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李 대통령의 주택 공급전격전, 노태우 정부도 아닌데 가능할까

뉴스 차학봉 기자
입력 2026.10.21 10:01 수정 2026.10.21 11:33

1기 신도시는 발표 2년 만에 입주했지만 집값은 오히려 폭등
착공 80% 이상 맡는 민간 묶어 두고 속도전 가능할지 의문
전세계적 주택 공급부족, 코로나 우크라이나 전쟁이 초래

[땅집고] 1기 신도시 돌관공사로 주택부족 해결의 전기를 마련한 노태우 전 대통령. 이재명 대통령이 주택공급 전격전을 선언해 다시 한번 노태우 정부의 신도시 건설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조선DB


[땅집고] 이재명 대통령이 집값 급등을 잡기 위해 '주택공급 전격전'을 꺼내 들었다. 전격전이란 번개처럼 빠른 속도와 기습으로 적의 방어선을 뚫고 들어가, 혼란과 마비를 유도해 단기간에 승리하는 군사 전술이다. 이 대통령은 20일 국무회의에서 "관행과 절차에 얽매이지 말라"며 택지 조성, 인허가, 착공 기간을 최대한 줄이는 '공급 전격전'을 주문했다. 과연 이대통령은 공급 전격전으로 임기 내에 집값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37년 전 노태우 ‘200만호'… 7개월 만에 분양, 2년 만에 입주

공급 전격전의 원조는 군인 출신 노태우 정부다. 1990년 주택보급률이 72.4%에 그칠 만큼 집이 모자란 데다 저금리·저유가·저달러의 ‘3저 호황'과 올림픽 특수가 겹치면서 집값이 폭등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주택 200만호 건설을 내걸었고, 분당·일산 등 1기 신도시에만 약 30만가구(인허가 기준)를 쏟아부었다. 1989년 신도시 계획을 발표하고 7개월 만에 시범단지를 분양했으며, 2년 만인 1991년 첫 입주가 시작됐다. 그야말로 정권의 명운을 건 돌관공사였다.

당시 문희갑 경제수석은 청와대 내에 주택건설기획단을 설치하고 단장을 맡아 입지 선정부터 건설 일정 단축까지 사업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문 수석은 당시 "무리하더라도 추진하는 길밖에 없다"며 정권 차원의 명운을 걸고 밀어붙였다. 실무자들은 "공기를 맞추지 못하면 옷을 벗어야 한다"는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서 주말도 없이 현장 밤샘 근무를 밥 먹듯 했다.

밤이 되면 대형 서치라이트를 켜고 낮과 다름없이 콘크리트 타설과 굴착 작업을 이어갔다. 보통은 토지 보상이 끝나야 공사에 들어가지만, 당시에는 보상 절차와 착공을 동시에 진행하는 초법적 패스트트랙이 채택됐다. 현재 재건축이나 신도시 개발 시 수년이 걸리는 인허가, 환경영향평가, 교통영향평가 등이 당시에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 아래 단 몇 주 만에 초고속으로 통과됐다. 자재파동이 발생하자 바다모래를 퍼올려 공사에 투입했다가 부실공사 소동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신도시 발표가 곧바로 집값을 잡지는 못했다. KB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값은 1988년 18.47%, 1989년 18.82% 올랐다. 신도시 발표 이후인 1990년에는 오히려 37.62% 폭등했다. 집값은 1991년에야 4.5% 떨어지며 하락세로 돌아섰다. 노태우 정부는 공급과 함께 토지공개념 3법, 분양권 전매 금지 같은 강력한 규제를 병행했다. 3년 대폭등 뒤의 자연스러운 조정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공급 확대의 열매는 다음 정부가 거뒀다. 노태우 정부가 깔아 놓은 공급 기반 덕분에 김영삼 정부 시절 집값은 안정세를 유지했다.

