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근저당권자 34.5% 감소, 법인은 94.7% 급증
저금리 사내대출에 주택 구매력 유지 가능성…집값 다시 상승
[땅집고] 정부가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강화한 이후 은행 대신 기업 등으로부터 돈을 빌려 집을 사는 사례가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경기 화성 동탄신도시 지역의 제1금융권 근저당권자 수는 한 달 새 34.5% 감소한 반면, 일반 기업과 비은행 금융회사 등을 포함한 '그외 법인' 근저당권자 수는 94.7% 급증하며 통계 작성 이후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특히 삼성전자가 연 1.5% 금리로 최대 5억원을 빌려주는 사내 주택대출을 시행하면서 은행권 대출 규제 사각지대가 부각되고 있다.
20일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9월 동탄 지역 집합건물의 '그외 법인' 근저당권자 수는 740명으로, 전월(380명)보다 360명(94.7%) 증가했다. 2010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많은 수치다. 반면 같은 기간 제1금융권 근저당권자 수는 1193명에서 781명으로 412명(34.5%)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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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저당권은 돈을 빌려준 채권자가 대출금을 회수하기 위해 부동산에 설정하는 담보권이다. 등기정보광장의 '그외 법인'에는 일반 기업과 보험사, 저축은행 등 비은행 금융회사 등이 포함된다. 해당 통계만으로 삼성전자 사내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은행권과 그 외 법인의 근저당권자 수가 정반대 흐름을 보였다는 점에서 주택 매수 자금의 조달 경로가 달라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은행 대출 40%로 묶였는데…삼성은 최대 5억원 지원
이 같은 변화는 정부의 대출 규제 강화와 맞물려 있다. 정부는 지난 7월 동탄을 규제지역으로 지정하고 주택담보대출 담보인정비율(LTV)을 기존 70%에서 40%로 낮췄다. 이에 따라 주택 구입에 필요한 자금을 은행에서 충분히 빌리기 어려워진 매수자들이 다른 대출 수단을 찾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전자의 사내 주택대출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9월부터 무주택 임직원을 대상으로 연 1.5% 금리에 최대 5억원의 주택 구입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수도권에서는 매매가격 25억원 이하, 전용면적 85㎡ 이하 주택이 대상이다.
이 대출은 삼성전자가 자체 자금을 임직원에게 빌려주고 해당 주택에 1순위 근저당권을 설정하는 방식이다. 은행 등 금융회사가 취급하는 일반 주택담보대출과 달리 금융권 LTV 규제를 직접 적용받지 않는다.
가령 10억원짜리 아파트를 구입할 경우 LTV 40%를 적용하면 은행에서 담보가치를 기준으로 빌릴 수 있는 금액은 최대 4억원이다. 반면 삼성전자 임직원은 회사가 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최대 5억원의 사내대출을 받을 수 있다. 다만 1순위 근저당권을 설정하는 구조여서 기존 은행 주택담보대출과의 중복 이용에는 제약이 있다.
◇주춤했던 동탄 집값 다시 상승…규제 실효성 도마
동탄 아파트값도 대출 규제 직후 잠시 주춤했다가 다시 상승폭을 키우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동탄구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률은 지난 7월 둘째 주 0.73%에서 규제 이후인 셋째 주 0.25%, 넷째 주 0.15%로 둔화했다. 그러나 10월 둘째 주에는 0.66%까지 치솟으며 규제 이전 수준에 근접했다. 정부가 대출을 조여 집값 상승세를 억제하려 했지만, 석 달 만에 다시 오름폭이 확대된 것이다.
기업 등의 자금이 주택시장에 유입되면서 대출 규제 효과가 반감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동탄 집값 상승을 삼성전자 사내대출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은행권 근저당권자가 급감한 사이 기업 등을 포함한 법인 근저당권자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특히 같은 아파트를 사더라도 일반 직장인은 강화된 LTV 규제를 적용받는 반면, 일부 대기업 직원은 저금리 사내대출로 상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에 자금을 마련할 수 있어 형평성 논란도 제기된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은행권 중심의 대출 규제만으로는 주택시장에 유입되는 자금을 통제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은행 대출을 아무리 조여도 기업의 자체 대출 등 별도의 자금조달 통로가 열려 있다면 규제 효과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며 “결국 어느 직장에 다니느냐에 따라 집을 살 수 있는 자금 여력이 달라지는 만큼 대출 규제의 실효성과 형평성을 함께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mjba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