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전세 매물 없으면 월세 살아라" 국토부의 앙투와네트식 발상

뉴스 한상혁 기자
입력 2026.06.10 09:56 수정 2026.06.10 11:19

[대통령이 촉발한 전세 종말론] ⑥ 전세 대란은 현실이다
‘전세가 자연스럽게 없어지는 중’이라는 대통령
현장서 느끼는 전세 매물난은 ‘대란 수준’
“정부가 억지로 전세 없애면서 나타난 현상”

[땅집고] 지난달 11일 서울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앞에 붙은 매물 안내문. / 연합뉴스


[땅집고] 이재명 대통령이 ‘전세가 자연스럽게 소멸할 것’이라고 한 것과 달리 실제 임대차 시장에서는 전세 매물 급감에 따라 극심한 서민 주거난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전세매물 감소가 다주택자들의 주택을 무주택자들이 사들이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현장은 다르다. 전월세 시장의 매물난은 ‘전세 대란’이었던 2022년 임대차 2법 당시를 넘어섰고, 월세마저 급등하면서 연일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매물 감소 등 전세대란이 현장에서는 벌어지고 있는데 정부의 인식은 딴 세상이다. 국토교통부 김이탁 1차관이 지난 3월 전세의 월세화에 대해 “월세를 선호하는 의견도 있다”고 말했던 것도 재조명된다. 당시 발언에 대해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된다”는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와네트식 발상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2020년11월30일 국회에서 아파트 공급 부족과 관련 “아파트가 빵이라면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겠지만, 아파트는 공사 기간이 필요하다”고 발언을 하자 ‘빵투와네트’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전세 수급 ‘대란 수준’… 임대차 2법 당시와 비슷

9일 KB부동산의 월간 주택가격 동향 시계열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전세수급지수는 182.67을 기록하며 전월(178.10) 대비 4.57포인트(p) 상승했다. 서울의 월간 전세수급지수가 180을 넘은 건 임대차 2법 도입 당시였던 2020년 12월(187.41) 이후 5년 5개월 만이다.

전세수급지수는 전세 수요와 공급의 균형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다. 100을 넘어 수치가 높을수록 전세 매물 부족이 심각함을 의미한다. 부동산 업계에선 통상 이 지표가 180을 넘어서면 ‘전세 대란’에 가까운 공급 부족 상태로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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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6월 146.03에서 7월 144.95로 일시 감소했던 전세수급지수는 이후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며 올해 초 160선, 이어 170과 180선까지 연이어 돌파했다.

특히 강북권의 상황이 심각하다. 서울 강북 주요지역에서는 대단지 아파트를 통틀어 전세 매물을 한건도 찾아볼 수 없는 지역이 흔히 나타나고 있다. 강북 14개구의 전세수급지수는 지난 3월 이미 180을 넘어선 데 이어 5월에는 187.78에 육박하며 190선에 바짝 다가섰다.

통계상으로도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이 확인된다. 서울 전세 매물은 올해 1월 1일 2만3060건에서 이달 7일 기준 1만8020건으로 21.9% 감소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29.1% 줄어든 수치다.

서울의 전세난은 만성화된 공급 부족에 각종 규제가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지난해 10·15 대책으로 서울 전역과 경기 12개 지역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2년 실거주 의무가 생기면서 전세 물건이 감소했다. 5월 9일 양도소득세 중과 재개를 앞두고 다주택자가 세주던 집을 매매로 돌려 내놓기도 했다. 또 계약갱신청구권 행사로 갱신 계약이 늘어나기도 했다.

◇ 월세는 연일 사상 최고치, 200만원 넘는 월세도 급증

KB부동산 통계에서 지난달 서울 아파트 전세금은 전월 대비 0.83% 상승했다. 지역별로는 강북구(1.86%), 성북구(1.36%), 노원구(1.35%), 도봉구(1.33%), 서대문구(1.21%), 광진구(1.19%), 성동구(1.17%) 등 강북 지역의 상승폭이 두드러졌다.

/조선DB


전셋집을 구하지 못해 월세를 구하는 이들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국토연구원의 전국 월세가격지수는 지난 4월 105.5를 기록하며 역대 최고치에 도달했다. 서울의 상승 폭은 더 가팔라 월세가격지수가 지난 4월 110.3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월세가격지수는 2015년 7월의 월세 수준을 100으로 놓고 상대적인 월세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다.

수도권 역시 마찬가지다. 서울·경기·인천을 포함한 수도권 월세가격지수는 올해 4월 110.0을 기록했다. 기존 최고치였던 2022년 10월의 105.2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서울에서는 월 200만원을 넘는 고액 월세도 더 이상 드물지 않게 됐다. 올해 1월 1일부터 6월 8일까지 체결된 월세 200만원 이상 계약은 8187건으로 전체 전월세 거래의 17.5%를 차지했다. 서울 아파트 임대차 계약 6건 중 1건 이상이 월 200만원이 넘는 고액 월세 계약인 셈이다.

심형석 우대빵연구소장은 “전셋집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월세도 오르고 주택 구입자금 대출까지 막혀 있으니 점점 더 외곽 지역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며 “이는 전세가 자연스럽게 없어져서가 아니라, 정부가 규제를 통해 전세를 없애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주택자 타령하다 골든 타임 놓쳤다.

이 대통령과 국토부가 전세 시장 수급 문제에 대해 안이하게 대처하는 동안 전세 시장 안정을 위한 ‘골든 타임’이 이미 지나갔다는 지적도 나온다. 올해 전국 아파트 입주물량이 전년 대비 26% 이상 줄어들고, 특히 서울은 2025년 3만2370세대에서 2026년 1만8880세대로 1만3490세대(41.7%) 줄어 감소폭이 전국에서 가장 크다. 신축 아파트 입주는 한 번에 많은 전세 주택을 공급하는만큼, 신축 입주 감소는 올해 전세난을 더욱 심화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신축 아파트 입주 급감은 이미 예상됐던 일인만큼 이에 대한 대책은 이미 준비됐어야 할 상황인데, 정부가 전세 시장 종말을 이야기하는만큼 별다른 대책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관측이다. 익명을 요구한 부동산 전문가는 “일반적인 정부와 대통령이라면 말만이라도 ‘전세 시장 안정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을 것”이라며 “이 대통령과 국토부가 ‘전세는 없어져야 한다’는 식으로 공개적으로 발언하고 있으니 소비자들의 마음은 더 급해지고, 시장 상황은 점점 더 악화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sh0293@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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