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의 천만관객 영화 배경 ‘낙화암’
영월군 881억 짜리 사업으로 절벽 훼손돼
모노레일·전망대 설치해 관광객 유치 목적
[땅집고] “영화 ‘왕사남’ 보고 감명받아 영월군 낙화암 갔는데… 역사적 가치를 지녔다는 절벽이 포크레인으로 박살나고 있어 당황스러웠습니다.”
장항준 감독의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누적 관객 수 1000만명을 돌파하며 올해 핵심 문화 콘텐츠로 떠올랐다. 조선시대 폐위된 단종이 유배지인 강원 영원군 광천골에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마지막 삶을 보내는 이야기를 담아 국민 공감대를 얻은 것으로 분석된다. 극장 관객이 나날이 줄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영화가 1000만 관객을 넘긴 것은 2024년 ‘파묘’와 ‘범죄도시’ 이후 2년 만이라 더욱 의미 깊은 성과라는 평가다.
이렇다 보니 영화 배경인 강원 영월군에 자연스럽게 관광객들이 몰리고 있다. 실제로 영월군 청령포와 장릉 두 곳을 합해 설 연휴 5일 동안 1만8000명 정도가 입장했다고 집계됐다. 지난해 설 연휴와 비교하면 방문객 수가 6배 가까이 늘었다.
하지만 영월군을 방문한 사람들 사이에선 당황스럽다는 반응이 쏟아진다. 영월군이 단종 관련 유적지 중 가장 유명한 ‘낙화암’을 부수고 이 곳에 전망대, 모노레일 등 신축 시설을 설치하는 공사를 진행하고 있어서다. 절벽에 설치했던 비석도 뽑혀나간 상태다. 영월군이 역사적 가치를 지닌 유적을 훼손하고 있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국민 분노가 터져나오는 분위기다.
낙화암은 영월군 일대를 흐르고 있는 동강 주변 바위 절벽이다. 과거 단종이 영월군으로 유배를 당한 후 사망하자, 단종을 보필하던 시녀들이 그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이 절벽에서 몸을 따라서 던졌다는 말이 전해져 온다. 이에 마치 꽃처럼 충절이 떨어진 곳이라고 해서 ‘낙화암’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슬픈 역사를 지닌 절벽이라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도 특별한 공간이란 자부심이 컸다.
하지만 영월군이 낙화암을 대규모 개발 사업 대상지로 포함시키면서 유적이 옛 모습을 잃게 됐다. 영월군이 고도 799m 높이인 봉래산에 관광객을 유입시키기 위해 ‘봉래산 명소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 봉래산에 설치한 모노레일 승차장과 연결하는 다리를 설치하려는 목적으로 낙화암 암반 2~3m를 파헤치면서다.
총 사업비 881억원 규모인 ‘봉래산 명소화 사업’의 핵심은 봉래산을 관광지로 만들기 위해 모노레일과 전망대를 설치하는 것이다. 먼저 영월읍 영흥리 금강정에서 봉래산 정상까지 1.65km를 잇는 30인승 규모 모노레일을 설치한다. 이어 봉래산 정상에는 30m 둘레 전망돔과 55m 높이 스카이워크 전망 타워를 비롯해 카페·전시공간을 포함하는 2635㎡ 규모 전망대를 조성한다. 영월읍 덕포리 영월역과 금강정 사이를 흐르고 있는 동강에는 주탑 1개와 길이 264m, 폭 2m 규모 동강보도교를 짓고, 인근 금강정 주변에 인공폭포와 경관조명 등을 설치한다.
이 사업으로 지난 570여년 동안 보존되어온 낙화암 암반이 뚫리고, 새로운 교량 지지대가 들어선다. 영월군은 이렇게 설치한 다리가 완공하는 경우 금강공원에서 봉래산 정상까지 이어지는 관광 동선이 생길 것이라고 기대 중이다. 현재 공정률은 60% 수준이다.
공사를 진행하는 도중 ‘왕이 사는 남자’ 영화가 급 흥행하면서 낙화암을 찾는 국민들이 많아지면서 사업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커지고 있다. 현재 공사는 여론을 비롯해 지역 단체들의 강력한 반발로 일시 중단된 상태로 알려졌다. 봉래산공동대책위원회가 “현수교 공사 과정에서 낙화암 표지석이 옮겨지고, 주변 절벽이 훼손되고 있다”면서 공사 중단과 사업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는 등이다. 하지만 이미 깎여 나간 낙화암은 복구 불가 판정을 받아 예전 모습으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다.
영월군의 사업으로 역사적 가치를 잃어버린 낙화암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관광객 유치하려는 목적은 좋지만, 왜 하필 역사적 장소를 훼손하면서까지 모노레일과 전망대를 지어야 하느냐”, “영월군이 관광 수익에 눈이 멀어 역사적 가치를 스스로 깎아먹은 격”이라는 등 반응을 보이고 있다. /leejin0506@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