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강남불패, 부동산 투기 공화국은 이제 과거 이야기가 될 것이며, 또 반드시 그래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유엔총회 참석차 방문한 미국에서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남긴 말이다.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도약한 대한민국을 향해 ‘부동산 투기공화국’이라는 멸칭을 다시 꺼내든 것이다.
◇한국이 투기 공화국이라는 자학
만약 대한민국이 정말 투기가 넘쳐나는 ‘투기공화국’이었다면, 세계 시장을 제패한 반도체 신화나 견고한 제조업 강국의 위상이 가능했을까. 국가 경제의 근간이 투기로만 얼룩져 있다면 어느 기업인이 제조업에 사재를 털고, 어느 인재가 R&D와 주식 시장에 미래를 걸겠는가.
“강남불패, 부동산 투기 공화국은 이제 과거의 이야기 될 것”이라는 대통령의 말은 향후 집값이 떨어질 것이니 집을 사지 말라는 폭락론자들의 주장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주택이라는 자산의 가격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노무현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실패는 집값을 못잡아서가 아니라 집값을 잡을 수 있다는 희망 고문을 가한 것이다. 집값을 잡겠다는 대통령들의 공약과 다르게 집값이 치솟자 국민들 입에서 “정부 말 믿고 집을 팔았다가 나만 벼락거지가 됐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부동산 멘토라는 부동산 폭락론자들조차 최근 “이 상태면 집값이 폭등할 수도 있다”고 자신들의 입장을 바꾸고 있다. 자산시장에 대한 발언이 자신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을 대통령은 깨달아야 한다.
◇부동산 금융 실명제로 투기 판칠 수 없는 제도 완비
현실의 한국은 부동산 투기공화국이 아니라 오히려 과도할 정도의 투기 방지 규제 장치를 갖춘 나라다. 중국 공산당조차 한국의 부동산 제도와 규제책을 벤치마킹할 정도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 등 진보 정권뿐만 아니라, 노태우 정부의 ‘토지공개념 3법’과 김영삼 정부의 ‘부동산·금융 실명제’에 이르기까지 보수·진보를 막론한 법·제도적 정비로 한국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부동산 통제 시스템을 작동시키고 있다.
‘부동산 투기공화국’이라는 용어는 1980년대 노태우 정부 당시 올림픽 특수와 3저 호황, 신도시 개발 등으로 부동산 광풍이 불던 시절에 처음 등장했다. 당시 전국 주택보급률은 72.4%, 서울은 50.6%에 불과해 공급 부족에 따른 투기적 가수요가 팽배했다. 하지만 현재 전국 주택보급률은 103%, 서울도 94%에 달한다.
◇미국과 일본, 부동산 버블 붕괴했지만 국민 탓하지 않아
자산 시장에서 이윤 추구와 투기적 가수요는 어느 국가에나 존재한다. 한때 뉴질랜드에서는 “오늘의 집값이 가장 싸다”는 말이 유행했고, 1980년대 일본엔 “땅값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는 부동산 불패론이 팽배했다. 자산 가격의 상승을 국가 전체의 도덕적 타락이나 ‘투기’로만 매도하는 것은 시장 경제의 기본 생리를 간과한 시각이다. 2008년 발생한 리먼 브라더스 사태(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 부동산 시장의 무분별한 투기와 이를 부추긴 금융 파생상품의 부실이 원인이 되어 일어난 경제적 참사이다. 하지만 미국의 어떤 정치인 학자도 미국을 부동산 투기 공화국이라고 비하하지 않는다.
리먼 사태 여파로 2010년 스페인 포르투갈 등 남유럽 국가들 부채위기에 빠졌다. 건설업체가 연쇄 부도나고 집값이 폭락하자, 무분별하게 대출해 준 지방 저축은행이 순식간에 동시 부실화됐다. 공사가 중단되거나 아무도 살지 않는 유령 도시(Ghost Towns)가 곳곳에 출현했지만, 자국을 부동산 투기 공화국이라고 비하발언하는 정치 지도자는 없었다. /hbch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