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플을 만드는 도시계획②] ‘숏폼 도시’ 한계 부닥친 성수동…복합개발로 완성도 높여야
[편집자 주] 서울의 도시 경쟁력을 한단계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 성수동. 대한민국 넘버원 ‘핫플’은 민간의 창의성과 도전 정신이 만든 결과물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20여 년에 걸친 서울시의 치밀한 공간 전략이 있었다는 점은 충분히 조명되지 않았다. 이번 기획은 성수동 성공을 이끈 서울시 준공업지역 정책과 규제 완화, 도시계획을 깊이있게 들여다본다. 성수동이 성장 과정에서 겪은 문제점과 한계 역시 진단하고, 문래동을 거쳐 강북으로 이어지는 ‘제2·제3의 성수동’이 어떻게 변모할지도 짚어본다.
[땅집고] 지난 13일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성수역. 설 연휴를 앞둔 이른바 ‘불금’을 맞아 성수동을 찾은 20~30대 젊은층이 역사를 빠져나가기 위해 개찰구 앞에 길게 줄을 섰다. 3번 출구로 나와 이면도로를 따라 걷다보니 성수동 상권에서 핵심으로 통하는 연무장길 중심으로 독특한 메뉴와 아기자기한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10~20평 남짓 식당과 카페가 줄줄이 보였다.
하지만 조금 규모가 큰 건물 1층은 어김없이 유명 패션 브랜드와 대기업 팝업스토어가 차지했다. 과거 성수동을 지키던 공방이나 향토 소상공인은 찾아보기 어렵다. 성수동에서 액세서리 가게를 운영하는 이모씨는 “최근 새 건물주로부터 ‘나가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주변에서 자주 일어나던 일인데 막상 나한테 닥치니 새삼스럽다”고 했다.
공업지대 특성을 살린 카페나 복합문화공간이 주목받으면서 한때 ‘한국의 브루클린’으로 불리던 성수동은 이제 서울을 넘어 대한민국 최고 핫플 자리에 올랐다.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필수 방문코스가 됐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도시 공간 구조 측면에서 본 성수동의 현재 모습은 ‘반쪽짜리 성공’이라고 평가한다. 상권은 단기간 급성장했지만 비즈니스와 주거 기능이 부족해 구조적인 한계에 맞닥뜨렸다는 것. 이 때문에 서울시는 속칭 ‘숏폼 도시’로 전락한 성수동이 자족 도시로 변신해 제2의 도약이 가능하도록 새로운 도시 공간 전략을 추진해 주목된다.
◇“110층 GBC 무산으로 도시 경쟁력 강화 기회 놓쳐”
서울시는 성수동의 경쟁력 확보 핵심은 비즈니스와 배후 주거 기능 강화라고 보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서울시는 과거 현대차그룹이 추진했던 지상 110층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개발 무산을 여전히 아쉬워한다.
당시 이 사업을 적극 추진했던 인물이 바로 오세훈 서울시장이다. 오 시장은 2009~2011년 1기 재임 중 성수동 삼표레미콘 공장 부지로 현대차그룹 본사를 이전해 달라고 직접 설득했다. 삼표레미콘 공장은 1977년부터 소음, 분진, 교통체증으로 주민 민원이 쏟아지던 곳이다. 서울시는 삼표레미콘 부지의 입지적 장점을 살려 초고층 복합건물로 개발하는 청사진을 만들었다. GBC 중심으로 동북권에 하루 상주 직원10만명 규모 글로벌 업무지구로 조성해 ‘제 2의 강남’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확보한 공공기여 2조원은 성수동 추가 발전에 쓰기로 계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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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011년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이 취임하면서 프로젝트가 무산됐다. 당시 박 시장은 한강변에 최고 35층 이상 건물을 짓지 못하도록 막는 이른바 ‘35층 룰’을 도입, 삼표레미콘 부지의 초고층 개발은 전면 백지화됐다. 결국 현대차그룹은 GBC를 성수동이 아닌 강남구 삼성동에 짓기로 했다.
