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서울주택도시공사(SH)로부터 강동구 고덕강일지구 땅을 755억원에 분양받아 개방형 신사옥을 지으려던 연예기획사 JYP의 계획이 크게 틀어졌다. 당초 신사옥 부지 남쪽에 대규모 공원이 배치된 점을 고려해 설계를 마쳤는데, SH가 돌연 이 공원을 19층 높이 건물을 개발할 수 있는 땅으로 용도변경하면서다.
이 같은 SH 결정에 JYP는 물론이고 신사옥 설계를 맡았던 유현준 홍익대 교수도 부당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SH는 고덕강일지구에 학교를 짓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공익적 판단이었다는 입장을 고수 중이다. 일각에선 신사옥 프로젝트가 백지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지만, 이미 JYP가 잔금까지 다 치른 상황이라 토지 계약 파기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755억에 SH 땅 분양받은 JYP, 남쪽 개방형 17층 신사옥 계획
JYP는 2023년 10월 SH로부터 강동구 고덕강일지구 유통판매시설용지 2블록 토지 1만675㎡를 755억원에 낙찰받았다. 이 땅에 대규모 신사옥을 건설하기 위한 투자였다. JYP는 2002년부터 쓰던 강남구 청담동 사옥을 떠나 2019년 강동구 성내동으로 옮긴 뒤 꾸준히 신사옥을 세울 땅을 찾아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박진영 JYP 대표는 고덕강일지구 부지를 낙찰받은지 한 달여 지난 시점에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큰 평지를 찾기가 너무 힘들었다”면서 “(낙찰받은 땅이) 지금 사옥보다 한 5배 크다, 공공토지고 입찰을 했는데 당첨됐는데 엄청 넓은 터다. 바로 옆에 한강 있고 산도 있고, 지금 사옥이랑도 가깝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JYP 신사옥은 지하 5층~지상 17층 규모로 계획됐다. 건축업계 인플루언서로 꼽히는 유현준 홍익대 교수가 설계를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건물은 2024년 심의를 통과한 뒤 올해 4월 건축허가를 받았다. 총 국내 대표 연예기획사 사옥인 만큼 800석 규모 공연장과 대형 연습실, 포토존 등 공간을 포함한다.
무엇보다 건물이 외관상 남쪽으로 깊게 파인 중정 공간을 갖춘 점이 가장 큰 특징으로 꼽혔다. 신사옥 땅 남쪽으로 20여m 거리에 1만3261㎡ 대규모 공원이 자리잡고 있는 지리적 환경과 연계한 설계다. 이 공원과 주변 경관과 건물이 조화를 이루면서도 소속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지킬 수 있도록 디자인 했다는 것이 JYP와 유현준 교수의 설명이다.
◇남쪽 공원이 돌연 19층 개발부지로…잔금 다 치뤄 계약 파기는 불가능
하지만 JYP 신사옥 설계 취지를 크게 훼손하는 변수가 생겼다. SH가 지나해 말 남쪽 공원 용도를 자족기능시설용지로 변경한 것. 이 같은 결정에 따라 공원은 용도지역상 준주거지역으로 바뀌었고, 건폐율 60%에 용적률 400%를 적용한 건물을 지을 수 있게 됐다. 높이로 따지면 최고 113m에 높이 18~19m쯤 되는 고층 건물 개발이 가능해진 셈이다. SH는 지난 9월 이 부지를 1039억6600만원에 분양하는 공고를 냈다.
SH측 용도변경 소식을 접한 JYP는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연예기획사 특성상 외부 시선을 차단할 필요가 있는데, 남쪽에 공원 대신 고층 건물이 들어서면 소속 아티스트는 물론이고 임직원 사생활 보호가 불가능해질 것이란 우려다. 설계를 맡은 유현준 교수도 직접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SH를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JYP 사옥은 앞에 공원이 있다는 가정 하에 그 땅을 구입했을 거고 진행을 해왔던 것인데, 허가를 다 마치고서 착공을 앞둔 상태에서 이 앞 부지가 상업용지로 바뀌었다”면서 “아직 JYP에서는 확정된 것이라고 말은 안 하겠지만 실질적으로는 거의 (사옥 건립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SH는 공원 용도변경이 불가피했다는 입장이다. 고덕강일지구 내 학교를 설치하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해당 부지를 자족기능시설용지로 바꿔 분양 수익을 거둬야 했다는 것. SH 관계자는 “공공기관이 공원을 개발 가능 용지로 변경하는 사례는 종종 있어왔다”면서 “이미 확정된 사안이라 해당 부지를 다시 공원으로 용도변경하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라고 선을 그었다.
SH는 지난달 28일 용도변경한 부지를 분양받겠다는 기업이 없어 유찰됐다고 공시했지만 앞으로 이 땅에 고층 건물이 들어설 여지는 남아있다. 업계에선 JYP가 SH와의 토지 분양 계약을 파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미 토지매매대금 755억원에 대한 잔금까지 모두 납부하면서 모든 계약 절차가 끝났기 때문이다.
한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만약 계약 무효 소송전이 벌어지는 경우 신의칙상 의무에 따라 계약 체결 당시 공원 용도변경 계획이 있었는지, SH가 이를 고지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면서도 “다만 SH가 이 부지에 신사옥이 들어설 계획을 몰랐다고 한다면 법원이 동기의 착오로 해석하면서 계약 취소를 인정해주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고 했다. /leejin0506@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