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폭락, 아니면 폭등" 극단론에 빠진 주택시장에 던지는 정책전문가의 경종

뉴스 차학봉 기자
입력 2026.09.16 09:58 수정 2026.09.16 11:13

[땅집고] 대한민국 사회에서 부동산을 둘러싼 담론은 늘 지나치게 뜨겁다. 집값 논쟁이 격화되면서 사이비 종말론에 경도된 이론도 횡횡한다. 시장이 상승 곡선을 그릴 때는 "지방 빈집도 사두면 오른다"는 맹목적인 투기 광풍이 불고, 반대로 하락세에 접어들면 "인구 절벽으로 한국 부동산은 끝났다"는 절망론이 일거에 시장을 지배한다. 저마다의 이념적 프레임이나 단기적인 시장관이 쓰나미처럼 휩쓴다. 수억, 수십억 원하는 주택에 대한 판단을 위험천만한 외줄 타기를 강요한다.

신간 《집값의 법칙》은 이처럼 소음과 선동, 사이비 종말론이 지배하는 대한민국 주택시장에 '20년 누적 데이터'라는 가장 차갑고 엄밀한 잣대를 대어 시장의 본질을 밝혀낸 실증적 분석서다. 감정의 거품을 완전하게 거둬낸 자리에 저자가 제시하는 것은, 집값을 결정짓는 정밀한 구조적 역학과 대한민국 주택시장이 직면한 차디찬 미래의 지형도이다.

[땅집고] 《집값의 법칙》



◇국토부 주택정책 전문가가 데이터로 본 집값

이 책이 여느 부동산 시세 전망서나 재테크 서적과 궤를 달리하며 압도적인 무게감을 갖는 결정적 이유는 저자인 권혁진 대한건설협회 상근부회장의 경력과 학술적 내공에서 비롯된다. 그는 지난 30년간 대한민국 주택 정책의 설계자이자 집행자로서 시장의 거친 파도를 국토교통부 핵심 부서에서 직접 진두지휘했던 '주택 정책 전문가'다. 연세대학교 상경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학·석사)하고 1995년 제39회 행정고시에 합격하며 공직에 입문했다.

국토교통부에서 주택건설공급과장, 주택정책과장, 도시정책관, 건설정책국장에 이어, 대한민국 토지 및 주택 수급 정책의 최상위 책임자인 주택토지실장을 역임한 주택전문 관료 출신이다. 부동산 폭등기와 급락기마다 정책 수립의 한복판에서 수급 조절, 규제 완화 및 강화, 3기 신도시 개발 등을 직접 설계하고 집행했던 주역이다. 공직 생활 중 미국 위스콘신주립대학교(UW-Madison)에서 부동산 MBA를 취득하며 선진 금융·부동산 이론을 정립했다.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OECD 본부에서 정책분석가(Policy Analyst)로 3년간 근무하며 세계 주요 선진국들의 주택시장 구조와 도시 발전 패러다임을 넓은 시각에서 입체적으로 연구했다.

대통령비서실(청와대) 행정관으로 국정 전반을 부처 간 시각에서 조정했던 경험을 갖췄으며, 현재는 대한건설협회 상근부회장으로서 민간 건설 산업 현장의 실체적 애로사항과 자금 흐름, 공급의 현실적 제약 요인을 누구보다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단순히 이론만 외치는 학자도, 한쪽 입장에 치우친 민간 애널리스트도, 폭락만 줄기차게 외치는 사이비 종말론자도, 현장을 모르는 탁상행정 관료도 아니다. 공공의 정책 수장이자 글로벌 이론가, 그리고 산업 현장의 대변자라는 다채로운 경력을 울어나온 내공을 ‘집값의 법칙’에 담았다.

저자는 책 전반부에서 소비자가 쉽게 빠지는 '착시'를 깨뜨리는 데 집중한다. 저자는 특정 정권의 정책이나 단기적 금리 변동, 혹은 언론의 자극적인 헤드라인이 집값을 근본적으로 결정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지난 20년간의 실증 데이터를 하나씩 펼쳐 보이며, 단기적 변수들은 시장의 대세 흐름 속에서 발생하는 '작은 파동'에 불과함을 보여준다.

정부의 규제 완화가 가격 반등으로 이어지기까지 걸리는 정밀한 시차, 통화량 증가가 주택시장으로 유입되는 구조적 경로, 그리고 미분양 지표가 상투와 바닥을 가리키는 정확한 데이터적 신호 등을 통계 수치로 입증해낸다.

