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없는 주거 정책, '집인지 감수성' 을 높여라 | 최민섭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
[땅집고]지난해 10월, 부동산 정책을 총괄하던 국토교통부 차관이 자신의 아파트와 관련된 설화로 국민적 공분을 사며 사퇴했다. 그 충격이 채 가시기 전에 이번엔 더불어민주당 황희 의원의 ‘버스 하우스’ 제안이 여론의 매서운 역풍을 맞고 있다. 민생을 책임져야 할 정치권이 또다시 주거 문제로 국민의 염장을 지르는 모양새다.
황 의원 측은 대학가 청년 주거난을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 차원의 구상이었다고 해명했지만 이는 실현 가능성 여부를 떠나 기저에 깔린 '집'에 대한 인식의 빈곤을 드러냈다. 이른바 ‘집인지 감수성’의 부재다.
‘집인지 감수성’이란 일상에서 집의 유무에 따라 발생하는 고정관념과 불평등, 차별 구조를 예민하게 인지하는 시각을 의미한다. 부동산 양극화가 극에 달한 지금, 위정자들에게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정책적 덕목이자 기본적 공감 능력이다.
정치권은 입만 열면 민생을 외친다. 그러나 고시원과 반지하, 쪽방을 전전하는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인들의 기발한 ‘실험실’이 아니다. 인간으로서의 인권과 존엄이 보장되는 번듯한 ‘집’이다.
버스 하우스는 언뜻 '창의적 공간'으로 포장될지 모른다. 그러나 본질은 청년의 주거권을 ‘비루한 삶의 수단’으로 치환해버린 안일함이다. 역설적이게도 청년들에게 “너희에게 주어지는 공간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은연중의 배제와 차별을 시사하는 무서운 메시지다.
우리는 집을 단지 '잠을 청하는 물리적 구조물'로만 바라보는 시대착오적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 집은 시민의 기본권이며, 소속감과 정서적 안정을 누려야 할 최소한의 영토다.
정치권이 고민해야 할 지점은 '어떻게 최소한의 공간을 저렴하게 때워 넣을 것인가'가 아니다. 청년들의 삶이 어떻게 사회적 가치를 회복하고 지역사회와 조화롭게 어우러질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공급 숫자에만 매몰된 공학적 접근은 결코 답이 될 수 없다.
아무리 ‘아이디어 차원’이었다 해도 고위 공직자의 발언은 막중한 상징성을 갖는다. 그 속에는 청년을 동등한 사회적 주체로 보지 않고 ‘위에서 내려다보는’ 특권의식이 짙게 깔려 있다. 주거 사다리가 끊겨 고통받는 청년 당사자들에게는 가슴을 비벼 파고드는 비수가 될 뿐이다.
대형 참사가 터질 때마다 정치권은 '안전 감수성'을 목놓아 외쳤다. 이제는 '집인지 감수성'을 높일 때다. 주거 문제를 단순한 수급·기술 공학이 아닌 철저한 ‘인권과 삶의 문제’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정치의 역할은 기발한 아이디어 쇼가 아니라, 소외된 이들이 인간답게 숨 쉴 시스템을 묵묵히 구축하는 것이다.
이번 버스 하우스 논란을 단순한 일회성 해프닝으로 덮어서는 안 된다. 주거 빈곤 해결이라는 명목으로 비인간적인 주거 모델이 재생산되는 악순환을 끊어내야 한다. 집은 정치인의 아이디어 경연장이 아니라 누군가의 일생이 담긴 성역이다. 진정한 공감이 결여된 정치는 비단 주거 정책뿐만 아니라 모든 민생 정책에서 독(毒)이 될 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글=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부동산 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