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임대 매물 5년 새 61% 증발, 바르셀로나는 90% 사라져
2023년 '주거권법'이 오히려 매물 가뭄 불러
문정부 실패 되풀이한 산체스 총리 인기 폭락
[땅집고]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26세 여성 갈라는 인터넷에서 찾은 월세 집을 보러 갔다가 발길을 멈췄다. 집 앞에 30명 넘는 사람이 줄을 서 있었다. 같은 시간에 수십 명을 불러 한꺼번에 집을 보여주는 이른바 '단체 집 보기'였다. 갈라가 휴대전화로 찍은 이 장면은 SNS에서 퍼지며 바르셀로나 주택난의 상징이 됐다.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일자리를 찾아 스페인 남서부 에스트레마두라에서 올라온 갈라는 두 달째 집을 구하고 있다. 지금은 일자리가 없어 중개업체들이 요구하는 소득 증빙 기준을 맞추기 어렵다. 그는 현지 매체 메트로폴리 아비에르타 인터뷰에서 "어디 살지 알아야 일할 곳을 정할 수 있는데, 일이 없으니 집을 못 구한다"고 했다.
집주인 쪽에서 본 풍경도 다르지 않다. 스페인 라디오 방송 COPE는 지난 5월 바르셀로나에서 월세 850유로(약 140만원)짜리 집을 내놓은 한 임대인의 경험을 전했다. 매물을 올린 지 30분도 안 돼 이메일 100통 이상과 부재중 전화 32통이 쏟아졌다. 바르셀로나에서 월세 1000유로 미만의 집은 그만큼 귀하다. 통계가 이를 잘 보여준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카탈루냐의 임대 매물은 최근 3년 새 15만여 채에서 10만여 채로 6만 채 가까이 줄었다. 매물 하나에 열흘 동안 최대 355명이 관심을 보였고, 바르셀로나는 경쟁이 더 치열했다. 월세 아파트 한 채가 매물로 나오면 60명 넘는 세입자가 몰린다. 집을 보러 온 사람들이 계단까지 줄을 서고, 집주인은 그중에서 세입자를 골라 받는다.
스페인이 사상 최악의 임대주택 대란을 겪고 있다. 임대주택 대란은 서민의 주거난을 해결해주겠다는 좌파 정권의 규제가 낳은 산물이다. 페드로 산체스 총리의 좌파 연립정부는 2023년 서민주택난을 해결하겠다며 임대료 인상 상한제와 세입자 강제 퇴거 제한을 꺼내 들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시장에서 임대 매물이 사라지고 임대료는 더 올랐다. 세입자를 보호하려던 규제가 오히려 세입자를 내몬 '규제의 역설'이다. 주택난으로 지지율이 급락한 산체스 총리는 11월 조기 총선 카드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장기 임대 매물 61% 증발… "집 구하기가 로또"
수치로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스페인 최대 부동산 플랫폼 이데아리스타(Idealista) 등에 따르면, 2020년 말 이후 현재까지 전국 장기 주거용 임대 매물은 61% 줄었다. 임대료 상한제를 가장 적극적으로 적용한 바르셀로나는 장기 임대 매물의 90%가 사라졌다. 마드리드도 73% 감소했다. 매물이 줄면서 집 구하기 경쟁도 치열해졌다. 임대 매물 1건당 경쟁 가구 수는 과거보다 6배 이상 늘었다. 바르셀로나와 휴양지 팔마 데 마요르카에서는 매물 하나에 60명 넘게 신청하는 일이 흔하다. 스페인 중앙은행은 구조적인 공급 부족에 수요 급증과 규제에 따른 시장 왜곡이 겹친 결과로 분석한다.
공급 측면에서 스페인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부동산 거품이 꺼진 뒤 주택 건설 기반이 무너졌다. 2008년 리먼쇼크의 직격탄을 맞고 주택시장 폭락을 시작했다. 2013년 초중반까지 하락세가 이어지며 고점 대비 약 30~40% 가까이 집값이 주저앉았다. 전국에 짓다만 주택이 넘쳐났다. 집값 폭락으로 인해 상당수 주택업체들이 부도를 냈다. 스페인 중앙은행에 따르면 2021~2024년 누적 주택 부족은 약 75만 가구에 이르고, 2028년에는 100만 가구를 넘어설 전망이다. 인구는 빠르게 느는데 인허가와 공사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수요도 크게 늘었다. 산체스 정부가 이민과 해외 인재 유치에 적극 나서면서 유입 인구가 늘었다. 대도시와 휴양 도시에는 외국인 거주자, 디지털 노마드, 유학생이 몰렸다.
