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의 역설을 주창한 맨큐는 악마에 영혼을 팔았나?
용기와 결단으로 주택문제 풀수 있나
중국, 일본 집값 잡겠다고 칼 휘두르다 심각한 부작용 발생
[땅집고] “임대료 규제는 폭격을 제외하면 도시를 파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맨큐의 경제학(Principles of Economics)’에 나오는 글이다. 세계적 석학 반열에 오른 맨큐가 임대사업을 하는 다주택자들에게 영혼을 팔았기 때문에 이런 글을 게재했을까?
맨큐는 임대료 규제가 단기적으로는 시장에 별로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임대료 규제가 시장을 변화시킨다고 분석한다. 임대료를 너무 강하게 규제하면 장기적으로 건물주들은 임대용 주택 공급을 하지 않고 기존 주택의 유지보수도 하지 않는다. 주택시장의 상황이 점차 악화될 수 밖에 없고 장기적으로 주택공급 부족이라는 현상을 초래한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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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의도가 좋은 정책과 규제도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 경제학의 기본 원리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부동산 시장 규제와 관련, “시장에 맞서지 말라는 말도 있지만 정부에 맞서지 말라는 말도 있다”고 설파했다. 솔직히 둘다 맞는 말이다. 다만 정부 정책은 단기간에 큰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이 나온 이유이다.
일부 유튜브들은 “대통령은 코스피 5000시대를 이끈 천재적 정책가로, 부동산 시장도 안정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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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주택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 결국 집값을 낮출 수 있다는 대통령의 주장에 찬사를 보낸다. 경기도의 계곡 정비를 해낸 대통령의 결단과 능력이 코스피 6000시대를 이끌었다는데 동의한다고 해도 다주택자 규제에 이견을 제기하는 것이 마귀에게 양심을 빼앗긴 것은 아니다.
맨큐가 경제학적 관점에서 임대료 규제를 비판한 것은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정책 대안을 함께 고민하자는 의미일 것이다. 특히 부동산 정책은 정부의 선한 의도와 달리 엉뚱한 결과를 초래, 서민들이 큰 피해를 볼 수 있다. 대통령의 선한 의도를 비판하자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 규제의 부작용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기회를 갖자는 것이다. 맨큐는 임대료 규제보다는 세입자에게 직접 주거비 일부를 보조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부작용이 없는 정책적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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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드벡의 황당한 예언과 다주택자 규제의 결과
임대료 규제가 도시를 망가뜨린다는 주장의 원조는 스웨덴의 경제학자 아세르 린드벡이다. 그는 1971년 ‘The Political Economy of the New Left: An Outsider's View’라는 책을 통해 스웨덴의 임대료 통제 정책에 대해 비판했다.
그는 임대료를 강제로 낮추면 집주인들은 집을 임대하기보다 차라리 비워두거나 다른 용도로 전환하고 새로 집을 지으려는 유인도 사라진다고 분석했다. 수익이 줄어든 집주인은 도배, 수리, 설비 교체 등 유지보수를 포기하고 결국 도시 전체의 주거 환경이 슬럼화된다는 주장이다. 공식 가격은 낮지만, 집을 구하기 워낙 어렵다 보니 뒷돈을 주고받는 등 불법적인 거래가 판을 치고 싼 임대료를 누리는 기존 세입자가 절대 이사를 나가지 않으려 하면서, 정작 집이 필요한 청년층이나 노동자들은 도시 외곽으로 밀려난다는 주장이다.
그러면 린드벡의 주장은 과연 실현됐을까. 물론 스웨덴의 도시들이 슬럼화 되지는 않았다. 스웨덴은 한국의 좌파들이 꿈꾸는 임대주택 천국으로 유명하다. 스웨덴의 공공임대주택 비율은 20%로, 한국(7.45%)의 3배 수준이다. 민간임대주택도 공공임대 수준으로 임대료를 통제한다. 스웨덴의 임대료 통제 역사는 1940년대 전시 비상 조치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0년대에 스웨덴 세입자 협회(Hyresgästföreningen)'와 공공 민간 주택 소유주 연합이 매년 협상을 통해 임대료가 결정하기로 합의했다. 린드백의 예언으로부터 50년이 지난 스웨덴의 도시들이 망가지지는 않았지만 임대료 규제의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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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주택난에 기업도 외국 이전 협박
수도인 인구 100만명의 스톡홀름은 50만 명이 임대주택 입주를 위해 대기하고 있는데, 입주 대기 기간은 평균 11년이다. 도심 인기지역은 20년 이상이다. 입주 대기자들은 통제 임대료보다 50~ 70% 더 내고 암시장을 이용하기도 한다. ‘암시장’은 임대료 통제를 받는 공공, 민간의 임대주택 공식 세입자가 자신의 집을 웃돈을 받고 전대(轉貸)하기도 한다.·
창고를 불법개조해서 임대를 주거나 작은 방들을 쪼개 여러 명에게 임대주는 사업도 유행이다. 스톡홀름에 본사를 둔 음악 스트리밍 회사 스포티파이는 정부에 주택난을 해결해주지 않으면 다른 나라로 회사를 옮길 수 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한 설문 조사에서 기업의 30%가 주택난으로 직원을 구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2021년 중도좌파 성향의 사회민주당 소속 스테판 뢰벤 스웨덴 총리가 임대주택난은 과도한 임대료 통제로 주택공급이 감소한 탓이라며 신축아파트에 한해 임대료 규제 완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임대사업자의 이윤을 보장해주고 세입자들의 주거권을 침해한다”면서 좌파당이 극우 정당과 연합해서 총리 불신임안을 통과시켰다. 뢰벤 총리가 사임했다가 복귀하는 등 해프닝을 빚기도 했다.
