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창간기획 10편] 디벨로퍼 35년 집념이 만든 수직도시 '아자부다이 힐스'
300명 토지주와 협력, 초기 비용 최소화한 공유형 재개발
수직화로 30% 녹지 확보…세계적 디자이너 '수직 정원 도시'
개발사가 완공 후 '통합 타운 매니지먼트' 주도
기업과 인재는 더 매력적인 도시를 찾아 국경을 넘어 움직인다. 싱가포르 창이공항의 ‘쥬얼’, 일본 ‘도시재생 전략특구’와 ‘다카나와 게이트웨이 시티’, 홍콩의 ‘철도+도시 복합개발’까지…. 땅집고는 세계 선진 도시의 현장 사례와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성공 공식을 짚어보고, 이를 용산국제업무지구·창동아레나·한강 개발과 교통 계획 등 서울이 마주한 과제들에 대입했다. 땅집고 창간 7주년 기획 ‘서울 재창조 - 도시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제언’은 10여회에 걸쳐 서울을 경쟁력을 갖춘 도시로 다시 그리기 위한 방안을 제언한다./편집자 주
[땅집고] 일본 도쿄 도심 한복판의 부촌인 미나토구. 6000㎡ 넓이의 중앙 광장 주변에 높이 325m로 일본 최고층인 ‘모리JP타워’를 비롯해 고층 건물 10여 동이 서 있다. 2023년 11월 준공한 이래 전 세계 도시개발 전문가들이 가장 주목하는 사례로 꼽히는 ‘아자부다이 힐스’다. 2만명이 상주 근무하는 업무시설과 1400가구의 최고급 아파트, 쇼핑·의료·교육 시설, 전체 면적 30%에 달하는 녹지를 갖추고 있어 ‘수직 정원 도시(Vertical Garden City)’로 불린다. 세계적 디자이너 토머스 헤더윅(Heatherwick)이 설계한 저층부·공공 건축 디자인으로 연간 3000만명을 방문하는 도쿄의 새로운 명소이기도 하다.
‘아자부다이 힐스’는 롯폰기 힐스 등 ‘힐스’ 시리즈로 일본 도심 재개발 사업을 이끌어온 모리빌딩이 35년간 약 6400억엔(약 5조9000억원)을 투입해 집념으로 완성했다. 1989년 재개발추진위원회 설립 이후 300명의 토지주들과 오랜 대화를 거쳐 토지주들은 토지를 제공하고, 모리빌딩은 필요한 자금과 기술력을 제공하는 동등한 협력 관계를 구축한 것이 성공을 이끌었다. ‘아자부다이 힐스’는 이 같은 사업 구조 뿐 아니라 공간 설계, 운영 방식, 기능 배치 등 여러 면에서 일본 대표 개발 기업인 모리빌딩의 21세기 대표 프로젝트가 됐다.
‘아자부다이 힐스’는 서울보다 먼저 도심 재활성화를 고민한 일본이 공공성과 개발 효율성을 동시에 달성해 낸 선례라는 면에서 서울시 도시 개발에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준다. 서울시 역시 종로구 세운상가 일대 재개발 등 도심 재개발 사업을 진행 중이고, 앞으로도 점점 개발 수요가 늘어날 전망이다. 아자부다이힐스를 개발한 모리빌딩은 땅집고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도심 부동산 개발의 성패는 '미래 도시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명확하고 장기적인 비전을 세우는 데 달려 있다”고 밝혔다.
◇ 토지 매입비 ‘0’… 절감한 지출로 세계적 건축가 유치
모리빌딩이 ‘아자부다이 힐스’ 개발의 핵심적인 성공 비결로 꼽는 점은 사업 방식이다. 모리 빌딩은 사업의 주체인 조합에 토지 대신 기술과 자본을 제공하는 조합원으로 참여했다. 일본에서 재개발은 토지주의 3분의 2가 동의하면 추진할 수 있지만 모리빌딩은 90%의 동의를 받으려고 오랜 시간 공을 들였다. 이 때문에 개발 프로젝트에 35년이 걸렸지만, 토지 확보를 위한 초기 투자금과 금융 조달·부채를 짊어질 필요가 없었다.
