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공문서 공개 책임을 잘못 짠 국회, 재건축 임원은 형사처벌 위기·재건축은 멈춘다| 유상근 올림픽선수기자촌아파트 재건축정비사업 조합설립추진위원회 위원장
[땅집고] 재건축·재개발 현장에서 반복되는 갈등의 상당수는 ‘정보 문제’에서 비롯된다. “공문서가 제때 공개되지 않는다”, “조합이 정보를 숨긴다” 등등. 조합원은 알 권리를 침해받고 있다는 비판은 이제 익숙한 풍경이다. 최근 언론 보도 역시 이러한 프레임을 강화하며, 정비사업 관련 공문서를 공개하지 않은 조합을 문제 삼고 이를 투명성의 문제로 단순화한다.
그러나 이 논의의 출발점에서는 반드시 다시 던져야 할 질문이 있다. 이 구조를 설계한 것은 과연 누구인가. 문제의 근원은 개별 조합도 아니고, 서울시 행정도 아니다. 가장 근본적인 책임은 도시정비법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설계한 국회의 입법 오류에 있다.
문제의 출발점은 도시정비법 제124조 제1항 제6호다. 이 법은 ‘해당 정비사업의 시행에 관한 공문서’를 추진위원장 또는 사업시행자가 공개하도록 규정한다. 투명성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로 도입한 조항이지만, 법 기술적으로는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있다.
공문서란 무엇인가. 공문서는 공공기관이 직무 수행 과정에서 작성하는 문서다. 이는 행정법 체계에서 확립된 개념이며,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역시 이 전제를 기반으로 설계되어 있다. 그럼에도 국회는 공문서의 작성 주체와 공개 책임 주체를 분리하는 오류를 범했다. 공문서를 작성하지 않은 민간 주체인 재건축·재개발 조합에게, 공문서 공개 의무를 직접 부과한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정비사업 현장에서 벌어지는 혼란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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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귀속을 잘못 설계한 입법
입법의 기본 원칙 중 하나는 책임의 귀속이 명확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그 의무 위반에 형사처벌이 예정되어 있다면, 책임 주체는 더욱 엄격하게 특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도시정비법 제124조 제1항 제6호는 이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한다.
정비사업 관련 공문서는 대부분 국토교통부, 서울시, 서울시 산하 23개 자치구 등 공공기관이 작성한다. 조합은 그 문서를 ‘받는 주체’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국회는 이 문서를 공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조합 임원 개인에게 형사책임까지 예정했다.
이는 행정정보 공개 책임을 공공기관이 아닌 민간에게 이전한 입법이다. 다시 말해, 국회가 선택했어야 할 방향은 ‘공공기관의 정보공개 의무를 강화하는 것’이지, ‘민간에게 대신 공개시키고 처벌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정보공개법 체계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이 입법 오류는 기존 법체계와의 충돌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정보공개법 제8조는 공공기관에게 정보목록 작성·비치·공개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공공기관이 보유·관리하는 정보는 원칙적으로 국민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공개되어야 한다는 것이 정보공개법의 기본 구조다.
그런데 도시정비법 제124조는 이 체계를 정면으로 우회한다. 공공기관이 직접 공개해야 할 정보를, 조합에게 다시 공개하도록 요구한다. 이는 정보공개법의 구조를 무력화시키는 중복 규제이자 체계정합성을 상실한 입법이다.
이러한 충돌은 우연이 아니다. 국회가 정보공개 체계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채, 정비사업 갈등에 대한 정치적 요구에 대응해 즉흥적으로 규제를 추가한 결과다. 서울시는 잘못된 입법을 그대로 집행하고 있을 뿐이다 이 지점에서 서울시의 책임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 성격은 어디까지나 부차적 책임이다. 서울시는 ‘서울특별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조례’ 제69조에 따라 정비사업관리시스템을 구축·운영하고 있다. 해당 조례는 정비사업 시행과 관련한 자료 구축 및 정보 제공을 명시하며, 서울시가 정비사업 정보 관리의 중심임을 분명히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는 자신과 자치구가 작성한 공문서를 정비사업관리시스템에서 자동으로 공개하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고도화하지 않았다. 대신, 국회가 만든 도시정비법 제124조의 구조에 기대어, 공개 책임을 조합에게 맡겨 왔다.
이 점에서 서울시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다만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서울시의 문제는 입법 실패를 시정하지 않은 행정의 소극성이지, 문제를 설계한 주체는 아니라는 점이다.
핵심은 ‘디지털 행정’이 아니라 ‘입법 책임’이다. 종종 이 문제는 디지털 행정의 문제로 축소된다. “서울시 시스템을 개선하면 해결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물론 그것도 필요한 조치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증상에 대한 처방일 뿐, 병의 원인은 아니다.
병의 원인은 국회의 입법이다. 공문서 공개 책임을 잘못 설계했고, 공공기관이 져야 할 의무를 민간에게 넘겼으며, 그 위반에 형사처벌까지 연결했다. 서울시가 시스템을 아무리 개선해도, 이 입법 구조가 유지되는 한 조합은 항상 잠재적 범법자로 남는다.
투명성은 처벌이 아니라 구조로 만들어진다 정비사업의 투명성은 조합을 압박한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투명성은 책임 있는 주체가, 자신의 정보에 대해 책임 있게 공개하는 구조에서 확보된다.
국회는 이제라도 도시정비법 제124조 제1항 제6호를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공문서는 공공기관이 공개해야 한다는 단순한 원칙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서울시는 그에 맞춰 시스템을 개선하면 된다. 조합은 그 시스템을 안내하는 역할이면 충분하다.
지금의 문제는 조합의 도덕성도, 서울시의 기술력도 아니다. 책임을 잘못 배치한 국회의 입법 선택이 가장 큰 문제다. 이 점을 바로잡지 않는 한, 재건축·재개발 현장의 갈등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고, 형사처벌의 공포 속에서 재건축은 계속 멈춰 설 수밖에 없다. /글= 유상근 올림픽선수촌 아파트 재건축 추진단장, 정리=박기람 땅집고 기자 pkram@chosun.com