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3년 전 분양에 나섰다가 딱 한 가구만 빼고 통째로 미분양됐던 제주도 중형급 아파트 단지가 총 4000억원대에 일괄 공매 절차를 밟게 됐다. 미분양 폭탄을 맞으면서 시공사와 하도급 업체에 대한 공사비 미지급 문제로 소송전이 벌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치권에서 이 단지가 층수 규제 완화 특혜를 받아 지어졌다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서울 맞먹는 분양가로 미분양 폭탄…결국 통공매
문제의 아파트는 제주 애월읍 하귀1리에 들어선 ‘효성해링턴플레이스 제주’. 지하 2층~지상 8층, 17개동, 총 425가구 규모로 2023년 3월 최초 분양에 나섰다. 하지만 청약 접수 결과 경쟁률이 0.27대 1로 저조했다. 이후 실제 계약은 단 1가구만 이뤄지면서 나머지 424가구가 지금까지 약 3년 6개월 동안 통째로 미분양 상태다.
당시 부동산 시장이 침체기인 가운데 분양가가 너무 높게 책정된 것이 미분양 원인으로 지적됐다. 국민평형인 전용 84㎡(34평) 기준 분양가가 최고 8억9110만원으로 거의 9억원에 육박했던 것. 실제로 이 정도 금액이면 은평구 ‘센트레빌 아스테리움 시그니처’(최고 8억5315만원)나 강동구 ‘둔촌 현대수린나’(8억8300만원) 등 웬만한 서울 새아파트 분양가와도 맞먹는 수준이었다.
분양대금을 회수하지 못한 시행사 나무산업개발은 시공사 진흥기업 및 여러 하도급 업체에 공사비를 지급하지 못했다. 결국 신한자산신탁은 대주단인 다올투자증권 등 금융권을 대리해 아파트 분양 완료된 1가구를 제외한 전체 단지를 공매에 넘겨 자금 회수 작업에 돌입했다.
한국자산관리공사 온비드에 따르면 ‘효성해링턴플레이스 제주’ 424가구는 지난해 8월 처음으로 공매를 진행했다. 감정평가금액은 3336억6540만원이었으나 1회차 최저입찰가가 약 4006억원으로 더 높았다. 하지만 줄유찰돼 마지막 16회차에서 2000억원까지 떨어졌는데도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아 재공매 절차를 진행 중이다.
재공매는 올해 9월 8일부터 시작했다. 앞서 최초 공매와 마찬가지로 총 4006억원대에서 시작해, 11월 14일 진행하는 16회차에서 2000억원까지 금액이 낮아지는 구조다. 이달 19일 진행한 4회차까지 연속 유찰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 업계에선 앞서 공매와 마찬가지로 이 단지가 인수 기업을 쉽게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보고 있다.
◇350억대 공사비 소송에 높이 완화 정경유착 의혹까지
지역 사회에선 ‘효성해링턴플레이스 제주’ 공매 절차와 함께 관련 소송전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시공사인 진흥기업은 지난해 4월 다올투자증권과 신한자산신탁을 상대로 약 355억8000억원 규모 소송을 제기했다. 시행사를 대리하는 신한자산신탁이 진흥기업에 공사비를 지급하지 않았고, 더 나아가 다올투자증권 등 대주단에 초과 이자를 먼저 지급하는 등 자금집행 순서를 어겼다는 것. 이달 서울지방법원이 1심에서 진흥기업 손을 들어주면서 공사비 지급 책임 문제는 일단락된 분위기다.
‘효성해링턴플레이스 제주’ 인허가 과정에서 시행사의 정치권 로비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다. 당초 사업부지가 제2종일반주거지역이자 애월 제2고도지구라 최고 높이 20m로 제한돼있어 아파트를 7층까지만 지을 수 있었는데, 제주도가 도시관리계획을 5일 만에 변경해주면서 최고 24m에 8층으로 건설됐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제주경찰청은 별도 전담수사팀을 꾸리고, 나무산업개발 사무실 등을 압수 수색하는 등 절차를 밟고 있다.
김현수 제주도 청렴감찰관은 언론을 통해 "사실관계를 명확히 확인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면서 "도민이 신뢰할 수 있도록 감찰에 임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leejin0506@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