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엽 전 국토부 장관 자서전 출간
“집값은 세금으로 잡을 수 없다”
[땅집고] “당신, 내 밑에 있었으면 벌써 잘렸어!”
2000년대 중반, 부동산 시장 광풍 속에 열린 고위당정회의실의 공기는 얼어 붙어 있었다. 참여정부의 핵심 인사들은 세제 강화와 비시장적 규제(분양가 상한제, 임대료 통제 등)로 수요를 억누르려고만 했지만, 당시 건교부의 총괄 실무자였던 저자는 ‘정상적인 금융규제와 압도적인 주택 공급 확대’만이 유일한 해법이라며 정면으로 맞섰다. “당신 내 밑에 있었으면 벌써 잘렸어”란 서슬 퍼런 총리의 불호령까지 떨어졌지만 저자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권도엽 전 국토해양부(現 국토교통부) 장관이 대한민국 국토·교통·도시발전의 생생한 현장 경험과 미래 국가 비전을 집대성한 자서전 ‘국가라는 배 위에서’를 출간했다. 권 전 장관은 주택정책과장, 주택국장, 차관보, 정책홍보실장을 거친 주택정책 전문가이다.
저자는 공직 인생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쟁터로 ‘주택 및 부동산 정책’ 분야를 꼽았다. 당시 정치권과 시민단체는 집값 상승의 원인을 오직 '투기꾼의 탐욕'으로만 규정하고 세금 폭탄과 분양가 상한제, 강제적인 임대료 통제 등 강력한 규제책을 쏟아내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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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저자는 정반대의 입장이었다. 그는 “시장은 눈물을 믿지 않으며, 수로를 좁히면 물이 넘치듯 규제는 장래의 주택 공급 위축 신호를 주어 가격을 더 폭등시킬 뿐”이라며 친시장적 공급 확대론을 철저한 데이터로 증명했다. 당정협의회에서 여당 대표와 육탄전에 가까운 논쟁을 벌이고, 고위당정회의에서 총리로부터 직책을 위협받는 압박 속에서도 저자는 숫자를 무기로 버텼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장사 원리에 맞지 않는다"는 양보를 이끌어내며 비시장적 규제의 독주를 막아서기도 했다.
국토부 장관시절인 2011년 저자는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과 재건축을 둘러싸고 난타전을 벌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저자는 당시 박 서울 시장의 주택정책에 대해 “서울시가 공공성을 지나치게 강조해 재건축 사업이 위축되면 주택공급 감소로 결국 서민이 피해 본다”고 비판했다. 집 없는데 녹지만 강조하면 재건축 굴러가지 않는다고 했다. 당시 박시장은 “뉴타운을 한꺼번에 개발해 전세난 야기한 측면 있다”고 반박했다.
저자는 책을 통해 서울의 평균 용적률이 파리나 도쿄, 뉴욕에 비해 턱없이 낮다는 점을 지적한다. 도심의 높이는 규제로 낮게 묶어둔 채 오피스, 문화시설 등 사람 모으는 인프라만 확충하니 집값이 폭등하고 청년들이 외곽으로 밀려나는 것은 '국가 공간 전략의 실패'라고 주장한다. 집값은 세금이나 감정으로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오직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양질의 주택 공급'만이 정답이라는 저자의 외침은 십여 년이 지난 지금의 부동산 시장에도 무거운 울림을 준다.
저자는 “정책이 이념과 정치적 계산에 휘둘리는 순간, 그로 인한 공급 절벽과 집값 폭등의 고통은 고스란히 서민과 국민의 몫이 된다”고 주장한다.
서울대학교 토목공학과 졸업하고 고시 출세 가도를 달린 것 같은 권 전 장관의 인생에도 굴곡은 있었다. 고교 시절 폐결핵 선고를 받고 대학 졸업 때까지 거의 7년 동안 약 한 움큼과 주사를 맞으며 사투를 벌였다. 그의 첫발령지는 달성군. 군수의 짚차 뒷자리에 앉아 주택개량과 농사지원 현장을 누비던 그는 건설부로 자리를 옮긴 14년의 긴 사무관 생활을 했다. 구포 열차 전복,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IMF 외환위기까지 연이어 터지는 대형 참사들을 목격하며 저자는 ‘인사가 곧 시스템’이라는 확고한 철학을 갖게 됐다. 저자는 총무과장 시절, 조직의 관성을 깨기 위해 ‘다면평가’를 최초로 시도했다.
2011년 국토해양부 장관으로 취임한 저자는 4대강 사업 마무리, 경인아라뱃길 개통, 여수세계박람회 성공 개최 등 국가적 초대형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했다. 특히 도로, 철도, 해양 인프라를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국가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hbch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