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200년 전 다산 정약용 선생도 자녀들에게 ‘반드시 서울에 살라’면서, 서울에서 10리 밖으로는 절대 나가지 말라고 했대요.”
최근 부동산 시장에서 ‘서울 불패’ 신화가 고착화하고 있는 분위기다. 아직 수도권 대부분 지역이나 지방 아파트 가격은 제자리걸음인 반면, 서울 아파트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연일 상승세를 보이고 있어서다. 올해 4월 기준 서울 아파트 84㎡(34평) 평균 실거래가는 13억7710만원으로, 1년만 만에 10% 가 더 올랐다. 이렇다 보니 국내 부동산 시장은 이제 서울과 비(非)서울로 나뉜다는 소리까지 나온다.
이런 가운데 서울 입지의 중요성이 현대가 아닌 과거 조선시대 때부터 강조되어 왔다는 사실이 네티즌 관심을 끌고 있다. 조선 후기 대표적인 실학자로 꼽히는 다산 정약용 선생이 남긴 글에서 ‘인 서울’의 중요성을 알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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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갑작스러운 사망 후 정순왕후와 노론 벽파는 남인 숙청작업에 돌입했다. 이에 셋째 형인 정약종과 그의 장남은 참수됐고, 둘째형 정약전과 정약용은 유배를 가게 된다. 정약용은 전라남도 강진 등에서 무려 18년간의 유배생활을 했다. 멸문지화급 위기를 맞았던 순간에도 정약용은 고향에 남은 두 아들(정학연·정학유)에게 편지를 써서 꼭 서울에 살라는 당부를 전달한다.
정약용이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를 모은 ‘다산간찰(茶山簡札)’을 보면 “내가 귀양살이하는 처지라 너희를 당장 한양에 살게 하지는 못하지만, 앞으로 오직 한양(서울) 도성 안 10리(약 4km) 안팎에서만 살도록 해라”, “우리나라는 문화가 뒤떨어져서 한양 문밖에서 몇십 리만 떨어져도 태고처럼 원시사회가 되어 버리니, 멀고 먼 시골이야 말할 것도 없다. 만약 가문이 쇠약해져 한양 도성 안에 살지 못하더라도, 잠시 근교에 살며 기회를 보아 다시 한양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등 문장이 관측된다.
지금이야 서울에 일자리와 교통, 각종 생활 인프라가 몰려 있어 주거 선호도가 높고 집값 상승폭도 크다지만, 정약용은 왜 아들들에게 조선시대때부터 ‘인 서울’을 강조한걸까. 역사 전문가들은 현실적, 교육적 이유가 컸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다.
먼저 정약용이 폐족으로서 재기 기회를 노리려면 한양에 머물러야만 한다고 판단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신유박해 사건으로 정약용 집안은 정치적으로 몰락한 신세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아들들까지 지방 시골로 완전히 내려간다면 한양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최신 정치 동향이나 학문적 흐름에서 소외돼, 다시는 가문을 일으켜 세울 기회조차 얻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을 가능성이 크다.
과거 조선도 지금처럼 한양과 지방 간 문화·학술 인프라 격차가 컸던 탓도 있다. 이에 정약용은 아들들이 한양에 머물러야 유능한 학자들과 교류하고, 귀한 책을 구해 독서하며, 지식인으로서 안목과 식견을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란 설명이다.
결국 200년 전 정약용이 아들 둘에게 건넨 “어떻게든 서울 근처에 버티고 살며 안목을 잃지 말라”는 조언은, 오늘날의 인서울 열풍과는 차이가 난다. 다만 자식들의 미래와 가문의 부활을 걱정했던 아버지가 유배지에서 보냈던 눈물겨운 편지는 서울 집중화 현상과 함께 현실적인 재테크 및 교육 지침을 되새겨 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leejin0506@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