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플을 만드는 도시계획①] 서울시 20년 계획의 결정판 ‘성수동’
[편집자 주] 서울의 도시 경쟁력을 한단계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 성수동. 대한민국 넘버원 ‘핫플’은 민간의 창의성과 도전 정신이 만든 결과물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20여 년에 걸친 서울시의 치밀한 공간 전략이 있었다는 점은 충분히 조명되지 않았다. 이번 기획은 성수동의 성공을 이끈 서울시의 준공업지역 정책과 규제 완화, 도시계획을 깊이있게 들여다본다. 아울러 성수동이 성장 과정에서 겪은 문제점과 한계를 진단하고, 문래동을 거쳐 강북으로 이어지는 ‘제2·제3의 성수동’이 어떻게 변모할지도 짚어본다.
[땅집고] 지난 5일 오후 서울 성동구 성수동. 지하철 2호선 성수역 3번 출구부터 이어진 쇼핑과 카페 거리는 평일에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열기가 느껴졌다. 힙한 복장의 20대 젊은이부터 가족 단위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식당이나 매장 방문을 기다리는 이들의 손에는 ‘뉴뉴’, ‘무신사 스탠다드’, ‘브랜디멜빌’ 같은 패션 브랜드부터 ‘자연도소금빵’ 같은 디저트 가게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노량진동에 사는 대학생 유모(23)씨는 “여자 친구와 한 달 두 세번은 성수동을 찾는다”면서 “올 때마다 새로운 가게가 생기고, 분위기도 뭔가 달라지는 것 같다”고 했다.
2000년대 말까지 낡은 공장촌에 불과했던 성수동(聖水洞). 20년이 채 안된 지금, 그 이름처럼 성스러울만큼 대한민국 최고 ‘핫 플레이스’로 우뚝 섰다. 평일과 주말 가리지 않고 골목마다 힙한 가게나 팝업 스토어에는 긴 줄이 늘어선다. 글로벌 패션 브랜드와 외국인 관광객이 항상 넘쳐나고, 스타트업과 대기업은 새 둥지를 찾아 너도나도 몰려들고 있다.
성수동이 주목받기 시작한건 카페거리가 뜨기 시작한 2011년 전후. 처음엔 반짝하다가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성수동은 2020년 무렵엔 명동·강남역·홍대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서울 7대 상권’에 등극했다. 이제는 대한민국 소비 트렌드를 주도하는 중심축이 됐다.
그렇다면 성수동의 오늘은 어떻게 이뤄진 걸까. 일각에서는 젊은 창업자들이 몰리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세상에 우연이란 없다는 말처럼 성수동은 ‘저절로 만들어진 핫플’이 아니다. 민간의 창의성에 서울시가 20년 넘는 긴 세월에 걸쳐 치밀하게 설계한 도시 계획의 결과물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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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의 서울숲, 오세훈의 IT진흥지구가 발판
지금의 성수동은 한 명의 시장, 한 번의 정책으로 만들어지 않았다. 20년에 걸친 선택이 층층이 쌓이며 지금의 성수를 만들었다. 스타트를 끊은 것은 이명박 전 서울시장. 그는 2005년 파격적 결단을 내렸다. 레미콘과 신발 공장이 밀집한 성수동에 ‘서울숲’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것. 공업지역 한복판에 초대형 생태공원 조성은 이례적 선택이었다. 성수동에 30년 넘게 거주한 박모씨는 “서울숲 생기고 나서부터 성수동이 처음으로 ‘살만한 동네’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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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통을 이어받아 성수동을 본격적으로 키운 인물이 오세훈 서울시장이다. 오 시장은 1기 재임 시절인 2007년 뚝섬(성수동)의 업그레이드를 본격 추진했다. 핵심은 특별계획구역 지정이다. 각종 건축 규제를 풀어 서울숲을 둘러싼 고급 주거·문화 인프라를 조성, 제2의 강남으로 개발하는 청사진을 제시한 것. 서울시 관계자는 “특별계획구역 지정으로 갤러리아포레와 아크로서울포레스트 같은 초고급 주거단지가 들어올 수 있었다”면서 “결국 체급을 바꿀 수 있는 밑바탕을 깔아 성수동을 그저그런 ‘반짝 뜬 상권’이 아닌 주거 경쟁력까지 갖춘 지역으로 자리 잡도록 했다”고 평가했다.
