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어차피 재개발로 사라질 곳인데, 여기에 호텔을 지을 생각을 하다니… 정말 기발하네요!”
서울 부동산 시장에서 강북권 최상급지로 통하는 용산구 한남동. 현재 한남동 일대에선 5개 구역으로 구성하는 뉴타운 재개발 사업이 한창이다. 한남5구역의 경우 그동안 사업지 중 꼴찌 취급을 받았지만, 지난해 4월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데 이어 5월 시공사까지 선정하면서 바짝 속도를 내고 있는 추세다.
앞으로 한남5구역은 DL이앤씨 시공을 거쳐 ‘아크로 한남’이라는 이름으로 지하 6층~지상 최고 23층, 총 2592가구 규모 한강뷰 대단지로 탈바꿈할 계획이다. 공사비 약 1조7580억원 규모며 올해 안으로 관리처분인가를 받고 빠르면 내년 이주 및 철거 작업에 돌입하는 것이 목표다.
그런데 곧 사라질 한남5구역에 돌연 새 호텔이 등장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 일대에서 3대째 운영해온 여관 ‘잠수장’을 현대식으로 리모델링한 ‘호텔 치커리’다. 붉은 벽돌로 마감하고 널찍한 창문을 달아둔 5층 규모 건물로 객실은 총 6개다. 4층에 배치한 스위트룸에선 통창을 통해 한남동 도심 전경과 함께 한강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구조다.
숙박시설 뿐 아니라 식음료 공간도 갖췄다. 1층에 양식과 한식을 결합한 식당이 입점해있고, 2층에는 칵테일과 디저트를 함께 즐길 수 있는 바가 마련돼있다. 앞으로 지하 1층에는 오마카세 식당이 추가로 문을 열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빠르면 내년 이후 철거 작업에 돌입하는 한남5구역에 호텔을 차린 인물은 과연 누굴까. 업계에 따르면 ‘호텔 치커리’ 주인은 유주형 어니언컴퍼니 대표다. 그는 현재 20~30대 사이에서 최고 핫 플레이스로 꼽히는 성동구 성수동에서 2016년 낡은 금속 부품 공장을 개조한 카페 ‘어니언’으로 주목받았다. 낡은 건물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멋을 살려 빈티지한 분위기의 카페로 젊은층 뿐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도 즐겨 찾는 명소가 됐다.
유 대표는 어니언을 성공시킨 경험을 한남5구역 ‘호텔 치커리’에 그대로 적용했다. 기존 여관이 40년 가량 운영했던 곳이다 보니 벽지가 8~10겹씩 덧발려 있었는데, 이를 전부 뜯어내는 대신 부드럽게 갈아내 건물에 쌓인 시간을 방문객들이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이다. 그러면서도 호텔 곳곳에 감각적인 미술품과 가구 등 요소를 배치해 빈티지하면서도 독특한 멋을 살렸다. 준비 기간에는 2~3년 정도가 들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지난 6월 한 패션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대를 이은 여관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웠다”면서 “마침 서울이라는 도시를 대표하는 호텔이 필요하다고 느낄 찰나,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재개발 지역을 옮겨 다니며 재미난 일을 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기획 의도를 전했다.
한남5구역에 등장한 ‘호텔 치커리’를 접한 네티즌들은 “앞으로 재개발로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만든 호텔이라니 독특하다”, “호텔이 영업할 수 있는 시간이 유한하기 때문에 더 특별하고 희소성있는 듯 하다”는 등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이 공간을 방문해 본 사람들의 후기도 여럿 있다. 방문객 A씨는 개인 SNS에 “반짝반짝한 럭셔리 호텔이 아니라 오래된 것과 새 것이 묘하게 섞여 있었고, 호텔이라기보다는 하루 종일 돌아다니면서 구경하고 싶은 공간에 가까웠다”, “스위트룸의 경우 한강뷰가 제대로 들어오는데, 서울 사람인데도 괜히 서울 여행 온 기분이 날 것 같다”고 적었다. /leejin0506@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