오 시장은 “110층 GBC 무산은 성수동 뿐 아니라 서울 도시 경쟁력 차원에서도 매우 뼈아픈 기회 상실”이라고 여러차례 아쉬움을 내비쳤다. 부동산 전문가들 역시 이 사건을 기점으로 업무·산업 중심지로 성장할 수 있었던 성수동이 소비 중심 상권으로만 고착화됐다고 분석한다.
◇상권 확장에 임대료 치솟아…자치구 관리만으로는 한계
GBC 개발 무산 이후 성수동은 빠르게 소비 중심 상권으로 재편됐다. 팝업스토어, 전시·브랜드 마케팅 공간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주목받았지만 그만큼 상권의 생명력은 짧아졌다. 크고 작은 상가마다 임대료가 급등하자 초기 창업자와 소상공인이 빠르게 이탈하는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심화됐다. 비슷비슷한 카페와 식당이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되레 천편일률적인 상권이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2014년 처음 구청장에 당선한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취임하자마자 소상공인 보호를 위한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를 제정했다. 그러나 2015년 9월 선포한 이 조례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 임대인들이 세입자를 내쫓더라도 이를 막을 실질적 장치는 아니다.
상권 급팽창으로 성수동의 각종 인프라도 한계에 도달했다. 급증한 유동 인구에 비해 교통, 보행, 공공 공간 확충 속도가 뒤떨어져 주말이나 각종 행사가 있는 날이면 성수동은 사실상 ‘보행 마비’ 상태다. 성수동 주민 김모씨는 “성동구청에서도 노력하고 있지만 성수동 관리 정책이 제도 정비 수준에 머무르다보니 상권 구조 안정이나 산업 생태계 유지 측면에선 실질적 성과를 내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다시 탄력받는 삼표 부지 개발…성수동 ‘직주락’ 도시 추진
이런 가운데 서울시가 최근 성수동의 제2도약을 위한 적극 행보에 나서 주목된다. 2021년 복귀한 오 시장은 삼표레미콘 부지에 새로운 글로벌 비즈니스·산업 거점 개발을 핵심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오 시장은 “이제 성수동은 더 이상 팝업과 카페만으로 유지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라면서 “일자리·주거·문화를 결합한 자족형 도시 구조로 재편해야 지속성장 가능한 도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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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목표는 삼표레미콘 부지를 ‘한강의 실리콘밸리'로 만드는 것. 글로벌 IT·미디어 기업과 유니콘 스타트업, 문화 산업이 집적된 미래형 업무복합단지로 조성하겠다는 청사진이다. 업무시설 뿐 아니라 대형 문화광장도 짓는다. 아파트 등 주택도 6000가구 신축을 계획 중이다. 서울시는 사전협상제도를 통해 부지 소유주인 삼표 측으로부터 약 6000억원 규모 공공기여를 확보했다. 완공 목표는 2032년이다.
서울시는 성수동의 취약점 중 하나인 주거 기능 강화를 위해 성수전략정비구역 개발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강남이 업무중심지로 발전한 것도 바로 비즈니스와 상업 기능을 뒷받침할 배후 주거단지가 탄탄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오 시장은 박 전 시장 시절 35층 룰에 막혀 10년 가까이 중단됐던 성수전략정비구역 재개발 규제를 대폭 풀어 50층 이상 랜드마크 아파트 건축이 가능하도록 했다. 성수전략정비구역에는 앞으로 최고 70층, 총 9400여가구 규모의 한강 조망권을 갖춘 새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업계에선 성수전략정비구역 재개발과 삼표레미콘 부지 복합개발이 완성되면 성수동이 서울 동북권을 대표하는 '직(職)·주(住)·락(樂)' 결합형 도시로 재편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현재 오세훈 서울시장의 도시 실험이 가장 집약된 공간이 바로 성수동”이라며 “삼표시멘트 부지 프로젝트 성패는 단순한 지역 개발을 넘어, 서울의 미래 도시 모델을 가늠하는 시험대로 작용할 것”이라고 했다. /leejin0506@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