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6위 ‘가계 부채’ 줄이려면
객관성↓ ‘은행 깜깜이 담보물 가치 평가’ 막아야
상황 반복되면 소비자 피해로 돌아온다
[땅집고] 정부가 지난해 ‘6·27대책’ ‘10·15대책’을 연이어 발표하는 등 가계대출을 강하게 규제하고 있으나,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여전히 세계 최상위권인 것으로 나타났다. 16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89.0%에 달한다. 2021년 말 98.7%로 세계 최고 수준을 보인 뒤, 정부의 강력한 관리로 2023년 93.0%, 2024년 89.6%로 하락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 이는 세계 최상위권 수준이다. 2025년 국제결제은행(BIS) 통계에 따르면 31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한국은 스위스(125.3%)와 호주(112.7%), 캐나다 (99.1%), 네덜란드(94.0%), 뉴질랜드(90.1%)에 이어 6위에 올랐다.
정부는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너무 높으면 경제 성장과 금융 안정을 해칠 수 있다고 했다. 한국은행 연구에 따르면 GDP 대비 가계신용비율(3년 누적)이 1% 오르면 4~5년 시차를 두고 GDP 성장률(3년 누적)은 0.25~0.28% 하락한다. 이런 가운데 우리나라의 가계 대출은 지난해 3분기기준, 1845조원에 이른다. 이 중 부동산 담보 대출이 약 1160조원이다.
정부는 가계 빚의 안정적 관리와 금융기관 건전성 유지를 위해 부동산 담보인정비율(LTV·Loan to Value) 제도를 시행 중이다. LTV는 부동산 담보물 가치 대비 대출금액이 차지하는 비율이다. ‘10·15대책’ 등 정부의 부동산 정책 발표에 빠짐없이 등장한 핵심 정책 수단이다.
그런데 정작 국민들은 LTV 운영 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담보물 가치와 대출 가능액을 금융권 내부에서 결정하고, 절차 및 과정을 외부에 알리지 않아서다. 지난 1월 공정거래위원회가 LTV 담합 관련 과징금 부과 당시 밝혔듯, 대출 가능액 등은 은행 고유의 영업 지침에 해당하므로 비공개 사안이다.
하지만, 담보물 가치 결정은 다른 관점에서 봐야 한다. 은행이 부동산 담보 가치를 자의로 결정한다고 가정해 보자. 대출을 받으려는 이는 담보물 금액을 어느 정도로 제시해야 하는지 예측하기 어렵다. 또한 은행이 담보물 가치 정할 때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준을 활용하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 있다. 바로 감정평가사 제도이다. 감정평가는 감정평가사로 하여금 담보물에 대한 공정한 평가를 통해 대출에 대한 소유자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동시에 대출 가액 결정 과정에 대한 소유자의 신뢰도를 높인다. 은행의 부실채권을 줄이고 경영 건전성을 높이는 효과도 있다. 정부가 1973년 국가전문자격 감정평가사 제도를 도입한 이유다. 즉, 은행의 담보 감정평가는 외부 감정평가사를 통해 평가하도록 합의한 공적 약속이다.
문제는 최근 이러한 약속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은행이 감정평가사를 고용해 법 테두리 밖에서 감정평가를 하는 것이다. 법인이 회계사를 고용해 자체 감사하는 셈이다. 이익 극대화를 위한 부적절한 행태다. 감정평가법 제2조는 ‘대출을 위한 담보물 가액 결정을 감정평가사의 전문적인 판단에 맡기도록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런 행위는 국가가 감정평가사에게 엄격히 요구하는 윤리적 통제장치를 벗어난 것이기도 하다. 나아가 감정평가 산업에 대한 정부의 포괄적 관리 감독 사각지대가 발생하도록 한다.
국토부는 이 같은 상황을 인지했다. 지난해 9월 은행이 감정평가사를 고용해 담보물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법률 위반이라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금융위 역시 감정평가사를 고용해 부당한 감정평가 행위를 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에 공감을 표했다. 그러면서 관계 기관 연석회의를 통해 합리적 방안을 찾기를 권고했다.
은행은 공정성과 객관성 등의 공익적 목표 아래 차입자의 원활한 경제활동을 지원하는 입장이지만, 자체 수익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LTV 시스템의 핵심 축인 담보물 가치 결정이 자칫 은행의 이익 극대화 유인에 매몰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금융 소비자에게 귀결된다.
금융산업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실로 엄청나다. 따라서 공정하고 객관적이며 독립된 감정평가는 가계부채를 합리적으로 관리하는 기반이 되며 은행의 위험관리 체계의 핵심 버팀목이 된다. 정부는 금융기관의 경영 건전성 확보, 감정평가사 제도의 취지 등을 고려해 은행이 담보물 가치 판정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글=권대중 한성대 일반대학원 경제·부동산학과 석좌교수, 정리=김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