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보연의 부동산개발 처방] ⑥설계비 아낀 건축? ‘공사비 폭탄’이란 결과로 돌아온다
[땅집고] 설계란 건축법 등 관련 법령에 따라 해당 용도지역에서 건축 가능한 건축물을 도면으로 구체화하고, 관계 관청의 인허가를 거쳐 실제 건축이 가능한 공사용 도서를 완성하는 과정이다.
설계는 어떤 순서로 진행될까. 먼저 법규·규모를 검토하는 ‘기획 업무’를 수행하고, 이를 구체화해 건축물의 용도 규모·매스·평면·입면·단면·주차 등을 계획하는 ‘계획설계’로 이어진다. 이후 기계·소방·전기·조경·창호 등 각 분야를 반영한 ‘중간설계’를 완성해 인허가를 접수하고, 최종적으로 각 분야 상세도면과 시방서를 포함한 ‘실시설계도서’를 완성함으로써 설계가 마무리된다.
실시설계도서는 시공사로부터 공사 견적을 받을 수 있는 최종 설계이며, 공사 품질 공사비 공사기간을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결국 설계란 단순한 도면 작성을 넘어 개발 사업 전체의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는 핵심 작업인 셈이다.
◇설계, 건축물 품질과 공사비를 결정하는 출발점
설계는 건축계획을 도면화하는 작업이고, 건설은 그 설계도서에 따라 실제로 시공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설계도서가 상세하고 정확할수록 공사 역시 계획대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설계도서가 부정확하거나 누락이 많으면 발주자와 시공사 간 해석 차이가 생기고, 그 결과 분쟁과 추가 공사비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
특히 상세도면이 부족한 경우 시공사가 임의로 자재와 시공 방법을 선택하게 된다. 이 때 대체로 비용이 저렴하고 시공이 쉬운 방향으로 결정되기 쉽다. 그러면 결국 당초 건축물이 기대했던 품질에 미치지 못하거나, 공사 도중 설계변경이 반복되면서 공사기간 지연과 공사비 증액이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럼에도 ‘설계는 적당한 가격을 제시하는 업체에 맡기고, 시공사를 좋은 곳으로 선정하면 된다’는 인식을 가진 사업시행자가 여전히 적지 않다. 아무리 우수한 시공사라도 실시 설계도서가 미흡하면 좋은 결과물을 만들기 어렵다. 공사의 품질은 결국 설계도서의 품질을 넘어서기 어렵기 때문이다. 설계비를 아끼기 위해 저가 설계업체를 선택하면 당장은 비용을 아낄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공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추가비용과 품질 저하를 감안하면 오히려 더 큰 손실로 돌아올 수 있다.
◇좋은 설계사,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하나
설계사 선정은 부동산 매입계약 이후 단계에 해당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사업구상 단계와 부지 검토 시점부터 설계사무소와 협업을 시작하게 된다. 개발 관련 법규를 검토하고 건축 규모를 산정해 사업타당성 분석을 실시하려면 설계 전문가의 도움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관련 법규검토와 규모검토 자체는 설계사마다 큰 차이가 없 을 수 있지만, 이후 실제 건축물의 평면·입면·층수·주차·배치·조경 등의 설계는 설계사의 역량과 성향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설계사무소를 찾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주변 사업시행자의 소개를 받을 수도 있고, 시장조사 과정에서 자신의 개발 아이디어를 잘 구현한 건물을 찾는 데서 시작하면 된다. 해당 건물의 주소로 건축물대장을 발급받으면 건축개요는 물론 건축주·설계자·감리자·시공자까지 확인할 수 있고, 이후 해당 설계사무소의 홈페이지나 포트폴리오를 통해 기존 작업물을 살펴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포트폴리오를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현장을 방문해 설계 결과물을 확인해야 한다는 점이다. 사업시행자는 자신의 개발 아이디어를 가장 잘 실현시켜 출 수 있는 설계사를 선정해야 하며. 규모검토 단계부터 충분히 소통하면서 설계 방향을 함께 조율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의사소통이 원활한 설계사를 고르는 일이다. 계획설계, 중간설계, 실시설계를 거쳐 공사 단계에 이르기까지 시공사의 질문과 현장 이슈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어야 설계도서대로 공사가 구현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현실적으로 설계사와 정식 설계 계약 전에 계획설계안을 제공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래서 기존 레퍼런스와 초기 커뮤니케이션의 질이 설계사 선정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실무적으로는 최소 3곳 이상의 설계사무소에 동일한 조건으로 견적을 의뢰하고, 같은 기준에서 비교 검토한 후 선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격보다 범위와 책임, 설계계약서에서 반드시 확정할 것들
부동산개발에서 설계계약을 잘 했다는 것은 단순히 좋은 건축사를 선정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좋은 설계사를 선정한 뒤, 그 선정 기준과 기대 수준을 계약 조항에 구체적으로 반영하는 것 까지가 계약의 완성이다. 설계계약서는 설계 용역 비용만 정하는 문서가 아니라. 설계 범위와 책임, 산출물, 설계 누락 및 오류 책임, 비용 정산 기준 등을 확정하는 문서여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중요한 것은 설계 범위를 명확하게 정하는 것이다. ‘기본설계 및 실시설계 일체’ 같은 포괄적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기본설계, 중간설계, 인허가도서, 실시설계, 구조·기계·전기·소방·통신·토목·조경 관련 외주도서, 사용승인 관련 도서, 준공도면, CAD/PDF 원본파일 제공까지 세분화해서 기재해야 한다.