◇임대사업자에 양도세 면제 혜택 독일
스웨덴만큼이나 임대주택 천국으로 알려진 독일은 어떨까. 독일은 임대 가구 비중이 50%가 훨씬 넘는다. 특히 베를린은 임대 주택 거주 비율이 85%나 된다. 국민의 절반이 평생을 임대주택에서 사는 것은 세입자들을 위한 강력한 보호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임대료 인상의 제한이다. 계약해지사유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세입자는 기간의 제한 없이 계속해서 거주할 수 있다. 임대인이 계약을 해지하기 위해서는 세입자가 임대료를 연체하거나, 임대인이 직접 거주하려고 하는 등의 정당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 이런 엄격한 조건에도 국민의 절반이 임대주택에 살수 있는 것은 다주택자들 덕분이다.
독일의 다주택자들은 이런 불리한 여건에서도 집을 임대하려할까. 그럴만한 충분한 당근을 독일 정부가 제공한다.10년 보유후 매각시 양도소득세를 완전 면제해준다. 거주용 주택(실거주)은 2~3년만 거주해도 면제되지만, 투자용 다주택자에게는 10년 보유가 핵심 기준이다.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꾼을 임대주택 공급자로 적극 활용하는 독일식 실용주의이다. 파격적 혜택에도 독일은 임대주택을 공급해줄 다주택자들이 크게 늘지 않아 만성적인 임대주택 부족과 집값 폭등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독일에서 세입자가 되기 위해서는 세입자 면접(Besichtigung)을 거쳐야 한다. 집주인이 안정적이고 신용이 높은 세입자를 선정하기 위해 직업, 소득, 신용도, 반려동물 유무 등을 검증하는 필수 절차이다.
◇용기와 결단에 실용주의 없으면 나라 망한다
코스피 6000시대를 연 이재명 대통령이 주택정책에서도 큰 족적을 남기려면 이념형 정책에서 탈피해야 한다. 용기와 결단만으로 주택시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의 경제 규모가 작지 않다. 미국, 일본, 중국, 프랑스,독일 등 전세계가 다 주택문제라는 난제와 싸우고 있다.
이들 나라의 지도자들이 용기와 결단이 없어서 해결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중국의 경우, 시진핑 주석이 용기와 결단으로 주택문제를 풀려고 했다. 시진핑 주석이 여러 차례 ‘집은 살기 위한 것이지 투기 대상이 아니다’고 경고해도 부동산 시장 급등세가 진정되지 않자 대출을 막아버렸다. 그로부터 1년 뒤인 2021년부터 주요 부동산 개발업체인 헝다와 완다, 비구이위안 등이 줄줄이 도산 위기로 내몰렸다. 경기침체로 이어지면서 오히려 부동산 경기 부양책으로 전환했다. 집값 잡겠다는 목표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많다.
1980년대 후반 일본은 부동산과 주식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치솟는 '버블 경제'로 인해 평범한 직장인이 월급을 모아 도심에 집을 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고, 국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극에 달했다. 1989년 취임한 미에노 야스시(三重野康) 일본은행 총재는 "건전한 서민이 성실하게 일해서 집을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며 버블 퇴치론 펼쳤다. 그는 당시 정책금리를 3.75%에서 6%까지 인상했다. 버블 퇴치의 일등공신으로 ‘서민들의 영웅’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그러나 버블붕괴로 인해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일본 경제를 침몰시킨 은행장’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용기와 결단이 좋은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서민을 위해 부동산 망국론을 혁파하겠다는 용기와 결단이 엉뚱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실용주의가 중요하다. 극단적인 주장을 펼치는 학자, 전문가들을 멀리해야 하는 이유이다. /hbch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