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집단대출 한도 전체 가구의 5%도 안 돼
"집까지 팔았는데 잔금 못 내…실수요자 길바닥 내몰려"
[땅집고] “정부가 가계 대출 총량 규제로 목을 조여 길바닥에 나앉게 생겼습니다. 공급 정책을 믿고 청약한 수분양자가 투기꾼입니까. 상반기에 대출받으면 착한 시민이고, 하반기에 받으면 투기꾼이라는 겁니까.” (매교역 팰루시드 수분양자 A씨)
다음 달 입주를 앞둔 경기 수원시 대단지 아파트에서 잔금 집단대출이 조기에 소진되면서 수분양자들이 발을 구르고 있다. 은행들이 가계대출 총량 관리를 이유로 사업장에 배정하는 대출 한도를 크게 줄인 탓이다. 기존 주택을 처분하거나 전세 계약을 끝내고 입주를 준비해온 실수요자들은 잔금을 마련하지 못하면 입주가 늦어지는 것은 물론 고금리 대출과 연체이자 부담까지 떠안을 처지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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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금융권과 매교역 팰루시드 입주예정자협의회에 따르면 경기 수원시 권선구 세류동 ‘매교역 팰루시드’는 오는 8월 18일부터 입주를 시작한다. 이 단지는 지하 2층~지상 15층, 32개 동, 총 2178가구 규모로 조성한 단지다.
하지만 입주를 한 달도 남기지 않은 현재 잔금대출을 확보하지 못한 가구가 2000가구 안팎에 달한다는 것이 입주예정자협의회 측 주장이다.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 신한은행, Sh수협은행 등 대출 취급에 나선 금융기관의 한도가 잇따라 소진되거나 접수가 마감되면서다.
◇“집 팔고 잔금 준비했는데 대출 불가 통보”
입주 예정자 A씨는 2023년 이 아파트를 분양받은 뒤 지난 5월 살고 있던 집을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매도했다. 새 아파트 입주일에 맞춰 기존 주택을 비우고 분양대금 잔금을 치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최근 은행으로부터 잔금대출이 어렵다는 통보를 받았다. A씨는 “살던 집까지 시세보다 싸게 팔고 이사 준비를 모두 마쳤는데, 입주를 한 달 앞두고 대출을 받을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중학교 전학을 앞둔 자녀도 있는데 잔금을 치르지 못하면 당장 어디에서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했다.
국민은행은 지난 21일 잔금대출 예약 접수를 시작했지만 준비한 한도가 1시간 만에 소진돼 조기 마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입주 예정자는 대출 심사를 받아보지도 못한 채 접수 종료 안내를 받았다.
입주예정자협의회는 은행들이 이 사업장에 배정한 잔금대출 한도가 전체 수요의 10%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협의회는 가구당 필요한 잔금대출을 평균 5억원 안팎으로 가정하면 전체 대출 수요가 1조원에 육박하지만, 은행별 배정 한도는 50억~500억원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배정 규모가 상대적으로 큰 것으로 알려진 은행도 한도가 500억원 정도에 그쳐 가구당 5억원을 빌린다고 가정하면 100가구 정도만 이용할 수 있다. 단지 전체 가구 수의 5%에도 미치지 않는 규모다.
한 입주 예정자는 “일부 가구가 선착순으로 대출을 받은 뒤 나머지는 알아서 돈을 구하라는 상황”이라며 “연 10%가 넘는 고금리 대출이라도 받아야 하는지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집단대출은 취급 은행 제한…한도 소진되면 대안 없어
신축 아파트 잔금 집단대출은 일반 주택담보대출과 구조가 다르다. 시행사나 시공사, 조합 등이 금융기관과 협약을 맺고 해당 사업장 수분양자들을 대상으로 대출을 취급한다.
은행이 사업장과 담보가치를 일괄 심사하기 때문에 수분양자가 개별적으로 주택담보대출을 신청하는 것보다 절차가 간단하고 금리도 상대적으로 낮다. 반면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금융기관이 협약 은행으로 제한된다는 문제가 있다.
은행이 특정 사업장에 배정한 대출 한도를 모두 소진하면 수분양자가 다른 영업점을 찾아가더라도 추가 대출을 받기 어렵다. 협약을 맺지 않은 금융기관에서는 담보 설정과 소유권 이전 일정 등의 문제로 입주 시기에 맞춰 대출을 실행하기도 쉽지 않다.
매교역 팰루시드 입주 예정자 대부분은 3년 전 분양계약을 체결했다. 당시에는 입주 시점에 은행권 잔금대출을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자금 계획을 세웠지만, 입주를 앞두고 은행별 대출 한도가 축소되면서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는 것이다.
◇잔금 못 내면 연체이자…입주·소유권 이전도 차질
수분양자가 정해진 기간까지 잔금을 내지 못하면 우선 연체이자를 부담해야 한다. 잔금 납부와 동시에 이뤄지는 열쇠 인도와 입주, 소유권 이전등기도 늦어질 수 있다.
미납 상태가 장기간 이어지면 사업 주체가 계약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 계약 해제를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잔금을 납부하지 못했다고 분양계약이 즉시 해제되는 것은 아니며, 실제 해제 여부와 위약금 부담은 공급계약서의 연체 기간과 최고 절차 등에 따라 달라진다.
입주가 지연될 경우 기존 주택을 이미 처분한 수분양자는 임시 거처를 마련해야 한다. 전세계약 만료일이나 기존 주택 매수인의 입주일이 정해진 경우에는 이사 일정을 미루기도 어렵다. 잔금을 마련하기 위해 저축은행이나 캐피털 등 금리가 높은 금융회사로 이동하면 이자 부담도 크게 늘어난다.
입주 예정자들은 이미 분양계약을 맺고 입주를 앞둔 실수요자의 잔금대출은 가계대출 총량 관리에서 별도로 취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동산 정책 토론회 페이지와 대통령실 청원 홈페이지에도 잔금대출 규제 완화와 추가 금융기관 선정을 요구하는 글을 집단으로 올리고 있다.
입주예정자협의회 관계자는 “정부의 공급 정책을 믿고 3년 동안 입주를 기다린 수분양자들이 갑자기 투기 수요로 취급받고 있다”며 “입주가 임박한 사업장의 잔금대출만이라도 총량 규제를 완화해 달라는 의견을 전달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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