거친 언사를 쏟아내기도 했다.

이후 이재용 회장 체제 들어 이재현 회장이 구속기속되자 재판부에 선처를 요청하는 탄원서를 제출하고, 이맹희 회장의 빈소를 찾는 등 다음 세대 간 해빙 기류가 형성되는 듯했다. 그러나 정작 창업주의 상징적 유산인 중앙일보가 경영난에 처하자 이재용 회장은 손을 놓았고, 삼성이 거리를 두는 사이 장손인 이재현 회장이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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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광고 끊기자 벼랑 끝 내몰린 중앙그룹

중앙그룹은 올해 6월 유동성 위기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JTBC가 206억원 규모의 유동화 차입금을 상환하지 못했고, 이어 중앙홀딩스·콘텐트리중앙·메가박스중앙·중앙피앤아이가 연달아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했다. 중앙일보 역시 워크아웃을 거쳐 경영권 매각 수순을 밟게 됐다. 그룹 전체 부채는 약 2조8000억원에 달한다.

직접적 원인은 2019년 약 7000억원에 사들인 올림픽·월드컵 중계권 부담과 메가박스중앙의 누적 적자지만, 미디어 업계에서는 이재용 회장의 삼성이 집행하던 광고를 대폭 줄인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본다.

중앙그룹 홍석현 회장은 이재용 회장의 외삼촌이다. 한때 삼성은 중앙 계열 매체의 핵심 광고주였다. 그러나 2016년 JTBC의 태블릿PC 보도로 이재용 회장이 구속되는 등 시련을 겪자, 삼성은 중앙 계열 매체에 대한 광고 집행을 급격히 축소했다. 이듬해 10분의 1로 축소됐다는 이야기가 파다했다.

결과적으로 이재용 회장이 경영적 판단을 이유로 외가이자 창업주의 유산인 중앙일보를 고립시켰고, 그 공백을 이재현 회장과 정유경 회장이 메웠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디어업계 관계자는 “든든한 삼성이 버팀목이 되어주었다면 중앙일보가 매각 체제로 내몰리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삼성대신 ‘퇴출당한 가문’이라 불렸던 CJ가 신세계와 손잡고 선대의 유산을 찾아온 형국이 됐다”고 전했다. /hong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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