모리빌딩은 “아자부다이힐스는 이처럼 초기 비용을 줄인 덕에 더 많은 자원을 혁신적인 건축 설계에 투입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아자부다이 힐스의 주거·오피스 타워 설계는 뉴욕 하이라인과 세계무역센터를 디자인한 미국의 유명 건축사사무소 '펠리 클라크 파트너스(Pelli Clarke & Partners)'가 맡았다. 저층부 상업·녹지 공간은 2012 런던 올림픽 성화대 디자인으로 잘 알려진 영국 디자이너 토머스 헤더윅의 손을 거쳤다. 헤더윅은 완만한 능선 모양의 독특한 격자 구조를 선보이며 단지 전체를 하나의 입체적인 거대 정원으로 탈바꿈시켰다.
◇ 완공이 개발의 시작… 개발사가 ‘타운 매니지먼트’ 주도
모리빌딩은 완공 이후부터 진짜 개발이 시작된다고 본다. 한국의 대형 복합개발이 완공 후 개별 상가와 오피스를 분양하고 손을 떼는 ‘시공·분양형’ 구조인 반면, 모리빌딩은 완공 후에도 아자부다이 힐스의 주요 지분을 직접 보유하며 단지 전체의 운영·관리·기획을 총괄하는 ‘통합 타운 매니지먼트(Town Management)’를 주도한다. 단지 내 리테일 임차인(테넌트)이 일관된 브랜드 정체성을 유지하도록 직접 구성하고, 청소·보안과 같은 기초 관리는 물론 지역 축제·문화 이벤트·계절 별 프로모션까지 직접 기획·주최한다.
디벨로퍼가 주체가 되는 ‘타운 매니지먼트’는 노후화로 인한 자산 가치 하락을 막고 시간이 지나 상권이 형성될수록 임대료가 더욱 상승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 단순히 건물을 팔아 단기 시세차익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고 도시를 장기적으로 운영하며 지속 가능한 수익을 창출한다. 모리빌딩은 “‘도시를 만들고, 도시를 가꾼다’는 것이 우리의 핵심 철학”이라고 밝혔다.
◇ 의료·교육 집적 콤팩트시티, “정부·민간 협력이 만든 결실”
‘아자부다이 힐스’는 여러 필지를 하나로 모아 초고층 건물을 올리고 지상부를 비워냄으로써 광활한 녹지와 문화·기반시설을 갖출 수 있었다. 이렇게 확보한 공간에 직주(職住)뿐만 아니라 의료와 교육 기능까지 갖춘 완성형 자족 생태계를 만들었다. ‘아자부다이 힐스’ 내에는 도쿄 최대 규모의 도쿄 브리티시 스쿨(British School in Tokyo)과 게이오대학교 병원 예방의학센터가 들어섰다. 여기에 세계적인 미디어아트 그룹 ‘팀랩(teamLab)’의 대형 미술관과 70여 개 VC가 모인 '도쿄 벤처캐피털 허브' 등 문화·업무 시설까지 유치했다.
모리빌딩은 “우리의 비전은 도쿄 도심을 대규모로 재정비해 전 세계의 인재, 물자, 자본, 정보가 모여드는 자성(磁性) 같은 도시로 만드는 것”이라며 “도쿄가 글로벌 금융 허브로 거듭나기 위해 필요한 글로벌 인재와 기업가를 끌어들이는 결정적 무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모리빌딩은 토지주와의 협상이 끝난 직후 사업이 급속도로 진행된 이유로 정부·지자체와의 협력을 꼽았다. 모리빌딩은 “2017년 도시계획 결정 승인 이후 일본 정부가 아자부다이 힐스를 '국가전략특구'로 지정한 것이 사업 추진의 기폭제가 됐다”고 밝혔다. 모리 빌딩은 “중앙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민간 기업이 명확한 장기 비전을 공유하고 서로 협력하여 장애물을 극복할 때 비로소 미래 도시를 현실로 만들어낼 수 있다”고 했다. /sh0293@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