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북한에도 '전세'가?…세입자가 갑이라는 주거 정체

뉴스 강시온 기자
입력 2026.10.11 06:00

북한 전세, 목돈 맡기고 무기한 거주
집주인은 받은 돈으로 장사·빚 상환
한국 전세와 비슷하지만 '계약기간·거래 구조'는 달라

/게티이미지뱅크


[땅집고] 평양에서 기차로 서너 시간 떨어진 황해도의 한 아파트. 시세가 2만 달러인 집에 집주인이 아닌 주민이 살고 있다. 매달 월세를 내는 것도 아니다. 입주하면서 집값의 절반 수준인 1만 달러를 집주인에게 맡겼기 때문이다.

한국의 전세와 비슷한 구조다. 북한에서는 이를 ‘대부동거’라고 부른다. 영국 BBC는 현지시간 18일 황해도 일대에서 이 같은 주거 형태가 확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부동거는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목돈을 맡기고 월세 없이 거주하는 방식이다. 다만 계약 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이 한국의 전세와 다르다. 집주인이 돈을 돌려줄 때까지 거주하는 방식으로, 1년 만에 끝날 수도 있고 2~3년 이상 이어질 수도 있다.


[땅집고] '북한 경제사회 실태 인식보고서' 내 북한의 주택 양도 매매 경험 유무. /통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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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주택공급 부족…자족적으로 해결

통일부가 지난해 발간한 ‘북한 경제사회 실태 인식보고서’에서 북한의 주택 거래가 확대된 흐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주택을 구매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2000년 이전 탈북자 가운데 1.7%에 불과했지만, 2016~2020년 탈북자 가운데서는 20.5%까지 높아졌다.

주택을 판매한 경험도 비슷하다. 2000년 이전 3.8%에서 2016~2020년에는 15.3%로 약 5배 늘었다. 주택을 다른 사람에게 양도받은 경험은 2000년 이전 0.9%에서 2016~2020년 1.9%로, 양도한 경험은 같은 기간 0.9%에서 8.5%로 증가했다.

서재평 탈북자동지회 회장은 땅집고와의 인터뷰에서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북한의 식량난이 심해짐과 동시에 국가가 주택을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면서 주민들이 비공식적인 거래를 통해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주택으로 돈 빌리는 북한 주민들

대부동거가 등장한 데에는 북한의 금융 환경도 영향이 있다. 북한에서는 개인이 은행을 통해 대출받기가 쉽지 않고, 개인 간 자금 거래에서도 마땅한 담보를 확보하기 어렵다. 반면 주택은 실질적인 거래 가치가 있는 자산으로 인식되면서 자연스럽게 담보 역할을 했다.

또 대부동거가 확산하게 된 근거로는 북한의 주택 거래 구조가 있다. 주택을 팔려는 사람은 많지만 실제 거래가 쉽지 않다는 것. 지난 2023년 탈북한 김일혁 씨는 BBC 인터뷰에서 “북한에서는 전세를 들어가는 사람이 갑인 조건 같다”고 말했다. 쉽게 말해, 집주인이 시세보다 낮은 금액을 받고 목돈을 확보하는 경우가 흔한 셈이다.

거래가 성사되면 집주인은 당장 필요한 현금을 마련할 수 있다. 집을 대부동거 형태로 내놓고 받은 돈으로 장사를 시작하거나 빚을 갚는 식이다. 서 회장은 “담보로 집값의 절반 정도를 계산하고 집에 들어가 사는 식”이라며 “주택을 사실상 담보로 활용해 목돈을 조달하는 거래”라고 했다.

한국의 전세와는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는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맡기고 정해진 계약 기간 동안 거주한 뒤 보증금을 돌려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면 북한의 대부동거는 계약 기간이 명확하지 않고, 집주인이 자금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거래가 성사되는 경우가 많다.


[땅집고] '북한 경제사회 실태 인식보고서' 내 북한의 주택 매매 시 중개인 도움을 받은 경우. /통일부


◇법적으로는 불법인데…현실에선?

사실 북한에서 주택은 원칙적으로 국가 소유다. 주민에게는 주택 소유권이 아니라 거주할 수 있는 권리를 증명하는 ‘입사증’이 발급된다. 따라서 개인 간 주택 매매나 임대는 공식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 주택 시장은 이와 다르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해 통일부 보고서 내 2019년 탈북자 증언을 보면 북한 주민들은 비공식적으로 주택을 사고팔고 있었다. 주택 거래를 전문적으로 중개하는 ‘거간꾼’도 등장했다. 탈북자 A씨는 “북한은 모든 집을 다 사고팔 수 있는데 원래 그게 정당한 일은 아니다”라면서도 “그런데도 거의 100% 정당하게 굴러가고 있다”고 했다.

통일부 보고서에 따르면 2016~2020년 탈북민 가운데 주택 판매 시 중개인을 이용했다는 응답은 30%, 구매 시에는 20%로 나타났다. 특히 2000년 이후의 시기에는 판매·구매 모두 중개인 활용 비중이 대체로 10~30% 수준을 유지하면서 주택 매매 과정에서 중개인의 도움을 받는 비율도 꾸준한 흐름이다.

서 회장은 “코로나19 전후로 이런 거래가 더욱 증가했다”며, “황해도뿐 아니라 북한 전역에서 이 같은 형태의 주거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ks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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