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금 요구’형 보이스피싱, 건설업계에도 등장
과거 공사 이력 등 건설사 정보 줄줄 읊어
추가 계약 약속하며 신뢰 줘…주의 필요
[땅집고] 최근 공무원이나 공공기관을 사칭해 선금을 요구하는 보이스피싱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가운데, 건설사를 노린 사기도 등장했다. 해킹 등으로 알아낸 기업 이력을 제시하면서 믿음을 준 뒤, 공사나 물품 구매를 명목으로 선금을 요구하는 전형적인 사기 수법이다.
최근 3년여간 건설 경기가 침체되면서 기업마다 실적이 부진한 상황이라, 일단 매출을 올릴 수 있다고 구슬리는 보이스피싱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업계 관계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한 종합건설사 대표 A씨. 어느날 OO대학교 시설과 팀장이라고 주장하는 B씨의 전화를 받았다. B씨는 “2021년도에 우리 대학교 도서관 리모델링 공사를 하셨죠”라고 운을 띄웠다.
B씨의 말은 사실이었다. A대표가 “네, 무슨 하자라도 생겼냐”고 묻자, B씨는 “아니다, 지난번에 공사를 아주 잘 해주셔서 이번에도 귀사를 지명 입찰 대상자로 선정하려고 한다”고 했다. 건설 업황이 가라앉으면서 민간 발주가 사라지자 그나마 먹거리가 꾸준한 공공 발주로 건설사가 몰려들어 입찰 경쟁이 치열해진 점을 고려하면, 지명 입찰 대상자 선정이 꽤 반가운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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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씨는 조만간 면담을 하자며 전화를 자연스럽게 끊은 뒤, 다시 A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구체적인 만남 날짜를 제시해 신뢰를 얻은 B씨는 “초면에 죄송하지만 학교에서 전기차 충전소 방화용 직소포를 구입해야 한다”면서 “그런데 저희 거래처에서 견적을 넣을 때는 한 대당 240만원으로 납품하겠다고 해놓고, 갑자기 270만원을 인상하겠다고 한다. 관급단가라 그러는 것 같은데 대표님께서 좀 알아봐주시겠느냐”고 부탁했다. 이어 그는 “학교가 지금 감사 중이라 급하게 구비해야 하는데 예산이 맞지 않아서 곤란한 지경”이라고 호소하며 C업체의 명함을 A대표에게 건넸다.
A대표는 직원에게 이 명함을 전달하고 해당 물품 단가를 확인해보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C업체는 230만원에 납품 가능하고, 10세트 이상이면 할인한 190만원에 주겠다는 답변을 전달했다. 이 업체 외에 또 다른 곳에도 확인해보니 200만원 이하로 충분히 조달 가능한 물품이었다.
이렇게 단가를 알아본 뒤 B씨의 전화가 다시 귀신같이 걸려왔다. A대표가 확인한 C사의 단가를 들은 B씨는 “너무 급해서 그러는데 대표님께서 20개만 먼저 납품해주시면 저희 예가대로 개당 240만원에 송금해드리겠다, 향후 50개까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만약 B씨의 제안대로 C사에서 물품 20개를 190만원에 받은 뒤 OO대학교에서 개당 240만원에 넘기는 경우, A대표 입장에서는 1000만원이 남는 장사였다. 향후 거래 물품이 50개까지 늘어나는 경우 5000만원을 벌 수 있는 것.
A대표가 ‘괜찮은 장사’라고 판단하던 차에, 직원으로부터 급히 전화가 왔다. 직원은 “좀 이상하다”라며 “다른 업체에 알아보니 같은 내용으로 전화가 수십 곳에서 왔다고 한다, 이거 보이스피싱같다”고 보고했다. A대표가 “아니다, 내가 OO대 시설과 팀장이라고 해서 명함도 받고 직접 통화했다”고 해도 직원은 A대표를 끝까지 말렸다.
A대표가 다시 B씨의 명함을 확인해보자 휴대폰 번호만 있고 사무실 번호는 없었다. B씨가 연결해준 방화직소포 판매 업체 C사 명함에도 마찬가지로 사무실 전화번호는 전혀있지 않았다. 그제서야 A대표는 이들이 선금을 요구하는 보이스피싱 범죄 유형인 점을 깨우치고 한 숨 돌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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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관계자들은 보이스피싱 범죄자들이 전화 통화에서 과거보다 더 구체적인 정보를 제시해 피해자들이 사기라고 의심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발전했다고 조언한다. 위 A대표에 걸려온 전화만 해도 범죄자가 과거 리모델링 공사 이력을 제시하고, 건설업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구매할 일이 드문 물품명을 언급하면서 사기가 아닌 업무 전화라고 믿도록 만들었다는 것.
한편 지난해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에 제출한 '최근 5년간 연도별 보이스피싱 피해 구제 신청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보이스피싱 피해 건수는 1만5559건으로 집계됐다. 이 기간 피해액은 3407억원에 달한다. 비교적 사회 활동 경험이 적은 20대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60~70대 이상 고령층이 보이스피싱 범죄자의 심리적 압박에 취약할 수 있다.
경찰 관계자는 “공무원이나 공공기관을 사칭해 업체에 물품·공사 계약을 빙자해 구매 대행이나 선금을 요구하는 것은 보이스피싱”이라며 “건설업 관계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leejin0506@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