탄핵 정국을 딛고 출범한 이재명 정부에서 37년 전의 전격전이 가능할까. 한 전직 주택 관료는 "그때나 가능했던 발상"이라며 "건설 인력 고령화, 중대재해처벌법, 주 52시간제, 까다로워진 환경·교통영향평가와 문화재 발굴 등을 감안하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공급 병목은 세계적 현상… 가격이 꺾이면 착공도 꺾인다

이 대통령은 “2022년 이후 약 3년여간 서울을 중심으로 주택 인허가가 대폭 줄었다”며 공급난의 원인을 짚었다. 그러나 공급 감소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코로나 공급망 붕괴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원자재·인건비 급등이 세계적으로 주택 공급을 위축시켰다며 주택시장 '슈퍼사이클'을 전망했다.

공급 절벽은 가격이 만들었다는 분석도 많다. 전국 주택 착공은 집값이 급등하던 2021년 53만7395가구였다. 금리가 오르고 집값이 급락한 뒤인 2023년에는 24만6265가구로 반토막 났다. 2024년 30만3433가구로 다소 회복했지만, 지난해 다시 약 27만2000가구로 줄었다. 집값이 떨어지고 미분양 우려가 커지자 건설사와 시행사가 사업을 미루거나 접은 결과다. 하락기의 착공 감소가 3~4년 뒤 입주 가뭄으로 돌아와 지금의 집값을 밀어 올린 것이다. 가격이 떨어지면 공급이 줄고, 그 결과 다시 가격이 오르는 시장의 순환을 정권 탓으로만 돌리면 처방도 엇나갈 수밖에 없다.

◇"폭락 대비하라"면서 "빨리 지어라"… 엇갈린 신호

현 정부 정책은 이 모순을 그대로 안고 있다. 이 대통령은 8월 30일 SNS를 통해 집값 폭락에 대비하라고 지시했다. 19일 기자간담회에서도 집값 급락의 충격을 최소화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성훈 LH 사장도 국정감사에서 "급락할 가능성이 좀 많다"고 했다. 하지만 집값 하락이 예상되는 시장에서 민간이 땅을 사고 공사비를 들여 아파트를 지을 이유가 줄어든다. 정부는 2026~2030년 수도권에 150만가구 이상을 착공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집값이 꺾이면 민간 착공부터 다시 멈춰 2022~2023년의 공급 절벽이 되풀이될 수 있다.

수요 억제책도 공급의 발목을 잡는다. 이 대통령은 “'빚 내서 집 사면 돈 된다' 이게 너무 오랫동안 사람들 머리에 각인됐다”며 대출 규제를 유지할 뜻을 밝혔다. 금융기관은 PF 대출을 심사할 때 분양 가능성부터 따지기 때문에, 수요자의 대출이 막히면 사업도 멈춘다. 공사비와 땅값이 올라 서울에선 3.3㎡당 분양가가 8000만~1억원은 돼야 사업성이 나온다는 분석도 있다.

◇ 착공 10채 중 8채는 민간… 공공만으로는 역부족

정부는 공공 물량으로 공백을 메우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국내 주택 공급의 대부분은 민간 몫이다.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2023년 전국 주택 착공 가운데 공공 물량(1만7504가구)은 7.2%에 불과했다. 2024년 공공 착공은 5만5670가구로 전년보다 세 배 넘게 늘었지만, 여전히 전체의 18.2%에 그쳤다. 같은 해 민간 인허가는 14.7% 줄었다.

올해 수도권 착공 목표 26만8000가구 중 공공주택은 23%(6만2000가구)다. 그마저 10월 둘째 주 기준 실적은 목표의 26%에 머물러 있다. 정부는 연말 수도권 착공이 목표보다 3만3000~5만가구 부족할 것으로 보면서, 그 이유로 민간 정비사업의 착공 지연(목표 대비 23.6%)을 꼽았다. 태릉CC, 과천 경마장 등 도심 공공부지는 주민 반대와 문화재 심의, 교통 문제에 막혀 있다. 대통령 스스로 "단순히 몇 채를 짓겠다는 선언이나 발표가 아니라 실제 착공과 입주"가 중요하다고 했다. 착공의 80% 이상을 맡는 민간이 움직이지 않으면 공급 전격전은 구호에 그칠 수 있다. /hbch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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