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자 겨냥한 곡성 강빛마을…유령마을 됐다
한 채당 2억원 밑도는데 사겠다는 사람 없어
코레일도 펜션 운영 뛰어들었다가 포기
[땅집고] “코레일이 집 한 채당 1억대에 내놔도 죽어도 안팔리고…”
과거 국내 최대 규모 은퇴자마을로 화제를 모았던 전남 곡성군 ‘강빛마을’ 근황에 관심이 쏠린다. 단독주택 100채 이상을 짓고 분양해 도심 은퇴자들이 이 곳에서 실거주 및 펜션 사업을 펼치며 임대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설계했지만, 현재 사람 사는 집이 20가구도 채 되지 않는 유령마을로 전락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진다. 공기업인 코레일도 관광과 연계한 강빛마을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적자로 포기한 터라 국가적 차원에서 활성화 대책이 필요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강빛마을은 전남 곡성군 죽곡면 태평리에 2013년 조성한 은퇴자 전용 타운하우스 단지다. 2009년 전원마을 조성사업 마을정비구역으로 지정되면서 건설 사업이 시작됐다.
강빛마을을 둘러보면 대지 약 13만3000㎡(4만평)에 유럽풍 기와를 얹어 한옥 느낌이 나는 2층짜리 목조주택 109개가 들어서있다. 1층은 집주인이 거주하고, 2층은 펜션으로 운영하면서 강빛마을에 주택을 분양받은 은퇴자들이 임대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설계한 점이 눈에 띈다. 인근 보성강을 내려다볼 수 있는 배산임수 입지라 호남권은 물론이고 서울·수도권 퇴직자들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될 것이란 기대를 모았다.
강빛마을 사업을 고안해낸 인물은 1998년부터 2006년까지 약 8년 동안 곡성군수를 지낸 고현석 밸리홈 대표다. 군수 자리에서 내려온 뒤 배우자인 김화중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함께 농촌을 살리기 위한 강빛마을 조성 사업에 본격 뛰어들었다. 2009년 강빛마을이 정부의 전원마을 조성사업 마을정비구역으로 지정되면서 국비 19억원, 도비 4억원, 군비 14억원을 합해 총 37억원을 받아 사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전남도와 곡성군이 마을 진입도로를 비롯해 상하수도, 전기통신 등 기반시설 건설도 지원했다.
이들 부부는 강빛마을에 은퇴자들이 모이면 외곽 도시였던 곡성군에 활기가 돌고, 농업 위주였던 지역 경제도 다방면으로 활성화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주택 수분양자를 모으는 일이 쉽지 않았다. 주택 한 채당 분양가가 2억원 정도였는데 선뜻 이 곳에 집을 매수해 정착하겠다는 수요가 많지 않았던 것.
2016년부터는 코레일관광개발이 강빛마을에서 펜션을 위탁 운영하기 시작했다. 강빛마을 인근에서 진행하는 ‘섬진강 기차마을 테마파크 사업’과 연계하면 체류형 관광 상품을 만들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첫 해부터 2900만원 적자를 기록했고 이후에도 수익을 내지 못하면서 누적 운영손실이 커져갔다. 결국 코레일관광개발은 사업을 시작한지 3년여 만인 2018년 12월 중단 결정을 내렸다.
코레일관광개발은 강빛마을 펜션을 온비드를 통해 매각하려고 시도했다. 2019년부터 총 10번에 걸쳐 공고를 냈지만 사겠다는 사람이 없어 모두 유찰됐다. 가장 최근 공고인 지난해 3월, 대지면적 262~271㎡에 건물면적 99.9㎡인 펜션을 한 채당 1억6338만2800원에 매각하는 공고를 냈지만 결국 새 주인을 찾지 못했다.
2024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진행한 전남도 국정감사에 따르면 강빛마을 총 109가구 중 사람 사는 집은 20가구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텅 빈 집마다 ‘매매합니다’라는 종이가 붙어있는 데다 마을에 수풀이 무성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건물이 준공한지 14년째인 만큼 전기와 수도가 끊긴 집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국정감사에서 이달희 국민의힘 비례의원은 “강빛마을이 법적으로는 사유지이지만 이렇게 방치되면 결국 폐허가 되고 우범지대가 될 확률이 높다”면서 “전라남도 차원에서 잘 관리해 빈집 문제를 해결한 모범사례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이전에 전남도나 농협중앙회 등에서 강빛마을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면 어떻겠냐는 제안도 받았지만, 법적으로 여러 문제점이 있어 관리를 할 수 없었다”면서 “좀 더 전향적인 차원에서 검토해보겠다”는 답변을 내놨다.
한편 강빛마을 사업을 주도한 고현석 밸리홈 대표와 김화중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당초 건립 계획과 달리 마을이 활성화되지 못해 안타깝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고 대표는 2023년 밸리홈 홈페이지에서 “농촌 공동화를 막아보겠다고 농식품부가 펼치는 정책인데, 더욱 도도해지는 수도권 집중 앞에 맥을 못추니 안타깝다”는 글을 남겼다. 이어 강빛마을을 짓는데 혈세 37억원이 투입됐다는 정치권 지적에 대해서는 “저희 부부는 장관과 군수의 공직에 있는 동안 주어진 권한을 오로지 그 책임을 다 하는데 썼을 뿐, 비리를 저지른 적은 없다는 떳떳함으로 살아왔다. 곡성에서 건강하게 즐겁게 살게 해주신 군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한편 강빛마을은 빈 집을 채우기 위한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강빛마을 입주나 투자를 원하는 개인에게 알맞은 상품을 밸리홈 측에서 별도 수수료 없이 무료 알선해주고 있다. 지난해 11월 말에는 강빛마을 2층 주택 두 채에 대해 각각 보증금 7000만원에 전세 입주할 임차인 모집에 나서기도 했다. 당초 강빛마을 주택 전세 임대 표준이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30만원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40만원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50만원 등인데, 예외적으로 ‘올전세’를 허용하는 주택 매물이 나왔다는 것.
공고에 따르면 한 주택은 대출 8600만원에 근저당 1억320만원, 다른 주택은 대출 8000만원에 근저당 9600만원이 설정돼있다. 고 대표는 “농협대출금이 적어 농협의 근저당에 이은 후순위 전세등기를 해도 실효성이 있을 것”이라며 “전세등기는 임대인의 비용과 책임으로 이행한다”고 설명했다. /leejin0506@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