[땅집고] 《집값의 법칙》저자 권혁진


◇수급과 금융과 정책이 결정하는 집값

저자가 제시하는 핵심은 집값이 단순히 수요와 공급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집값을 움직이는 네 가지 힘으로 수요, 공급, 금융, 규제​를 제시하며, 이를 ‘마차론’으로 설명한다

첫째 수요와 공급이 마차의 두 수레바퀴이다. 수요와 공급은 시장의 본질적인 궤적을 결정하는 기초 체력(Fundamental)이다. 둘째 금융을 마차를 끄는 말로 봤다. 시장이 앞으로 나아가거나 뒤로 물러서게 만드는 동력이다.

셋째, 정부 규제를 마차의 속도와 방향을 조절하는 마부로 정의했다. 과열을 막거나 위축된 시장을 진작시키는 통제 장치이다. 마부(규제)가 아무리 채찍질을 하거나 말(금융)의 고삐를 풀어주어도, 수레바퀴(수요와 공급)의 축이 붕괴된 지역은 마차가 나아갈 수 없다는 주장이다. 네 가지 힘이 균형을 이루면 집값은 안정적으로 움직이지만, 어느 한쪽의 힘이 지나치게 커지거나 균형이 무너지면 집값은 급등하거나 급락한다. 지난 20여 년간의 한국 주택시장을 돌아보면 이러한 변화가 반복되어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이 책은 집값을 바라볼 때 사람들의 심리와 투자 수요를 중요하게 다룬다. 전셋값은 기본적으로 실수요에 의해 결정되는 반면, 매매값에는 미래의 시세차익을 기대하는 투자 수요가 함께 반영된다. 따라서 매매값은 전셋값보다 훨씬 큰 폭으로 움직일 수 있으며,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의 차이를 통해 해당 주택의 투자가치를 읽어낼 수 있다. 수도권과 지방의 집값이 지난 20년 동안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던 이유 역시 단순한 지역별 공급량의 차이가 아니라 투자 수요가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다시 수도권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금융의 시대’ 가고 ‘공급의 시대’ 온다

금융의 영향력 역시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저자는 문재인 정부 이후를 ‘금융의 시대’로 규정하면서 통화량과 이자율이 주택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이전보다 훨씬 뚜렷해졌다고 설명한다. 집은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재화인 만큼 금융시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수요와 공급의 변화만으로 가격이 움직이기 어렵다. 실제로 책은 주요 정부의 정책과 집값 흐름을 비교하고, 2014년 이후 발표된 10개의 주요 집값 대책을 서울 아파트 매매지수와 기준금리의 시계열을 통해 검증함으로써 거래·금융 규제, 세금 강화, 공급 확대 정책 등이 실제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본다. 분석 결과 금융 규제는 단기적인 영향력이 컸지만 기준금리의 영향력이 더 컸으며, 세금 강화는 단기적인 억제 효과보다 장기적인 투자 수요 패턴 변화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난다

《집값의 법칙》이 궁극적으로 주목하는 것은 미래의 주택시장이다. 저자는 지난 20년이 투자 수요가 집값을 움직인 ‘수요의 시대’, 이후 통화량과 금리가 중요한 역할을 한 ‘금융의 시대’였다면 앞으로는 누적된 주택 재고가 가격을 좌우하는 ‘공급의 시대’​가 올 것으로 전망한다. 2050년에는 전국 주택 재고가 약 3,000만 채, 주택보급률이 126%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며, 이에 따라 모든 지역의 집값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시대가 끝날 것이라고 본다. 수도권 외곽과 지방은 누적 공급과 수요 감소의 영향을 받는 반면, 서울과 수도권 핵심 지역은 수요가 집중되면서 집값의 양극화가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20년간의 데이터가 알려주는 집값의 비밀

따라서 이 책은 단순한 집값 전망서나 투자 지침서가 아니다. ‘지금 집을 사야 하는가, 기다려야 하는가’라는 단편적인 답을 제시하기보다, 독자가 스스로 시장을 해석할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매매값과 전셋값의 차이, 가구 수와 소득, 주택 재고와 신규 공급, 통화량과 금리, 정부의 거래·금융·세금 규제 등 주택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데이터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설명하고, 각 장의 끝에는 주요 통계를 직접 찾아볼 수 있는 방법까지 제시한다.

집값을 둘러싼 정보는 넘쳐나지만, 그 많은 정보가 곧바로 올바른 판단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집값의 법칙》은 지난 20년의 데이터를 통해 집값이 움직여온 과정을 되짚고, 그 움직임을 만들어낸 네 가지 힘을 하나의 프레임으로 정리한다. 그리고 그 프레임을 바탕으로 앞으로 다가올 ‘공급의 시대’와 지역별 집값 양극화를 전망한다. 집을 사려는 사람에게는 시장을 읽는 기준을, 부동산 시장을 이해하려는 독자에게는 한국 주택시장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는 책이다. /hbch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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