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억 들여 지었던 파주 영어마을 근황은
[땅집고] “예전에는 엄마들 사이에서 ‘영어마을 다녀오셨어요?’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질 때가 있었는데… 이젠 찾는 사람 하나 없는 유령마을이 되어버리다니 안타깝네요.”
과거 경기도가 900억원 넘는 사업비를 투입해 건립했던 ‘파주 영어마을’이 현재 찾는 사람이 없는 유령마을로 전락한 사실이 재조명되면서 혈세 낭비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찾는 사람은 없는데 운영비용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바람에 매년 기본 10억원 수준 적자를 내는 ‘세금 먹는 하마’가 된 상황이다.
경기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일대 8만4000여평 부지에 조성한 파주영어마을. 2002년 경기도지사에 취임한 손학규 당시 지사가 만들었다. 당시 국제공용어인 영어에 대한 중요성이 크게 강조되면서 학부모 사이에서 단순 영어 교육을 넘어 해외 연수 열풍이 일자, 국내에서도 영어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저소득층 자녀들도 함께할 수 있도록 영어마을 사업을 고안해낸 것.
손학규 경기도지사는 2004년 안산 영어마을을 시작으로 2006년 파주 영어마을, 2008년 양평 영어마을을 차례로 조성했다. 총 3개 마을을 만드는 데 1750억원이 투입됐다.
이 중 계획상 ‘1호 사업지’로 핵심이었던 파주 영어마을을 만드는 데만 사업비 906억원이 들었다. 유럽풍으로 설계한 건물 40여개와 함께 학생 550명과 원어민 강사 100명이 동시에 묵을 수 있는 기숙사, 각종 교육·관리동을 지었다. 영어 교육에 필요한 건물 뿐 아니라 문화시설과 공공시설도 함께 들어섰다. 영어권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테마전시체험관, 방송스튜디오, 어린이도서관, 우체국, 은행 등이 어우러지면서 하나의 독립된 마을처럼 운영됐다.
영어교육에 대한 열망이 강했던 만큼 파주 영어마을은 문을 열자 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2주일 동안 영어마을에서 숙박하며 지내는 ‘2주 코스’가 당시 60만원으로 꽤 큰 비용이었는데도 개원한지 1년 만에 전국에서 65만명이 방문했다고 전해진다. 학생 뿐 아니라 교사들과 군 장병, 지자체 공무원도 파주 영어마을을 방문해 영어권 국가 문화에 대해 체험하는 기회를 얻었다. 사업이 흥행하자 경기도 외 다른 지자체도 영어마을을 앞다퉈 조성하기 시작하면서 그야말로 ‘영어마을 붐’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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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파주 영어마을 경쟁력이 약화됐다.영어 교육이 갈수록 보편화되고 해외 여행에 대한 진입 장벽도 낮아지며 굳이 영어마을에 가지 않아도 된 탓이다. 더불어 전국 영어마을이 공공·사설을 포함해 44곳까지 늘면서 굳이 파주까지 방문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재정난까지 겹쳤다. 경기도에 설립한 만큼 입소 비용을 높은 사교육비만큼 올리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자체 교육비 수입으로는 운영비·인건비 등을 충당하기 어려운 구조인 만큼 파주 영어마을은 개원 직후부터 매년 적자를 내기 시작했다. ▲2007년 66억원 ▲2008년 41억원 ▲2009년 63억원 ▲2010년 29억원 ▲2011년 19억원 등, 전국 영어마을 중 가장 큰 적자를 기록하는 애물단지가 됐다.
경기도는 파주 영어마을을 살리기 위해 2주 코스 비용을 60만원에서 80만원으로 늘리고, 영어강사 등 근무 인원을 구조조정하는 등 조치를 취했지만 적자폭을 줄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정치권에서 ‘세금 먹는 하마’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자 본래 기능이었던 영어마을을 축소하고 다른 용도로 전환하는 시도도 이어졌다. 2017년 명칭을 ‘체인지업 캠퍼스’로 바꾸고 미래형 교육 프로그램 기관으로 전환하고, 2019년에는 ‘경기미래교육 파주캠퍼스’로 다시 이름을 바꾸며 ▲창의·예술교육 ▲미래특강 등 프로그램을 비롯해 원어민 교사와 함께하는 영어 문화 체험을 운영하는 등이다.
끊임 없는 새 도전에도 파주 영어마을은 간판만 유지할 뿐 여전히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운영기관인 경기도평생교육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영업비용을 포함한 지출이 수입을 넘어서면서 예산상 마이너스 9억5680만원인 것으로 집계됐다. 올해에도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 예산이 마이너스 9억5480만원으로 추산된다는 총괄표가 게시됐다.
대규모 유령마을로 전락한 파주 영어마을을 되살리려면 외부인 발길을 부르는 새로운 콘텐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현재 파주시는 경기도 요청에 따라 파주 영어마을 도시관리계획을 변경해 시설 용도에 관광숙박시설을 추가해둔 상태다. 인근에 DMZ가 있는 만큼 평화통일 등을 중심으로 한 관광이나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전야제 등을 연계한 숙박·관광 상품을 개발하자는 제안이 나오고 있는 점을 겨냥한 조치로 보인다.
일각에선 파주 영어마을이 입지상 수도권 외곽에 위치해 공공이 개발하는 데 아무래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경기도가 더 이상의 적자를 내지 않기 위해서는 아예 부지를 민간 매각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시각이다. /leejin0506@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