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지산 근처 10년 만에 공급한 새아파트
한 채당 7.5억 분양하다 돌연 철거
주민들 후지산 조망권 침해 민원이 원인
건설사 이미지 관리…사업 포기로 100억 이상 손해
[땅집고] “아파트가 후지산을 가리길래 이제 조망권은 포기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건설사가 100억원을 들여 아파트를 철거한다니 어안이 벙벙하기도 했고요…”
일본 후지산을 끼고 있는 도쿄도 구니타치(国立)시 후지미(富士見) 거리. 뻥 뚫린 길 너머로 후지산이 자리잡고 있는 모습이 아름다워 이 일대 주택마다 조망권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동네 이름인 후지미(富士見) 자체가 후지산이 보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만 10년 넘게 새 아파트 분양 소식이 없어 아쉽다는 의견이 이어졌다.
이 점을 겨냥해 일본에서 주택 건설 명가로 꼽히는 기업 ‘세키스이하우스’(積水ハウス) 가 후지미 거리 대로변에 총 10층 높이에 18가구 규모 아파트, ‘그랜드 메종 구니타치 후지미 도오리’를 짓기로 했다. 후지산으로부터 직선 75km 거리에 있는데 산까지 이어지는 도로에 방해물이 없어 널따란 통창으로 후지산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조망권을 갖췄다. 일본에서 후지산 조망권은 최고의 가치를 지닌다. JR추오선 전철노선 구니타치역까지 걸어서 10분 걸리는 역세권 입지기도 했다. 2022년 건설 승인을 받을 당시 분양가는 한 채당 7000만~8000만엔으로 책정됐다. 우리나라 돈으로 최고 7억5000만원 수준이다.
☞경매 초보도 돈버는AI 퀀트 나왔다…땅집고옥션, 백발백중 투자법 제시
문제는 10층 높이인 이 아파트가 후지산 모습을 일부 가리는 위치에 들어선다는 점이었다. 2021년 건설 소식을 접한 후지미 거리 일대 주민들은 시에 조망권 침해가 우려된다는 민원을 제기하고 나섰다. 이에 세키스이하우스가 당초 36m에 11층 높이로 계획됐던 아파트 높이를 30m에 10층까지 줄였다. 구니타치시는 2022년 11월 이 아파트 건설 계획이 용적률 등 요건을 충족한다고 보고 건설을 최종 승인했다. 단지는 2023년 1월 착공해 2024년 중순쯤 입주를 목표로 공사를 이어갔다.
하지만 아파트 높이를 낮춘 뒤에도 공사 기간 내내 주민들 민원이 이어졌다. 건물이 모습을 점점 갖춰갈수록 아파트가 후지산 조망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 사진에 따르면 후지미 거리에서 후지산을 바라봤을 때, 아파트가 산을 절반 이상 가린 모습이 확인됐다. 후지산 조망권을 망친 아파트 사진이 온라인을 통해 퍼지면서 세키스이하우스에 대한 전국적 비난이 쏟아졌다.
결국 세키스이하우스는 2024년 6월 ‘그랜드 메종 구니타치 후지미 도오리’를 완공한 뒤 분양 절차를 밟던 중, 돌연 건물을 철거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회사 관계자는 "아파트 건설 계획이 구니타치시의 경관 조례를 포함해 각종 법령에 대한 사항은 충족해 문제가 없었다”면서도 “하지만 건물 주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검토가 미흡해 최종 철거를 결정했다”고 전했다. 이어 "이번 일을 매우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 건물 주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검토 프로세스를 재점검하고 재발 방지에 만전을 기한 것"이란 입장을 전달했다.
부동산 업계에선 세키스이하우스가 다 지은 10층 높이 아파트를 철거하면서 입었던 손해가 100억원 이상 발생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아파트 건설에 든 공사비는 물론이고 아파트를 한 채당 최고 7억5000만원에 분양받은 사람들에게 돌려줘야 하는 분양대금과 법에 따라 지불해야하는 위약금 10%, 각종 손해배상 비용 등을 모두 포함한 금액이다.
당시 한 주민은 일본 현지 언론에 "지금까지 건설에는 반대 입장이었으나 이미 공사가 진행됐으니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는 마음이었다”며 “그런데 갑자기 해체된다니 매우 당황스럽다"고 전했다.
일본 건설사들은 업계에서 신뢰도가 높은 세키스이하우스 측이 구니타치 지역 자산인 후지산 조망을 망친 기업이란 오명을 쓰지 않기 위해 100억원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아파트 분양을 중단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현재 건물은 완전 철거된 상태다. 건설사측은 “아직 빈 땅의 활용 계획이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편 세키스이하우스는 2024년 미국의 주택 건설사인 MDC홀딩스를 49억달러(당시 약 6조5500억원)에 인수했다. 당사 인수합병 중 역대 최대 규모였다. 저출생과 고령화로 일본 내수 주택 시장 규모로 줄고 있는 만큼 미국에서 성장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었다. 현재까지 공급한 주택은 270만가구이다. 세키스이하우스의 매출은 지난해 기준 약 37조8434억원을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leejin0506@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