◇"규제 피하자"… 에어비앤비·단기 임대로 갈아탄 집주인들
결정타는 규제였다. 정부는 2023년 5월 국가 차원의 첫 통합 주택법인 '주거권법(Ley por el Derecho a la Vivienda)'을 시행했다. 기존 계약의 임대료 인상률을 연 2~3%로 묶었다. 임대료가 소득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지역은 '주거 시장 긴장 지역'으로 지정해 신규 계약 임대료까지 정부 기준가격에 연동했다.
집주인들은 장기 임대 시장에서 이탈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수익률이 법으로 묶이고, 월세를 안 내는 세입자를 내보내기도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집을 팔거나 빈집으로 두는 경우가 늘었다. 규제를 받지 않는 에어비앤비 같은 관광용 숙박이나 11개월 미만의 '계절 임대'로 갈아타는 집주인도 속출했다. 카탈루냐에서는 규제 도입 후 단기·계절 임대가 52% 넘게 늘었다.
부작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몇 안 남은 신규 매물은 집주인들이 처음부터 임대료를 높게 부르거나 각종 부대 비용을 얹어 받는다. 대형 개발업체와 기업형 임대사업자(Build-to-Rent)들은 수익성 악화와 법적 불확실성을 이유로 신규 프로젝트를 접거나 해외로 자금을 돌렸다. 공급 기반은 더 약해졌다.
주택 정책은 정쟁의 한복판에 섰다. 우파 국민당(PP)이 집권한 마드리드와 안달루시아 등 핵심 자치주는 중앙정부의 '긴장 지역' 지정을 전면 거부했다. 올해 하반기에는 마드리드 도심에서 70년을 산 80대 세입자가 투자회사에 의해 강제 퇴거당한 사건을 계기로 전국에서 주거권 시위가 격화됐다. 산체스 정부는 단기 임대 규제 강화, 임대차 계약 자동 연장, 투기성 펀드의 주택 투자 금지를 담은 긴급 법령을 추진했다. 그러나 보수 야당은 물론 연정 파트너였던 카탈루냐 독립파 정당 '준츠(Junts)'까지 "사유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며 반대표를 던졌고, 법안은 부결됐다. 국정 동력을 잃은 산체스 총리는 11월 29일 조기 총선을 선언했다. 주택 정책과 국정 운영 전반에 대해 국민의 심판을 받겠다는 승부수다.
◇"가격 통제 대신 공급 늘려야"
전문가들은 스페인을 인위적인 임대료 통제가 매물 기근을 부른 대표 사례로 꼽는다. 스페인의 공공 사회주택 비중은 전체 주택의 2%가 안 된다. 유럽연합(EU) 평균(9%)에 크게 못 미친다. 공공이 안전판 역할을 못 하는데 민간 시장만 옥죄다 보니 수급 불균형이 극단으로 치달았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인 가격 통제 대신 구조 개혁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독일 베를린은 스페인보다 먼저 임대료 통제를 실험했다가 쓴맛을 봤다. 사회민주당·좌파당·녹색당 연립 시정부는 2020년 2월 '임대료 상한법(Mietendeckel)'을 시행했다. 2014년 이전에 지은 주택의 임대료를 2019년 6월 수준으로 5년간 동결했다. 상한선을 20% 넘는 임대료는 그해 11월부터 강제로 깎게 했고, 위반하면 최대 50만유로의 벌금을 물렸다.
독일경제연구소(DIW)에 따르면 규제 대상 주택의 임대료는 비규제 주택보다 약 11% 낮아졌다. 대신 매물이 사라졌다. 베를린의 임대주택 광고 건수는 절반 넘게 줄었다. 베를린에서 집을 못 구한 수요는 규제를 받지 않는 인근 도시로 몰렸다. 위성도시 포츠담의 임대료는 12% 뛰었다. 실험은 1년여 만에 끝났다. 연방헌법재판소는 2021년 4월 "임대료 규제는 연방의 권한"이라며 법을 무효화했다. 후유증은 지금도 남아 있다. 부동산 서비스업체 CBRE와 베를린히프 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베를린의 임대 호가 중위값은 2020년보다 55.7% 올랐다. 규제로 공급을 막으면 결국 세입자가 피해를 본다는 교훈을 베를린이 먼저 보여준 셈이다.
규제의 역설은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2020년 문재인 정부 때 임대차 2법 시행 직후 전세 매물이 급감하고 신규 계약 전셋값이 치솟았다. 세입자를 보호하겠다는 선의의 규제라도 공급을 막으면 결국 세입자가 피해를 본다는 교훈은 만국 공통이다. /hbch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