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지난 6월 25일 장중 사상 최고가인 298만7000원을 기록했던 SK하이닉스 주가가 불과 한 달여 만에 55% 이상 하락한 132만원대까지 낮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SK하이닉스 주식 약 48억원어치를 대거 사들여 주목된다. 평균 매수 단가는 지난달 30일 종가 기준 132만원 정도로, 보통주 총 3620주를 매입한 것.
최 회장은 이번 매입 이유에 대해 책임 경영 의지를 강조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재계에서는 그가 지배력 강화와 함께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과 이혼하면서 지불해야 할 재산분할금 9440억원을 마련할 길을 모색하는 행보로도 분석 중이다.
◇현금 9440억 마련하려면…SK 주식 담보로 대출 받거나, 지분 2% 팔아야
지난 7월 24일 서울고등법원 가사1부는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재산 분할 파기환송심 선고를 열고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위자료 20억원과 재산 분할로 944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만약 최 회장이 8월 7일까지 상고해 법원 판단이 다시 내려지는 경우 재산 분할 규모가 달라질 수 있지만, 상고에 나서지 않는다면 그가 노 관장에게 9440억원 전액을 현금으로 지급해야 한다.
이번 재산분할금은 최 회장이 지난 10년 동안 SK그룹에서 수령한 연봉 및 배당금 총액인 8000억원을 웃돈다. 그가 노 관장에게 줄 현금을 마련하려면 추가적인 대책이 필요한 셈이다. 재산분할금 지급이 미뤄질 경우 연 5% 지연이자가 매겨지는 점을 고려하면 하루 이자만 1억3000만원, 1년이면 472억원에 달한다. 이에 최 회장이 어떻게 현금을 마련할지에 대한 재계 관심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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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 마련 방안 중 가장 유력한 수단으로는 SK㈜ 주식을 담보로 한 대출이 꼽힌다.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은 약 1297만주다. 항소심 시기인 2년여 전까지만 해도 가치가 2조원 수준이었지만, 올해 들어 반도체 시장 활황으로 규모가 8조원대로 불어났다. 이 점을 고려하면 최 회장이 주식담보대출로 지분 가치의 10% 정도인 재산분할금 재원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최 회장은 현재 보유한 SK㈜ 지분 중 21%를 이미 담보로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추가 담보로 활용할 수 있는 가치는 6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통상 담보인정비율(LTV)가 40~60%라 그가 3~4조원 자금을 대출로 조달할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앞으로 SK㈜ 주가가 어떻게 변동할지가 관건이다. 주식 가격이 떨어지면 금융권에서 추가 담보를 요구하거나 대출을 조기 상환하라고 압박할 수 있어서다. 최근 SK하이닉스 주가가 한 달여 만에 반토막 수준으로 폭락할 정도로 변동성이 컸던 점을 고려하면 주식을 담보로 ‘풀 대출’을 받는 것은 리스크가 크다고 판단할 수 있다.
최 회장이 아예 SK㈜ 지분을 시장에 매각해서 현금을 조달하는 것은 어떨까. 지분 1%만 팔아도 약 4500억원이라, 그가 2% 남짓을 매각해 재산분할금인 9440억원을 빠르게 마련할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이 방법의 경우 최 회장의 그룹 지배력이 낮아진다는 것이 부담으로 작용한다. 지분이 2%만 해도 주식 144만9800주인데, 이렇게 주식이 대거 매물로 풀리면 SK㈜ 주가가 곤두박칠 위험도 있다.
◇알짜 계열사 활용도 가능…배당금 늘리거나 지분 매각
재계에선 최 회장이 계열사를 활용해 현금을 마련하는 방법도 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먼저 배당 확대 카드가 있다. 그룹사 중 우량으로 꼽히는 SK텔레콤 등이 배당을 늘리면, 지주회사인 SK㈜의 배당 수입이 증가한다. 이 금액을 SK㈜가 주주 배당으로 환원하면 최대주주인 최 회장이 거두는 현금이 불어나는 구조다.
하지만 9440억원이라는 거금을 배당만으로 단기간에 확보하기는 쉽지 않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2025년 최 회장이 SK㈜와 SK하이닉스에서 받은 보수는 총 82억5000만원이며, SK㈜에서 받은 배당금은 세전 1038억원 정도로 기재됐다. 그가 한 해 동안 벌어들이는 수입을 탈탈 털어도 재산분할금의 9분의 1 정도라 지연이자를 피해지 못하는 셈이다.
더군다나 명확한 명분 없이 배당을 대폭 늘렸다가는 주주들 사이에서 최 회장 개인사를 해결하려는 목적 아니냐는 지적이 쏟아질 위험이 있다. 더불어 배당금을 확대하면 기업 재원이 고갈되면서 재무 건전성이 낮아질 가능성도 있어 이사회와 주주들 비판 의견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보유한 계열사 지분을 매각하는 것도 최 회장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 그는 SK실트론 지분 29.4%와 SK디스커버리 0.1%를 갖고 있다. 마침 지난 7월 31일 SK㈜ 이사회가 지분 규모가 더 큰 SK실트론 지분을 두산에 매각하는 현안을 논의하고 있는 상황이다. SK㈜가 직접 보유한 지분 51%와, 총수익스와프(TRS) 계약지분 19.6%를 합해 총 70.6%다.
다만 최 회장 개인이 보유한 나머지 지분 29.4%는 이번 매각 사안을 마무리한 뒤 별도로 협상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재계에서는 최 회장이 세기의 이혼을 치르며 감당해야 할 재산분할금 9440억원을 마련하려면 하나의 방식에만 의존하지 않고, 대부분을 주식담보대출로 마련하되 나머지는 자산 매각과 배당 수입 등으로 채워야 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고 있다.
한편 최 회장과 노 관장은 2017년부터 이혼 소송을 진행해왔다. 최 회장이 2015년 12월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장과의 불륜을 인정하며 혼외자가 있다는 사실까지 공개하면서다. 2022년 12월 1심까지만 해도 재판부는 사실상 최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현금 665억원을 분할하고, 위자료 1억원을 지급하라고 판시했지만 SK주식에 대한 분할은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7월 서울고등법원 판결에선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재판부가 SK 주식을 재산 분할 대상으로 판단했고, 비율은 노관장이 3분의 1이며 최 회장이 3분의 2라고 정한 것. 다만 주식 가액 산정 기준은 이혼 소송의 항소심 변론 종결일인 2024년 4월 16일로 정했다. 그 동안 SK 주가가 폭등 수준으로 올랐지만 여기에는 최 회장의 경영적 기여가 영향을 미쳤다는 판단에서다. 대신 공평한 분배를 위해 분할 비율을 이 같이 산정했다는 설명이다. /leejin0506@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