오 시장의 ‘성수동 키우기’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일자리가 상권을 만든다’는 철학을 바탕으로2009년 10월 준공업지역 종합발전계획을 발표하고, 2010년 1월 성수동을 IT산업개발진흥지구로 지정했다. 건물 신축 시 용적률과 높이 제한 완화, 세제 혜택 등을 제공한 것.
그러자, IT기업을 품은 지식산업센터가 속속 들어섰고 SM엔터테인먼트 계열사를 비롯해 무신사, 젠틀몬스터 등 디자인·패션·콘텐츠 기업이 대거 입주했다. 그러자 성수동은 2030세대 젊은 개발자와 직장인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성수동 일대 IT 기업은 2010년 94곳에서 2022년 827곳으로, IT 기업 종사자는 같은 기간 910명 수준에서 11000명 이상으로 12.3배 늘었다.
MZ세대 젊은 청년이 늘어나면서 성수동 일대 낡은 공장과 창고를 개조한 힙한 카페촌과 식당도 하나둘씩 생겼다. 2011년 성수동에 처음 문을 연 ‘대림창고’가 대표적. 정미소를 개조한 이 카페가 입소문을 타고 흥행한 이후 성수동 일대에는 힙한 카페와 디저트숍, 편집숍이 급속하게 늘어났다.
◇오 시장, 성수동 제2 도약 위해 삼표레미콘 숙제 풀어
그러나 성수동에도 위기의 순간은 있었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2011년 취임 직후 수변 경관 보호와 ‘35층 룰’을 강조하자, 성수동 일대는 개발 정체기를 맞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4년 현대차그룹이 삼표레미콘 부지에 추진했던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건설 백지화다. 한강변 낡은 주택가를 50층 이상 초고층으로 재개발하려던 성수전략정비구역 사업도 멈춰섰다.
멈췄던 성수동의 개발 시계는 오 시장이 2021년 재취임한 이후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는 성수동의 제2도약을 위한 핵심 프로젝트인 삼표레미콘 부지 개발 문제부터 해결했다. 오 시장은 사전협상 제도를 활용해 50여년 해묵은 숙제를 풀었다. 해당 부지 개발 용적률을 150%에서 800%로 크게 높여 사업성을 올려주는 대신 약 6000억원 규모의 공공기여를 이행하도록 유도한 것. 삼표 측은 오 시장의 제안을 수용했고, 향후 지상 79층 규모 업무·주거·상업 기능을 융합한 복합단지로 개발할 예정이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오전 삼표레미콘 부지 현장점검에서 ”과거 서울시장과 구청장의 레미콘공장 이전 해법은 ‘그냥 나가라’였으나, 사전협상을 시작해 불과 2년 만에 이전이 결정됐다”며 “기업·행정·시민 모두가 이기는 해답을 찾고 글로벌 미래업무지구로 거듭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 시장은 올 1월26일 IT산업개발진흥지구에 문화콘텐츠 산업도 권장 업종으로 새롭게 추가했다. 더 많은 기업 입주를 위해 문화콘텐츠산업 업종을 추가한 것이다. 성수동에서 팝업 스토어 공간을 임대하는 이모씨는 “소비 트렌드를 주도하는 기업과 젊은이가 넘쳐나자, 성수동은 팝업 스토어를 열기에 최고의 장소가 됐다”면서 “이제는 팝업 스토어와 힙한 식당, 가게를 보기 위해 외국인 관광객까지 몰려들면서 성수동이 창출하는 부가가치가 더 커졌다”고 했다.
실제로 지난 10여 년간 성수동의 경제적 가치는 33조원 이상 폭증했다. 외국인 관광객 지출액도 최근 6년간 2000억원 가까이 늘었다. 성수동을 찾는 방문객도 2020년 약 4600만 명에서 2024년 약 7000만 명으로 52% 증가했다.
권대중 서강대 일반대학원 교수는 “성수동은 서울시가 핫플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여준 교과서에 가깝다”면서 공원 조성, 용도 전환, 규제 완화, 산업 정책, 대규모 민관 협상까지 서울시의 선택들이 약 20년에 걸쳐 지금의 성수동을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pkra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