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도시 탐구] (2) 美 캘리포니아 '발레 베르데'
7만7000평에 주택 250여채
테라스 정원 가꾸면서 전원생활
커뮤니티·의료·요양까지 아울러
[땅집고]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바버라 도심에서 북서쪽으로 10여분쯤 차를 몰아 히든밸리공원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면 작은 정원마을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미국 최고의 은퇴자 마을로 꼽히는 ‘발레 베르데(Valle Verde)’다. 키 큰 야자수와 참나무 숲 사이로 단층 주택들이 띄엄띄엄 늘어서 있다. 운동장에서는 미국에서 인기 스포츠로 떠오른 피클볼을 즐기는 시니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입주민 케이트는 “피클볼을 치면서 멋진 친구(pickle pals)를 많이 사귀었다”면서 “가족이 없어서 늘 외로웠는데, 발레 베르데에서 소속감과 유대감을 확실하게 찾았다”고 했다.
발레 베르데는 25만5000㎡(약 7만7000평)에 조성한 작은 마을 같은 은퇴 캠퍼스다. 요양과 돌봄보다 활동적 은퇴 생활을 내세운다. 주거 형태도 아파트가 아닌 단독주택이다. 정원이 딸린 주택(garden home) 250여채에 입주민 350여명이 살고 있다. 1967년 문을 연 이후 60년쯤 지났지만 여전히 인기가 높다. 월 이용료만 최소 600만원이 넘는데 입주하려면 평균 10년을 기다려야 한다. 미국 뉴스위크는 발레 베르데를 최근 3년 연속으로 미국 내 은퇴 주거지 중 1위에 올려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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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마을 같은 은퇴 캠퍼스
발레 베르데는 자연 환경부터 은퇴자에게 매력적이다. 샌타바버라 특유의 연중 온화한 기후와 참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문을 나서면 산책로와 정원, 과수원, 탁 트인 언덕 조망이 펼쳐진다. 입주민들은 개인 테라스 정원을 가꾸며 전원생활의 묘미를 즐긴다. 단지 곳곳에는 피클볼 운동장부터 야외 온수 수영장, 반려견 공원 등 야외 활동 요소가 가득하다.
미술 스튜디오와 목공실, 도서관, 소극장 등에서는 은퇴한 의사·대학교수 같은 전문직 출신 입주민이 주도하는 수준 높은 사교·문화 프로그램도 끊이지 않는다. 한마디로 외로울 틈이 없다. 엔지니어 출신 입주민인 아트는 “매달 과학 토론 그룹에 참여하는데 의사, 심리학자, 엔지니어들로 구성돼 있다”면서 “돌아가면서 자료 조사하고 발표하는데 매번 흥미진진한 대화 속에서 큰 자극을 받는다”고 했다.
발레 베르데 단지 내 이동은 자동차 대신 전동카트나 커뮤니티 셔틀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멜리사 호니그 전 발레 베르데 대표는 “은퇴 주거의 핵심은 시설에서 사는 게 아니라 집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주거부터 요양까지 모두 책임져
발레 베르데는 주거, 커뮤니티, 의료, 요양을 한데 묶은 ‘라이프 플랜 커뮤니티’다. 은퇴 후 건강할 때 입주해 평생을 같은 단지에서 보낼 수 있다. 입주 초기에는 즐겁게 독립적인 생활을 누리다가, 훗날 건강이 나빠지더라도 이사할 필요 없이 단지 내에 머물 수 있다. 일상생활 보조(assisted living)와 24시간 전문 간호(skilled nursing), 재활 등 단계별 맞춤형 케어 서비스를 연속적으로 제공한다.
입회비 성격의 초기 보증금은 주택 면적에 따라 약 3억8000만원에서 최대 12억원이다. 식대와 하우스키핑, 부대시설 이용료 등이 포함된 월 이용료는 약 617만원에서 1074만원으로 꽤 높은 편이다.
그럼에도 입주 희망자가 줄을 서는 배경에는 75년 역사를 자랑하는 운영 주체 ‘휴먼굿(HumanGood)’의 역할이 크다. 휴먼굿은 비영리재단으로 운영 수익을 시설과 서비스에 온전히 재투자한다. 장기 거주로 인해 입주민 잘못없이 개인 자산이 고갈되더라도 재단 차원의 금융 지원(benevolent support)을 통한 월 이용료 보전으로 거주를 최대한 보장한다. 노후 파산에 대한 시니어들의 불안감을 지워준 것이다. 다만 발레 베르데는 오랜 역사 탓에 일부 식당이나 공용 시설의 인테리어가 다소 노후화했다. 국내 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은퇴주거를 도시 개념으로 접근하지만 한국은 아직 건물 개념에 머물러 있다”며 “앞으로 단순 주거시설이 아니라 자연·커뮤니티·의료·문화가 결합된 복합 은퇴도시 모델이 중요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hong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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