설계비 산정기준 역시 명확해야 한다. 연면적 기준인지, 허가면적 기준인지와 함께 발코니·주차장·옥상 등 공간의 포함 여부를 사전에 정해야 한다. 연면적 증감시 설계비를 어떻게 정산할 것인지 정산 방식도 명기해야 하고, 설계변경 기준에도 명확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 경미한 변경과 추가 설계의 범위를 명확히 정의하지 않으면 설계사무소는 이를 추가 업무로 보고, 사업시행자는 계약한 업무 범위로 해석하면서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
개발사업은 단순 건축허가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경우에 따라 굴토·흙막이, 경관, 교통, 환경 등 각종 심의와 협의가 수반될 수 있다. 따라서 계약서에는 ‘인허가 일체’라고만 적을 것이 아니라, 포함되는 업무와 제외되는 업무를 구체적으로 구분해 두어야 한다.
실무에서 가장 흔한 함정은 저가 설계비에 끌리는 경우다. 설계비가 평균보다 낮으면 필수 업무가 빠지거나, 별도 비용 청구, 낮은 수준의 도서 작성, 시공 관리 부실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최소한 국토교통부가 제시하는 ‘건축물의 설계 표준계약서’를 기준으로 삼고, 해당 개발사업의 특성에 맞는 내용을 특약사항으로 보완하는 작업이 필 요하다. 설계계약의 핵심은 가격이 아니라 설계 범위와 책임의 명확화에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설계사에게 사업성까지 맡기면 안돼
설계 용역계약을 체결했다고 해서 설계사가 사업시행자의 의도까지 모두 알아서 반영해주는 것은 아니다. 설계는 단순히 보기 좋은 건물을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 사업 시행자가 구상한 상품과 수익구조를 건축물로 구현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설계 계약 체결 이후에도 사업시행자는 설계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사업시행자와 설계사 간 소통이 충분하지 않으면 설계사는 자신의 해석과 디자인 방향에 따라 설계를 진행하게 된다. 디자인도 물론 중요하지만, 개발사업에서 더 중요한 것은 시장에서 수요가 있고 사업성이 확보되는 상품을 만드는 일이다. 결국 사업 시행자는 철저한 시장조사를 바탕으로 실사용자가 선호하는 평면·층고·구조,·마감 등을 파악하고, 이를 계획설계 단계부터 건축사와 충분히 논의해 설계도서에 반영해야 한다.
만약 이러한 논의와 반영 없이 중간설계와 실시 설계까지 완료한 뒤 공사 과정에서 설계를 변경한다면 공사 중단과 공기 지연, 공사비 증가라는 부담을 피하기 어렵다. 인허가 단계에서 사업시행자의 의도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면 계획설계 단계로 되돌아가 조정할 수는 있다. 다만 그만큼 시간과 비용을 소요해야 한다. 반대로 시장 요구와 사업성이 충분히 반영된 설계가 초기 단계부터 구체적이고 상세하기 도면화됐다면 이후 신축 공사는 추가 공사비를 들이지 않고도 계획한 기간 안에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지며, 건축물 품질 또한 높아질 수 있다.
설계는 전문가에게 맡기는 업무지만 개발사업의 사업성까지 설계사에게 넘길 수는 없다. 결국 좋은 설계란 건축사의 전문성과 사업시행자의 기획력이 함께 어우러질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글=신보연 세종대 부동산AI융합학과 전공지도교수, 편집=이지은 기자 leejin0506@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